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런 하루가 있을 뿐

오늘의 너에게 #2

by Illy

아기의 하루.

신생아 때는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놀 수 있는 장난감도 별로 없고 그럴 시간도 없이 먹고 자고의 반복이다.

엄마가 집안일을 하는 사이에 모빌이나 초점책을 보거나 수유 시간에 내가 계속 노래를 부르는 등 수동적인 활동이 대부분이다.


한 3개월을 넘어서 손에 조금 힘이 생기면 가벼운 장난감을 잡을 수 있지만 아직 즐겁게 노는 느낌은 아니다(본인은 엄청 즐거울 수도 있다).

그러다가 자신의 손을 발견하게 되고 조금씩 집중하거나 신나게 놀거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손을 한 번 발견하면 끝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5개월. 이때쯤 되니 혼자 엎드리고 파닥파닥 잘 논다.

장난감을 손이 닿는 곳에 배치해 두면 혼자 잡아서 깨물고 때리고 흔들린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내 발도 좀 때려보고 수건이 있으면 수건도 잡아보고 제법 바쁘다.



바빠진 건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딸은 아직 배밀이가 잘 되지 않아 장난감을 놓치거나 손에 닿지 않으면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면 엄마가 출동. 앞으로 가는 걸 도와주거나 너무 멀리 날아간 장난감은 가지고 온다.



엎드려있다가 분유를 토하면 또 출동. 갈아입히고 손빨래도 좀 하고 새로운 거즈를 꺼내고......

그러다가 또 들리는 울음소리. 출동.


아기는 컴퍼스의 바늘이고 나는 주변을 도는 연필이다.

물론 이 연필은 원을 그릴뿐만 아니라 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부르고 마사지도 해주고 또 안아주면서 집 안을 탐험하러 나가기도 한다.




매일 이 반복이다.

패턴이 잡혀 있어 좋긴 하지만 단조로워서 더 힘들고 답답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만 갇혀 있고 한 곳에 머무는 느낌.

힘들었던 어제를 돌아보며 한숨을 쉬고 또 다른 힘듦이 기다리는 내일을 생각하며 불안해한다.

그냥 단조로움이 아닌 답답한 단조로움이다.



하지만 시선을 나에게서 아기로 돌려보면 단조롭다는 말과는 아주 거리가 먼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아기에게는 매일매일 자극과 발견이 넘쳐나고 아기 자신도 큰 변화, 즉 성장을 겪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어제는 힘껏 들어 올린 자신의 발을 먹지 못했지만 오늘은 먹을 수 있다.

어제의 옹알이는 모음뿐인 느낌이었지만 오늘은 무언가 자음이 섞인 소리를 낸다.

어제의 이유식 당근은 다 뱉었지만 오늘은 두 세 숟가락 먹는다.


물론 아기도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다 연결은 되어 있지만 어른들처럼 미래를 예측하거나 계산하거나 과거를 후회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지금 하고 싶은 걸 못한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고뇌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때 할 수 있고 즐거워 보이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또 큰 성장을 겪을 것이다.




나는 단조롭다고 하소연을 하고 아기는 심플하게 즐기면서 산다.


나는 부럽다.

자꾸 '이번 달은 뭐가 잘 안 되네', '내 인생이 왜 이럴까'처럼 큰 단위로 보게 되고 우울해지지만 사실은 다 하루의 문제이다.

하루하루 다르게 흘러가는 걸 깜빡하게 된다.


아기에게는 그냥 조금 불편한 날과 편안한 날이 있을 뿐.

오늘 장난감이 손에 닿지 않는다고 우울해하지 않을 것이고 내일이 어떤 날이 될지 오늘부터 걱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일이 되면 또 열심히 손을 뻗고 놀 것이며 열심히 슈퍼맨 자세를 취할 것이다.



아기 덕분에 중요한 걸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내 성장도 기대하게 된다.



정말이지 아기한테서 많이 배운다.



오늘의 너에게.

오늘은 좀 살살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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