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뜬 아이의 현재

어제의 나에게 #1

by Illy

들-뜨다


1. 마음이나 분위기가 가라앉지 아니하고 조금 흥분되다.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신기하게도 들뜬 아이였다.

이 문장에서 두 가지 표현에 대해 보충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먼저 "신기하게도".



왜 들뜬 아이인 게 신기한 건지.

돌이켜보니 들뜬 채로 살기에는 힘든 환경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에 친구가 없었다.


없을 뿐만 아니라 같은 반 여자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고 따돌렸다.


하루 종일 혼자 보내다가 집에 오면 거실에 인형들과 인형의 집을 펼쳐놓고 한두 시간 그들의 세계 속에 들어갔다.

엄마가 저녁식사 준비를 끝내고 나를 부르니 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아 속이 후련하네'


7살 8살이 학교에서 누구랑 대화도 제대로 못하고 온 한을 집에 와서 혼자 열심히 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늘 침울하게 울상으로 보냈던 것도 아니다.


여기서부터 두 번째, "들뜨다"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설명해야겠다.



나는 학교에서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고 한다.

분명 나는 매일매일 학교에 가기 싫었고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하면서 어떻게든 집에 있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학교에 도착하면 웃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도 엄마에게 '언제 봐도 웃고 있어서 친구와의 관계가 안 좋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라고 하셨다.



'학교에서 정말 밝은 아이예요'

이런 말도 하셨다.


"밝은 아이""밝은 친구"

지금까지 많이도 들은 말이다.


이 밝음은 "들뜸"에 더 가깝다.

밝은 게 아니라 가라앉지 못하고 있었다.

기분이 업되긴 하는데 적절한 높이를 모르고 있는 느낌이다.


수다를 떠는 친구가 없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바빴고 그로 인해 나타난 들뜸.

아예 다른 세계로 가서 스트레스를 풀고 현실세계에서 애써 웃는 들뜸.


나는 괜찮은 아이라고 외롭지 않다고 그렇게 보여주고 싶어서 나를 일부러 허공에 뜨게 했다.

나는 유년시절을 그렇게 보냈었다.


딱하긴 하다.


울어도 되고 떼를 써도 될 나이에 현실도피를 해야만 했다니.

꿈을 꾸는 행복한 도피도 아니고 나에게 아무 문제가 없음을, 내 행복을 믿기 위한 도피를 하고 있었다니.




이에 대한 부작용 또한 있었다.

나는 야뇨증을 앓고 있었다.

세 자매 중 둘째로 자란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엄마와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엄마는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표정은 웃고, 몸은 울고.


그런 나를 돌봐주지 못한 내가 어른이 되어서 대가를 지르게 되었다.



사회에 나가면서 치이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그 와중에 역시나 나는 웃었다.

마음이 거부하고 있는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도 웃었다. 거절도 못하고 부탁은 다 들어주면서 아파했다.


이제 야뇨증은 없다.

대신 마음이 지쳐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내 토대가 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직시하고 그때의 나부터 먼저 구해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노력이라고 하면 말이 거창하지만 단순히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나에게 사과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미워하고 싶었던 일들을 올바르게 미워하는 것도 함께 했어야 했다.

외로웠고 아팠던 에피소드들이 하나씩 떠오를 때마다 '그래. 그건 외로울 만 해'라는 식으로 인정해 주었고 원인 제공자가 있다면 마음의 눈으로 한번 째려봐줬다(욕 한번 못하는 나. 소심하다).



그런 식으로 의식적으로 해보니 변화를 조금씩은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즐거우면 즐겁다고, 지금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는.


... 아닌가?

나는 표현을 안 하는 편이니까 좀 더 해보자, 정도의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어찌 됐든 큰 변화다.



그런 내 앞으로의 과제.


지금까지 천천히 걸어온 나를 앞으로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기.



슬픈 생각이 들 때마다 동원되는 과거의 나까지 함께 안아주기.

그리고 가라앉아도 된다고 말해주기.


그런다고 뭐가 변할까 싶은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


현재 삶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과거의 나를 잊지 않고 지내보려고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게 된 내가 그 당시 나까지 챙겨줄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삶의 과제가 생긴 것 같다.



어제의 나에게.

버텨줘서 기특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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