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에게 #7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있다.
이미 최종화까지 나온 작품이지만 매일 보지는 못해서 지금 겨우 중반쯤을 본다.
예전에 좋아했던 범죄물이나 의학드라마처럼 긴장감 넘치고 다음 화를 꼭 봐야 만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은 아니지만 자꾸 생각나고 자꾸 등장인물들의 갈 길이 궁금해지는 작품인 것 같다.
원래 내가 좋아하는 사회적 부조리나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은 아닌데도 계속 보고 싶은 이유.
아마도 다른 측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드라마라 그럴 것이다.
다른 측면. 그건 사회나 인간이라는 내 바깥 세계가 아닌 바로 나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생각.
그리고 나를 지켜보던 엄마에 대한 생각.
나는 역할놀이를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좋아하는 걸 넘어서서 힘든 시기에 나를 지켜주는 은신처였다.
엄마도 그걸 알아서 나에게 역할놀이용 인형을 사줬었고 나는 매일 그걸 가지고 놀았다.
밖에 있거나 인형을 꺼낼 수 없는 상황에서는 우산이나 빨래집게, 채소만 몇 개 있어도 놀이가 가능했다.
무슨 주제로 그렇게 매일 질리지도 않고 놀았을까.
내가 노는 방식은 엄마가 되어보기, 의사가 되어 보기 같은 역할 놀이는 아니었고 오리지널로 캐릭터를 만들어 빙의(?)하는 식이었다.
내가 빙의했던 건 외국에서 작은 주택에 사는 여자 아이(아침에 갓 구운 빵을 사러 가는 게 루틴), 육상대회를 앞둔 단거리 천재 소녀(나는 달리기가 아주 느려 육상을 잘하는 사람에게 동경심이 있었다), 친구를 안 만들기로 마음을 먹은 전학생(어떻게 마음을 열지가 관건) 등 하찮으면서도 무언가 디테일하고 복잡한 캐릭터들이었다.
그래서 완결은 없었다.
그걸 보는 엄마는 매일 웃참을 했던 모양이다.
내가 시선을 느껴 뒤를 돌아보면 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보지 말라고 화를 내도 엄마는 "안 봐, 안 봐"하면서 고개를 숙였지만 귀는 열려있었을 것이다.
내가 엄마 입장이었어도 재미있게 구경했을 거라 이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원고용지를 건네주셨다.
매일 그렇게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적어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엄청 기뻤던 걸 지금도 기억한다.
길가에서 쭈그려 앉아서 주절주절거리고 있던 나에게 무대가 생긴 느낌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하나씩 떠오르는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고 가끔 엄마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전히 쓰는 것보다는 인형을 가지고 빙의하는 게 더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은신처가 하나 더 생긴 느낌이었다.
그랬는데. 언제부터였을까.
글을 안 쓰게 된 건.
또 언제였을까.
인형 놀이를 그만둔 건.
그리고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섭섭했을까.
아니면 이것도 성장이라고 받아들였을까.
인형을 사준 것도 원고지를 준 것도 모두 엄마의 딸을 향한 응원이었다.
내가 그만둔 것도 성장과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좀만 더 붙잡고 있을걸.
좀만 더 은신처에 숨어 있을걸.
드라마를 보면서 현재 엄마와의 관계가 아닌 어린 시절 엄마와의 연결고리가 생각나서 적어보았다.
그리고 나도 아이와 이런 고리를 만들 수 있을까?
응원은 힘껏 해줄 준비는 되어 있는데 말이다.
은신처가 필요했던 어린 시절에 거의 유일하게 존재하는 따뜻한 기억인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계속해. 그게 네가 좋아하는 일이야.
붙잡고 있어. 엄마는 늘 응원해 줘.
어제의 너에게
지금이라도 잡아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