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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중독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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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숙경 Aug 12. 2023

3 손님

  15번 손님이 나가는 것을 보고 걸레를 들고 손님이 앉았던 자리를 닦는다. 꽃무늬가 들어간 싸구려 천으로 마감한 벽은 이전에 단란주점을 인수한 그대로여서 피시방 인테리어로는 맞지 않았다. 주인은 인색하고 겁이 많아 더 이상 투자를 하지 않았다. 조명도 샹들리에를 치우기만 했을 뿐 아르곤 조명이 군데군데 박힌 그대로다. 화장실 옆에는 두 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 하나 있다. 이전에 무엇으로 쓰였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잡다한 물건들을 쌓아 놓게 되었는데 주인이 잠을 잘 수 있도록 낡은 소파를 가져다주었다. 촌스런 핑크색이 얼룩덜룩 때가 끼었지만 괜찮은 소가죽이었다. 누군가 버린 것을 주워왔을 것이다. 주인은 투자한 것에 비례해 회수

할 수 있는 그날그날의 현금이 얼마인지를 생각할 뿐 다른 것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마도 언제 되팔지도 모르는 이 가게의 현재가치가 더 하락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낮에 서너 시간 정도 교대해 주고 가버린다. 내가 하루 종일 지키고 있기는 무리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한 처사였다. 일단 먹고 자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월급도 받고 내가 좋아하는 게임도 할 수 있다. 주인이 낮에 오면 나는 정확하게 또 정직하게 돈을 쏟아낸다. 수틀린 짓거리로 거리에 나 앉을 생각이 전혀 없다.

  유지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그녀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백화점 앞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자고 저녁 어스름이 조용히 내리면 처량한 생각이 가슴속에 넘실대면서 따뜻한 불빛에 위안을 받고 싶어 져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 골목 저 골목을 배회하다가 철갑상어의 소리에 이끌려 이 피시방에 오게 되었다. 매일 살다시피 하자 주인은 이곳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를 해왔다. 

  종환이 쪽방 문을 닫고 내게로 와서 쓸데없이 헛소리를 한다. “형 뭐 하는 거야. 최신게임 나온 것 몰라? 그것 빨리 깔아 애들이 찾는단 말이야”. 녀석은 손님인 주제에 참견이 많다. 그러나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울 땐 대신 일을 도와주기 때문에 참고 넘어가 준다. 고2를 간신히 다니고 있다. 그의 꿈은 프로게이머다. 한 참 공부할 나이에 게임에 몰두하여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면서 실력을 향상해 놓았지만 선두로 가는 길목은 너무나 좁았고 돈이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렇지만 오로지 그것밖에 갈고닦은 것이 없는 녀석은 키보드를 눌러대는 손동작의 미묘한 속도에 탓을 돌린다. 게임에 몰두할 때의 그의 표정은 차갑고 흐트러짐이 없이 엄숙하기조차 하다. 손가락들이 마치 춤을 추는 것과도 같았고 모니터 속으로 뛰어들어갈 듯한 자세는 몰입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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