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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Mar 16. 2023

<키즈 리턴>, 청춘은 왜 실패하는가


청춘은 왜 실패하는가



영화의 첫 장면. 코미디언 두 명이 무대 위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장면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키즈 리턴>을 설명하는 데 이 장면만큼 핵심적인 장면은 없다. 한 남자가 고등학교 때부터 코미디 콤비로 활약한 탓에 인기가 너무 많아 거리에서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쳐다봤다고 의기양양하게 얘기한다. 하지만 이게 웬걸, 알고 보니 팬티가 내려가 있었다. 그는 내려간 팬티 때문에 이목을 끌었던 걸 자신의 인기 덕분이라고 믿은 것이다. 얼핏 들으면, 얕은 폭소를 일으키는 소소한 만담처럼 들리지만 이 능청스러운 코미디 안에는 중요한 진실이 숨어 있다. 그것은 팬티가 내려가 있던 걸 화자가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팬티가 내려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몰랐던 진실에 대한 발견 없이 자연스레 팬티를 올렸다고 얘기한다. 즉, 그는 팬티가 내려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게 된 것이라는 인과의 논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따라서 누군가 그의 팬티를 의도적으로 내렸거나 어떤 사물에 의해 얼떨결에 팬티가 내려간 게 아니라면 애초부터 화자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팬티를 내리고 거리를 활보했다는 말이 된다. 이 합리적인 추론은 감독 기타노 타케시가 들여다본 방황하는 청춘의 작동 방식을 일러준다. 그는 청춘들이 본인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그 궤도에 오르고 이탈하는 방황의 과정을 겪는 이유가 세계에 대한 무지 때문이 아니라고 제언한다. 다시 말해, 청춘들의 방황은 자기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팬티를 벗고 다녀야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그들에게 거리에서 팬티를 벗고 다니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문책하는 건 사실상 아무 소용이 없다.


극중 묘사되는 주요 청년들은 모두 타인에게 관심 받고자 한다. 그들은 자극을 가하면 반드시 일정량의 보상이 오기를 바란다. 문제아인 마사루와 신지는 코미디언도 되지 못할 거라는 교사들의 비아냥거림에 곧바로 코미디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웃기지 못하고 그럴 듯하게 누군가를 속이지도 못한다. 그들은 원래 코미디언이 꿈인 친구들 앞에서 만담을 펼쳐 보이지만 엉성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코미디언 청년들이 전혀 웃질 않자 센스가 없다며 오히려 그들에게 탓을 돌리기까지 한다. 이후, 성인 영화관을 찾은 마사루와 신지는 다시 한 번 코미디를 시도한다. 이때, 그들은 성인 영화를 보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변장에 성공하거나 웃음을 이끌어 내는 것만이 중요하다. 하지만 어설픈 변장과 마주한 종업원이 전혀 속질 않으면서 코미디는 완벽한 실패로 끝이 난다. 흥미로운 건 다음 이어지는 마사루의 행동이다. 그는 빈손으로 가면 형에게 죽는다며 필요 이상으로 집요하게 티켓을 사려고 든다. 예매가 안 되는 업장의 특성상 당장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티켓을 그는 기어이 구매한다. 보지도 않을 영화 티켓을 굳이 허튼 소리까지 하면서 산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행한 노력에 대한 눈에 보이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자다. 그 보상을 관심으로 바꾸면 더 말이 된다. 하지만 비극적인 건 종업원의 말처럼 관심은 예매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관심은 현재적이고 휘발적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집착은 보통 파국으로 끝난다.



마사루가 구매한 영화 티켓은 다방 아르바이트생 사치코를 짝사랑하는 범생이 청년과 연결된다. 그는 영화를 볼지 안 볼지도 모를 사치코와 극장에 가기 위해 미리 티켓을 구매해 놓는다. 한 마디로 그녀의 관심을 예매한 것이다. 즉각적인 보상을 원하는 마사루와는 달리 범생이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갈증을 참는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사회에서 흔히 요구하는 숭고함과 유관하다. 그는 소위 ‘착한’ 학생이다. 그는 학생 본분에 충실하고 점잖으며 빨리 취직하여 성실히 돈을 모으려 한다. 더욱이 자신의 마음은 편지와 인형이라는 온화하고 미학적인 방식으로 전달한다. 아프고 답답한 건 오로지 자신이며 상대에겐 어떠한 폭력도 행사하지 않는다. <키즈 리턴>의 탁월한 점 중 하나는 이렇듯 관심 받고자 하는 청년의 유형을 세분화시킨 데에 있다. 즉각적인 관심을 원하는 부류와 미래에 더 큰 관심을 받기 위해 현재의 삶을 억압하는 부류. 마사루와 신지, 코미디언 두 명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범생이는 후자에 해당한다.


