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에게 #2
저 일본에서 태어났어요.
교토라고 혹시 아세요......? 네, 네, 맞아요. 관광객 진짜 많은.
외가가 교토인데 거기서 태어났어요.
잠시 거기에 있다가 친가가 있는 니이가타라는 동북쪽 지방에서 몇 년을 살다가 도쿄로 이사를 갔어요.
그 후에는 학부 졸업까지 쭉 도쿄에서 살았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면 듣고 있던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렇게 말한다.
'아아 일본인이셨구나'
강하게 부정할 수는 없다.
만약에 국적과 상관없이 언어나 문화, 습관 면에서 본다면 나는 일본인이 맞다.
한국 90년대 음악은 몰라도 일본 90년대 음악은 가사를 보지 않아도 부를 수 있고 첫 아르바이트는 16살 때 일본 편의점 로손에서 했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엄마가 만든 낫토 유부주머니 구이다.
명절은 음력이 아닌 양력으로 챙기기 때문에 8월 15일 お盆(오본) 때는 동네 아이들을 위한 오본 이벤트에 참여했었고 설날은 1월 1일에 떡이나 오세치라 불리는 전통적인 일본 설날 요리를 먹었었다.
여느 일본 가정과 문화적으로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국적으로 본다면 나는 한국인이다.
일본은 출생했다고 일본 국적을 부여하지는 않기 때문에 부모님 국적을 따르게 되는데 부모님도 다 한국국적인 것이다.
참고로 부모님도 일본에서 태어나셨지만 국적이 한국이다.
즉 나는 재일교포 3세다(어머니께서도 3세이시니 어떻게 보면 4세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세히 분류하면 재일 외국인 중에서도 올드 커머(Old Comer)라고 불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들의 자손이다.
그런 내가 인연이 닿아 학부 졸업 후 한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서 약 10년을 살면서 이제는 내가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신경 쓰지는 않지만 일본에서 살았을 때는 "일본인이 아님"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고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일단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불리는 자신의 이름이 주변 친구들과 확연히 달랐다.
일본 이름도 있긴 했지만 비교적 내 이름은 일본에서도 발음이 쉬운 편이었고 나중에 국적이 어쩌고 저쩌고를 설명할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유치원도 피아노 교실도 다 한국 이름을 쓰고 다녔다.
'웃긴 이름이네'
아이들 특유의 솔직함과 잔인함이 탑재된 공격에도 나는 크게 상처를 받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때는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오히려 좋았다.
초등학교는 재일교포들이 흔히 다니는 "조선학교"를 다녔다.
이 학교의 역사까지 적으려면 길어지니 생략한다.
북한 자본이 기반이 된 학교인 건 맞지만 반의 거의 대부분 아이들은 조부모가 경상도나 제주도 출신이다. 교육적으로 북한에 대한 찬양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은근히 아이들은 그걸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걸러내고 있고 일본에 대한 감정 또한 나쁘지 않다(나쁘면 사실 일본에서 살아가기 힘듦을 잘 알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나는 솔직히 초등학생 당시에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조선학교가 아닌 한국학교였으면 우리가 주변 일본인한테서 공격당할 일은 없을 텐데......라는 생각은 몇 번 해봤던 것 같다.
아무튼 거기서 나는 한글을 읽을 줄 알게 되었고 조선어? 한국어? 는...... 글쎄 습득했다고 하기 애매하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일본어식 무언가를 배웠다(내가 졸업할 때 즈음부터 한류가 유행하기 시작해 학교에서 배울 언어가 많이 한국어화 되었다고 들었다).
내가 배운 건 일본어 문장에 한글을 얹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 학교에서 친구도 없이 지내다가 중학교는 일본 중학교를 다녔다.
원래 조선 중학교를 안 가게 되면 교직원들의 방해 공작(?)을 많이 받기도 하는데 나는 다행히 두 살 많은 친언니가 먼저 조선 중학교가 아닌 일본 중학교를 선택해 준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다니게 된 일본 중학교는 자유로운 느낌이 좋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거기서부터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나는 일본인이 아니다는 인식을 쭉 가지고 살았고 분명 그게 좋았던 시기도 있는데 갑자기 부끄럽고 싫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춘기의 건강한 정신 상태라 볼 수도 있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나 싫었다.
'한국어 가르쳐줘'
'집에서는 김치 먹어? 다음에 먹으러 가도 돼?'
친구들의 이런 관심도 싫었고 내 이름도 싫어졌다.
나는 모두와 같은 게 좋았다.
아마도 초등학교에서 친구를 못 만들고 소외감을 느꼈었는데 중학교에서도 재일교포라는 것 때문에 자꾸 부리에서 제외되는 느낌이 들어서 속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중고등학교를 지내면서 나는 모두와 같을 수 있는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어졌다.
내가 마이너리티가 아닌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특히 발음에 신경을 썼다. 발음으로 일본 출신임을 들키지 않고 싶었다.
학부 졸업 후 마침내 나는 기회를 찾아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지금은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외국 출신이냐고 먼저 물어보지는 않아서 일단 목표는 달성했다. 아마도.
하지만 한국에서도 마이너리티를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기로 가면 재외국민으로 분류되고 저기로 가면 한국인이고 또 다른 데로 가면 해외에 영주권이 있다는 이유로 외국인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렇게 한국적으로 들렸던 내 이름도 한국에서는 또 특이한 편에 속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이전만큼 신경을 쓰지 않게 된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 때문이다.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디서 태어났든 상관없이 나와 시간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가 집에서 일식을 먹든 이름이 어떻든 상관 안 하는 사람들이다.
나 또한 그 사람들이 어디 나라 사람이든 상관을 안 하고 있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나와 비슷한 재일교포 3세, 4세를 만나면 약간 마음이 흔들리곤 한다. 그것만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 오는 데 길었다.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어느 나라인지 상관없이 나와 내 가까운 주변, 그리고 그 외. 이렇게 심플하게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제의 나에게.
너 한국에서 살게 돼. 고생도 좀 하고 외로움도 느껴. 그래도 네가 선택한 길이고 네가 맞다고 믿었다면 맞는 길이야. 후회 없도록 내가 행복하게 지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