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無窮花)는 법률적으로 우리나라 ‘국화(國花)’로 지정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지정된 법률 외에 관습법을 따르는 관행이 있는데 무궁화는 우리 역사를 상징하고 대표 꽃으로 오랜 기간 사용되었으므로 관습법을 적용받는다. 그래도 관습법 보단 국화(國花)로 지정하고자 많은 단체들이 노력했지만 매번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법안이 폐지됐다. 무궁화는 다양한 품종이 있고 외래종 분쟁이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국화(國花) 지정을 떠나 무궁화는 우리 가슴속 한편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고조선 이전 시대부터 무궁화는 ‘하늘나라꽃’으로 사랑받았고, 신라엔 근화향(槿花鄕 : 무궁화 나라)라고 불렸다. 이후 조선말 개항기를 거쳐 무궁화는 애국가의 한 소절로 불려진다.
친숙함을 얻고 대중성을 확보한 무궁화는 일제강점기에 탄압을 받게 된다. 일제는 무궁화를 격하하기 위해 ‘부스럼꽃’ ‘눈에 피꽃’과 같은 저급한 단어를 사용해 국민들로부터 관심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우호익, 남궁억 등 여러 선생님들이 무궁화의 가치를 증진하고 보급에 힘썼다. 당시 동아일보는 1923년부터 10년 간 매년 무궁화 사진을 게재했다.
무궁화는 아침햇살을 받아 꽃을 피웠다가 저녁에 지고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특징으로 끈기와 기개를 상징했다. 조선총독부는 무궁화의 상징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압력을 가해 무궁화를 탄압하게 된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된 후로 무궁화는 대통령 표장, 국회의원 배지, 법원마크, 훈장, 상장 등 많은 곳에 활용되고 있다.
무궁화는 한국, 일본, 중국 중부, 인도 북부 등 동북아시아 지역이 원산지이다. 꽃의 관상가치가 높아 전 세계에서 원예종으로 재배하고 있다.
낙엽 지는 키 작은 나무로 높이 3-5m가량 자라며 수명은 40-50년으로 알려져 있다. 햇빛 요구도가 높은 양수이며 토지에 대한 적응력이 강해 이식 후 활착이 잘 되고 내염성과 내공해성을 갖추고 있어 조경수 식재 조건에 적합하다. 또한, 맹아력이 좋아 수형을 가꾸기에 큰 지장이 없다. 당해연도에 발생한 나뭇가지 잎 겨드랑이에서 꽃봉오리를 맺고 7월부터 10월까지 가지가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잎 겨드랑이마다 꽃을 피는 무한화서(無限花序)이다. 이런 특징으로 한 송이 꽃이 오래 피우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여러 식물과 마찬가지로 ‘무궁화‘도 다양한 품종을 가지고 있다. 200여 종에 달하는 국내외 품종 사이에서 우리나라 정부는 꽃 중앙에 붉은 꽃심이 있는 ’단심계’ 홀꽃을 보급 품종으로 지정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무궁화 홍단심계를 마을마다 보급했지만 보급 품종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었던 시절이라 꽃 중앙에 단심이 없는 순백색 꽃인 ‘배달계’가 식재된다. 웃긴 해프닝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시골 동네엔 배달계 무궁화가 식재된 곳이 많다.
기본적으로 무궁화는 병충해에 강하다. 병해를 입더라도 나무가 고사하는 수준은 아니며 경미한 증상이 빈번하게 발생할 뿐이다. 흔히 ‘진딧물’ 피해가 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경험상 재배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딧물이 발생하지 않는다. 설령 발생했다 하더라도 비교적 쉽게 방제할 수 있다.
추신.
조선시대는 무슨 꽃이 상징이었을까요?
자료출처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100128/25768156/2
https://www.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180102/87984345/1
https://theme.archives.go.kr/next/symbolKorea/nationalFlowerHistory.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