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너에게 #3
분만은 엄마와 아기의 목숨이 걸려있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매일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출산하고 아기들은 자라는 그 흔함(?) 때문일까 아니면 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 때문일까 약간 쉽게, 그저 기쁜 일로 생각하게 되는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열 명도 더 낳는 사람도 있는데'
'낳고 나서가 더 힘들지'
'간호사 선생님 말 듣고 하다 보면 어떻게든 잘 될 거야'
'순산하세요'
목숨이 걸려 있는 데 비해 조금은 무게감이 없지 않을까 싶은 응원의 말들을 많이도 들었다.
불만이 있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고생에 비해 인식이 너무나 가볍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국에는 나도 아프겠지? 정도의 가벼운 불안감만 안고 탄탄한 각오도 못한 채 그날을 맞이했다.
이 글은 출산 당일 이야기에 대한 글이다.
(출산 직후에 기록해 놓은 게 토대가 되어 있어 미화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9주 1일, 어느 토요일.
여기서 전제가 되는 사항: 당시 아파트 승강기 교체 공사를 하고 있어 만삭인 나는 11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다(의사 선생님께서도 막달에 하루 한번 오르내릴 정도는 괜찮은 컨디션이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새벽 2시쯤: 누워있는데 툭 소리가 난 것 같아서 화장실에 가보니 이슬이 보였다.
새벽 4시쯤~: 배가 아파와 시간을 재보니 6분 간격 정도 된 것 같아 병원에 전화했지만 초산이라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아픈 정도는 조금씩 약해졌다. 마침 오전에 진료 예약이 있어 그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갔다.
오전 10시: 병원에서는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증상을 다 설명드리니 다음날에 유도분만을 하자고 하셨다. 일요일~월요일에 태어나겠구나 싶었다.
오후 13시: 남편과 함께 파스타를 먹었다. 아기가 크다고 식단 조절을 하고 있었는데 내일 낳는다고 생각하니 이제 뭐든지 먹어도 될 것 같아 열심히 먹었다. 그런데 먹는 동안 배가 아파왔고 새벽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내일 유도를 잡았다는 생각이 박여있어 한번 집에 갔다. 아팠는데 어떻게 계단을 올라갔을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후 16시: 화가 날 정도로 아픔이 세져서 남편이 전화를 걸어 병원에 가기로 했다. 어김없이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일 낳는 건데...... 하고 있었고 계단에서 다른 주민을 마주칠 때 왠지 모르게 태연한 척 아프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다.
내 인내심? 자존심? 은 어디까지 뿌리를 내린 걸까.
오후 16시 20분: 토요일 진료시간이 다 끝난 병원에 도착해서 외래 당직 선생님이 봐주셨지만 그래도 자궁문은 2센티라고 하셨다. 이게 2센티라니. 앞으로 얼마나 더 아파질지 절망적이었다. 그런데도 너무 아파서 못 걸을 정도가 돼서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간호사 분께 못 걷겠다고 하니 휠체어를 준비해 주셨다.
오후 16시 30분~: 분만준비실에서 베테랑으로 보이는 간호사 분이 내진을 해주시는데 너무 많이 진행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웠다. 자궁문이 몇 센티인지는 못 들었지만 준비실에는 거의 있지도 못하고 분만실로 이동했다.
분만실에서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약물 알레르기 확인이나 가족력 확인 등의 설명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양수가 터졌고 베테랑 간호사님이 오셔서 아기가 태변을 본 거 같으니 무통 없이 빨리 진행하자고 하셨다. 그래도 초산이라 4~5시간은 더 걸릴 텐데 너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에게 선택지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일이 흘러갔다.
바로 간호사 선생님들과 함께 힘주기 연습을 몇 번 하더니 의사 선생님이 어느새 들어와 있었고 어느 순간 가슴 위에 아기가 있었다.
'엥......? 앗 감사합니다......'하고 어리둥절.
아기는 태변을 먹은 가능성이 있어 바로 처치를 받으러 갔고 시계를 보니 17시 13분이었다.
분만실에 들어간 지 40분 만에 출산이 끝났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지옥의 봉합 시간이 시작되었다. 무려 2시간 거의 마취 없이 진행되었는데 분만 40분에 봉합 2시간은 너무 균형이 맞지 않은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해도 억울? 하다.
지금까지 내 출산 당일 이야기였다.
40분 만에 끝났다고 하면 "순산"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담당의사 선생님 왈
'초산이면 자궁문이 다 열린다고 해도 40분은 너무 빠르다. 집이나 차에서 낳을 뻔했다'.
차에서의 기억은 거의 나지는 않지만 확실히 무서운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순산이든 난산이든 역시나 출산이란 건 기쁨과 위험,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다. 적어도 분만 중에는 위험과 공포, 아픔. 이 3종세트 밖에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아기는 다음날에야 직접 볼 수 있었다.
너무 작고 깨끗했다. 매끈해서 뭔가 예쁜 화과자(이미지는 일본 쿠리만쥬(밤만쥬))같았다.
뭐가 급해서 그렇게 빨리 나왔을까. 아니 나와줬을까.
그런 전쟁 같은 순간은 잊었는지 곤히 잠들고 있었다.
지금 엎드려 슈퍼맨이 되면서 발버둥 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날 생각이 든다.
오늘의 너에게.
다리를 힘껏 뻗는구나. 키는 크겠다.
근데 분유 먹는 동안은 좀 가만히 있으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