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에게 #6
아프면 아프다고,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피곤하면 피곤하다고 표현만 잘하면 삶은 얼마나 심플하고 수월해질까.
사람들은 늘 솔직하게 표현을 못해서 힘들어지는 것 같다.
괜찮은 척, 안 힘든 척, 안 억울한 척. 열심히 과장하고 포장하고 무장하고.
그렇게 산다.
나도 어김없이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약 20년 전. 이런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만 16살의 생일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반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나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처음에는 있었는데 서서히 잃었다.
특정 계기가 있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반에서 눈에 띄고 힘이 있는(?) 아이에게 미움받기 시작하고 내 주변에서 친구가 사라졌다.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의 친구들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지도 못하고(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점심은 친한 사람끼리 자유롭게 먹었다), 등하교를 같이 하자고 하지도 못했다.
점심시간에는 해야 되는 숙제가 있는 것처럼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었고, 서둘러 집에 가야 하는 것처럼 누구보다도 빨리 학교를 벗어났다.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혼자 있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척' 했다.
솔직히 괜찮지는 않았다.
빨리 원래 그룹으로 합류하든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 상황을 정말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다.
엄마에게 들킬 가능성이 있는 날은 생일이었다.
생일 선물을 못 받으면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엄마한테 들킨다고 생각했다.
중학교까지는 그래도 많지는 않아도 꼭 선물을 받았었고 물론 나도 선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해에는 그대로 가면 아무것도 못 받을 예정이었다.
걱정하면서도 관계 회복은 못한 채로 돌아온 11월.
내 생일을 기억하는 친구조차 없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 그날은 축하의 말도 선물도 없었다.
나는 준비했던 계획을 행동에 옮겼다.
그 계획이란 내가 나에게 선물을 사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서둘러 나와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쇼핑몰을 들렀다가 적당한 목도리를 하나 샀고 선물 포장을 부탁했다(일본에서는 웬만한 가게에서 선물 포장을 부탁하면 가격표를 떼주고 리본이 달린 쇼핑백에 담아준다)
나는 나에게 친구들이 사준 것처럼 위장한 선물을 샀다.
엄마에게 들키기 싫은 그 마음 하나뿐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혼자인데 괜찮은 척.
혼자인데 안 외로운 척.
가장 안 괜찮고 가장 외로운 날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친구가 없다고, 그래서 생일이 외롭고 창피하다고 엄마에게 말할 수 있으면 어땠을까.
엄마는 잠시 슬퍼하겠지만 같이 쇼핑이라도 나가줬을 것 같은데.
그러면 적어도 그 쇼핑몰에서는 외로움을 못 느꼈을 텐데.
그 당시 일들이 요즘 자주 생각난다.
아니, 의도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아마도 육아를 하면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로움은 태어나서 자란 일본을 떠나 가족 친척 친한 친구들도 가까이에 없는 곳에서 육아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만 오는 건 아니다.
자세히 좀 적어보자면.
다음에 무슨 집안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지 아기의 낮잠 시간은 몇 시쯤 일지 다음 수유에서 몇 미리를 줄지 기저귀나 물티슈 등 필수품들이 떨어지지 않았을지 혼자서 바쁘게 생각하고 있어서.
그렇게 바쁜데도 다음 순간에는 아기를 보고 웃고 노래를 부르며 밝은 목소리로 그림책을 읽고 있어서.
힘든 만큼 행복도 커서 외롭다는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외롭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아서.
그래서 내 외로움을 누군가에게, 아마도 나 자신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게 쌓이다 보니 가끔씩 외로움에 깔려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럴 때 나는 16살의 그날을 생각한다.
지금의 나보다도 비참한 표정으로 목도리를 고르는 내가 보인다.
일단 얘부터 구해줘야겠다 싶어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나도 조금은 괜찮아진다.
외로워도 돼. 들켜도 돼.
조금만 울고 다시 장난감을 흔들어본다.
그리고 뭐, 지금은 혼자는 아니기도 하고.
어제의 너에게
그 목도리를 지금도 못 버리는 건 왜일까. 이제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기억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