누가 성공하는가


마사루는 즉각적인 관심을 위해 폭력을 저지르지만 어느 날 한 복서에게 얻어맞은 다음부터는 범생이처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억압하는 부류가 된다. 그는 미래를 위해 복싱을 배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얼마 가지 못해 처참히 무너진다. 그는 지난날 자신을 때렸던 복서를 무자비하게 폭행함으로써 앙갚음하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을 따라 엉겁결에 복싱을 하게 된 동생 신지에게 무기력하게 다운되고 만다. 그는 더 이상 자기 세계의 중심이 아니게 된다. 결국 그는 폭력이 아니어도 세계의 중심으로 군림하는 것처럼 보였던 폭력배 두목이 되기로 결심한다. 시간이 흘러 그는 어느덧 중간 보스의 자리까지 오른다. 하지만 수많은 수하를 거느리는 폭력 조직의 두목이 되는 건 만만치 않다. 그는 본인에게 애정을 주었던 두목이 살해당하자 분개하여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회장에게 큰소리치다가 집단 린치를 당한다.


신지의 삶도 그리 순탄하게 흐르지 않는다. 그는 꾸준히 복싱을 배워 꽤 유망한 선수로 성장하지만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강자는 강해”라고 떠드는 퇴물 복서 하야시를 따라 방탄한 생활을 한다. 그 결과, 체중 관리에 실패한다. 어떻게든 체중을 감량해야 하는 신지는 다시 하야시의 권유를 받아들여 약물을 복용하는 데 이른다. 체중은 줄어들었지만 무리한 감량으로 몸의 에너지를 잃은 신지는 결국 시합에서 무기력하게 지고 만다.


다방 종업원의 말처럼 ‘안정적인 직장’인 저울 가게에 취직한 범생이는 어떨까. 그는 실적이 나오지 않는 사원들에게 ‘밥버러지’라고 비난하며 자신 없으면 사표를 쓰라는 상사의 말에 직장을 그만 두고 나온다. 이후, 택시 기사가 되지만 이 역시 돈벌이가 시원치 않다. 그는 늦은 밤까지 택시를 몰다가 결국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다.


애초에 문제아였던 마사루와 신지가 최후의 관문을 뚫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은 청춘 장르의 관습적인 문법 하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과라 하더라도 가장 착하고 성실한 삶을 살던 범생이가 외려 가장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건 다소 의아하다. 반면, 코미디언을 꿈꾸었던 두 학생들은 작중 주요 청년들 중에 유일하게 성공한다. 처음에는 세 명뿐이었던 객석은 어느새 만석이 된다. 왜 두 코미디언들만 성공하는가. 아니, 왜 그들만 성공하도록 만들었는가.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어른이 없었다. 그들 주위에는 의도적으로 어른이라는 존재 자체가 지워져 있다. 오히려 그들을 무대에 오르게 한 장본인은 젊은 청년이다.


어른의 부재


<키즈 리턴> 속 어른들은 어떻게 묘사되는가. 한 마디로 그들은 청년에게 관심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청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언젠가 한 방송에서 철학자 강신주는 이렇게 얘기한 적 있다. “사랑하는(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일을 해요.” 다시 말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아낀다는 건, 그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하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내가 누군가를 아끼는데 그 사람이 부재하다면, 내가 그 사람 대신 일을 해줄 수 없으니 불행하고 아프게 된다. 즉, 아끼는 사람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고통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키즈 리턴> 속 어른들은 청년들을 아끼지 않는다. 체육관 관장은 한때 유망했던 제자가 복싱을 그만두는데도 그가 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에 분개하기 바쁘다. 하야시는 과거의 영광에 취한 채 신지에게 편법만을 설파하며 그를 술친구로 만들어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는데 이용한다. 저울 회사 상사와 택시 회사 상사는 후배 직원이 일을 그만두든지 연장 근무를 하든지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돈이다. 학교 교사들은 어떤가. 그들은 마사루와 신지에게 대놓고 학교에서 사라지라고 말한다. 폭력배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조직은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 일을 도맡아 하는 체계 속에 굴러간다. 심지어 두목은 살인을 저지르게 한 다음 중간 보스를 강제로 잠적하게 하고 부하 한 명을 대신 감옥에 보낸다. 회장은 두목이 살해당했을 때에도 태평하게 골프 칠 생각뿐이다.



기타노 타케시는 청춘들이 잘못된 길에 들어서는 이유를 그들을 진심으로 아껴줄 어른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영화에서 가족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가정’이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청춘들의 삶을 다루면서 ‘가족’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가정’이 한 번도 묘사되지 않는 것은 무척 비범한 대목이다. 기타노 타케시가 말하는 어른은 기본적으로 사회의 어른들을 의미한다. 그에게 청춘의 방황은 가정이라는 개별성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사회라는 종합성에 근거한다. 다만, 청춘의 문제를 개별적인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종합적인 사회 문제로 확장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담배 피우는 학생이, 친구를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학생이 그들 각자의 가정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한 일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의 하중이 실로 무거워지는 것이다. 이제 이를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직 시작도 안 했어”라며 다시 일어서는 청춘들에게 그들을 아끼는 어른의 도움은 무척 소중하다는 점이다. <키즈 리턴>은 사회의 어른들에게 날리는 카운터펀치이자 일종의 회유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도발적이고도 간절한 회유를 받아들인 것인가, 말 것인가. 진정한 어른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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