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너에게 #1
아기를 안은 채 병원 의자에 앉아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5개월 된 아기가 얼굴 피부에 습진이 났다.
자꾸 특정 부분이 빨갛게 오돌토돌하게 올라왔고 점점 넓은 범위로 퍼졌다.
나는 열심히 이 습진이 무엇인지, 어떤 대처를 해야 할지 검색했고 비슷한 사례에 달린 해결책을 보면서 따라 해 봤지만 날이 갈수록 증상이 더 심해졌다.
가장 심할 때에는 진물이 나 있었고 가려워서 긁었는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피가 나 있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소아과에 갔었고 처방받은 약을 발랐다.
거기서 들은 관리 방법은 "꼼꼼한 보습"이었다.
약을 바르니 그렇게 심했던 습진이 순식간에 옅어졌고 아기 피부에 약을 쓰는 게 약간은 걱정됐던 때를 잊고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아기도 편해 보여서 다행이다 싶었고 나도 남편도 한숨 돌렸다.
그럼 이제는 열심히 보습을 해줘야지.
마침 샘플을 써보다가 아기에게 맞는 크림을 찾은 것 같아서 그 크림을 구매하고 열심히 보습을 했다.
크림을 들고 다니면서 정말 수시로 발라준 것 같다.
그런데 느낌이 싸하다. 다시 볼에 무언가 빨갛게 올라오더니 약을 써서 나아진 속도와 비슷한 속도로 다시 습진이 퍼지고 진물도 나고 아기는 가려워했다.
매 순간 보게 되는 아기 얼굴 피부가 그렇게 되니 마음이 정말 아프고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보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습이 중요하니까. 보습이 유일한 관리방법이니까.
그렇게 믿었고 열심히 보습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차도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처음에 났던 습진보다도 심하게 난 것 같았다.
나도 불안함과 걱정에 잠을 설치게 되었고 잠을 못 자는 시간에 병원을 알아보게 되었다.
전문가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보고 싶었다. 내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마침 근처에 평이 좋은 피부과가 있는 것을 보았다.
예약은 받지 않고 적어도 1시간은 줄을 서야 한다.
아기 진료도 많이 보는 것 같아 나는 그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남편이 반차를 쓰고 아기를 보는 사이에 내가 줄을 섰고 다행히 두 번째로 진료를 보게 되었다.
진료실에 들어갔다.
아기 얼굴을 보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보습 열심히 했죠?'였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엄마 잘못이에요. 물론 그렇게 지시한 소아과 잘못이지만'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 순간 확실히 충격도 받았지만 또 오랜만에 숨을 제대로 쉰 것 같았다.
남편도, 불안한 마음에 상의했던 친정 엄마도 친언니도 다 내 탓을 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엄마 탓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줬다. 정말 고마운 말들이다.
아기는 내가 크림을 들고 다가가도 엄마 보고 좋다고 웃었다.
아침에 자다 깨서 얼굴에 피가 묻어 있더라도 방긋방긋 웃어줬다.
너무나 미안했다. 미안해서 나는 그동안 계속 자책을 했다.
그 와중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
'엄마 잘못이에요'
아마도 접촉성 피부염으로 보인다고 하셨고 아기가 졸릴 때나 엄마 아빠 품에 있을 때 볼을 비벼서 생긴 습진인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그렇게 자주 보습을 위해 볼을 만지면 안 됐던 것이다.
(참고로 나는 선생님께서 엄마가 아기 피부에 대해 올바른 대처 방법을 쓰지 못했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는 걸 그 후 맥락에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오히려 소아과에 대해 분노하고 계시긴 했지만 선생님 말씀은 불안하고 지친 엄마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인 건 맞다. 즉 따끔한 한 마디가 무조건 효과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게 한번 혼난 나는 더 이상 필요이상으로 자책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제대로 반성하고 먼저 아기에게 잘 맞는 약으로 적절히 치료해 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보습의 굴레"가 끝났다.
지금도 습진이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가를 반복한다.
그래도 나는 이제 크림을 들고 다니지 않고 ㄱ과하지 않게 관리한다.
마음은 똑같이 아프지만 불필요하게 초조해하지는 않는다.
나도 이렇게 늪에 빠졌다가 벗어났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가 넘어졌다가 뒤로 갔다가......
그러면서 부모가 되어가는 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에는 아기의 협조도 남편의 협조도 필요하고 반성과 칭찬, 질타도 필요한 거겠지 싶다.
아기의 발달과 성장이 끊길 일이 없이 이어지듯이 나도 조금씩 조금씩 어른이, 부모가 되나 보다.
그걸 다시 깨닫게 되는 일이었던 것 같다.
먼 훗날 아이의 영유아기를 돌이켜봤을 때 이때 일들이 먼저 생각나겠다 싶었다.
그때 내 옆에서 아이가 건강하게 뛰어놀고 있길 바란다.
오늘의 너에게(지금 대자로 누워 자고 있는 바로 너).
아프게 해서 미안해. 하루하루 더 건강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