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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중독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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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숙경 Aug 12. 2023

9 철갑상어가 나타났다

  카운터 의자에 앉아 잠을 잤다. 철갑상어는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내 앞을 날아다닌다. 나는 사냥에 나갔다. 나보다 센 유카 괴물이 버티고 섰다. 도망을 간다. 숲 속에 오두막이 있다. 그곳에 몸을 숨긴다. 오두막은 사방이 구멍이 뚫려 있는 허술한 벽으로 둘러있다. 여자는 그곳에 앉아있다. 나는 여자의 옆에 앉았다. 오늘은 참 피곤해요. 그러자 여자가 나의 등 뒤로 와서 안마를 해준다. 여자의 손은 참 부드럽다. 나른한 잠으로 빠져들 것 같다. 여자는 내 옆으로 와서 눕는다. 오늘은 참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내 팔이 말이에요, 저만치 떨어지는가 하면 목이 비틀리고요. 다리는 자꾸만 빠졌어요. 눈이 달아나는 것을 잡아넣느라 혼을 다 뺐지 뭐예요. 나는 감기는 눈을 간신히 떠서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의 목이 없다. 깜짝 놀란 나는 흐느적거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여자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언제 들어왔는지 내 몸 안에서 흡, 하는 단음을 내면서 나를 파먹고 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서 잠에서 깼다.

  벽에 붙어 있는 쪽문으로부터 이상한 낌새가 있다. 무슨 소리가 난 것도 같다. 유지와 종환이 보인다. 형은 깊이 잠들었어. 종환이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여기선 안 돼. 유지가 종환의 머리통을 잡아당겨 입술을 빤다. 자, 이제 됐지? 빨리 나가봐. 누나 조금만 더. 종환이 유지의 젖가슴을 어루만지면서 애걸을 한다. 자, 지금 빨리 나가 죽여 버리기 전에. 유지는 단호하게 말하면서 옷을 추슬렀다. 종환이 일어서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의자에 깊이 몸을 묻었다. 

  가게 안에는 종환의 친구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녀석은 그들 속으로 가서 시시덕거리면서 게임을 한다. 허공을 응시하던 눈이 벽에 가 부딪힌다. 도드라진 상아색 꽃무늬 벽이 마치 물방울처럼 어룽거린다. 벽은 이중의 겹친 영상으로 되어 움직인다. 거기에 유지와 종환은 누워 있다. 미끄덩한 몸이 밀착되어 하나가 되어 있다. 가증스러운 상상이 걷잡을 수 없이 떠올라 괴로움으로 고개를 다리 사이에 파묻었다. 아아, 치치치치. 절로 신음소리가 난다. 고통에 일그러지고 억압된 신음소리. 철갑상어가 내던 소리.  

  아버지는 신음소리조차 내질 못했다. 완전히 소리와 차단된 세계에서 살다 죽었다. 그의 귀가 되어 주었던 나는 엄마의 소식을 그대로 전할 수가 없어서 매번 거짓말을 했다. 내 손은 엄마를 말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꾸며대었다. 엄마는 지금 돈 벌러 갔으니 기다리라고 했다고, 기다리면 곧 돌아온다고 말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멍하니 내 손끝의 절망을 읽어내려갔다. 그리곤 꺽꺽하는 소리로 울었다. 그것은 내가 괴물들과 싸울 때 나는 소리들이다. 아버지의 폭음이 시작된 건 내 거짓말이 들통난 다음부터였다. 나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 진다. 언제부터인가 말들은 소리를 잃어버렸다.  

  유지는 너무 분방하다.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체념과 분노가 함께 어우러져 머리를 어지럽힌다. 여자는 지금 무엇을 할까? 나는 여자의 눈을 생각한다. 언젠가 물속에서 익사하는 쥐를 본 적이 있다. 비 오는 날 담뿍 받아 놓은 큰 고무 물통에 쥐가 빠져 있었다. 놈은 살려고 바동거리면서 헤쳐 나오려 했지만 둥근 고무 물통은 빠져나올 수 없이 깊고 물이 가득했다. 그 몇 분인지 몇 시간인지 모를 시간을 나는 쪼그리고 앉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필사의 헤적임. 물에 젖은 털들이 파닥거리면서 물에 대항하려는 몸짓을 계속 되풀이한다. 놈은 절망하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는다. 나는 그때 보았다. 쥐의 눈을. 검고 짙은 눈이 어마어마하게 확장되어 가는 것을. 처음의 찍찍거리는 소리도 없어지고 타협이 불가능한 것을 알아챈 다음의 공포와 체념과 삶의 의지를 가득 담고서 놈의 몸은 마지막 경련을 했다. 그리고 조용히 내리는 비가 모든 것을 거두어갔다. 갈퀴 같은 발가락들도 오므라들었다. 모든 죽음은 이와 비슷한 걸까.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쥐는 화려한 춤을 추다가 넘어져 엎어진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 찍찍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고요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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