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xd Aug 19. 2023

산방산에서

이제 제주기억을 bxd 유튜브에서도 만나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x2-bMoEHu6Q


 뭐예요?

평지에 떠 있는 산은 멀리서도 그 위용을 자랑했다. 머리가 뾰족하지 않고 완만한 데다 둘레가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우뚝 솟았다기보다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염이 긴 산신령이 살 것만 같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는 산이었다.

산방산이야. 참 신묘하지 않냐.
산방산? 탄산온천?
그럴걸?
나 내일 여기 오는데. 온천 예약했거든. 여기구나...
온 김에 가볼래?
가보지 뭐.

가까이서 본 산방산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 더 크고 더 아찔했다. 깎아지른 절벽에는 풀은 없고 산은 거대한 돌덩이 그 자체였다. 저 산에 올라가려면 목숨 걸고 암벽을 등반해야 하나 싶었는데 문화재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2031년까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한 차례 화재가 있었다더니 절벽 위 푸른 산머리 한쪽이 머리를 민 듯 마른 나뭇가지 색이었다.

산방산 아래에는 란 유채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도민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사유지로, 하루라도 더 빨리 관광객을 끌기 위해 원래대로라면 3월에나 만개할 유채꽃에 인공적으로 약을 친다고 했다. 땅주인의 노골적인 욕심 덕분에 관광객은 두당 천원을 내고 인스타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산방산 유채꽃은 이곳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이 되었다. 돈을 내면서까지 사진을 남길 마음은 없었기에 도로에 서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도민이 가자고 했다.


왜?


도민이 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아주머니가 돈을 받으러 다가오고 있었다. 꽃밭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산방산을 찍으려는 건데 누가 거기에 유채꽃을 심으랬나... 약값을 뽑아야 하는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나 눈살이 찌푸러졌다.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는데 도민이 말했다.

근처에 놀이동산도 있는데 가볼래?
놀이동산이 있다고? 여기에?
여기 유명해. 페퍼톤스가 영감을 받고 곡을 쓸 만큼.
그럼 가야지.

산방산랜드에 도착했을 때 도민은 회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내일 급히 출근해 달라는 듯했다. 도민이 통화하는 사이 나는 차에서 내려 랜드로 향했다. 입구에는 산방산랜드라는 표지판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는 산방산바이킹!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회전목마와 바이킹 외에 별다른 놀이기구랄 것도, 매표소도 없는 폐쇄 직전의 스러져가는 곳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바로 앞에바이킹이 운행 중이었다.

구나.

어제 비양도에서 나오는 배 위에서 느낀 스릴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지만 후룸라이드와 바이킹은 레벨이 다르기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일단, 적진을 탐색하듯 바이킹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가슴 찡하게 노래하는 페퍼톤스
산방산 바이킹에 매료되어 “바이킹” 가요 만들다

자부심이 가득 담긴 광고 문구 아래에는 가수의 사인과 함께 수기로 산방산 바이킹! 최고!!라고 쓰여 있었고 바이킹을 즐기는 사람들의 여러 사진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몰려오는 수준 높은 페퍼톤스팬들...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또 다른 판넬에는 서울 배재고 몸짱 사나이들!이라는 문구와 상의를 탈의한 여섯 명의 남학생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는데 몸짱이라 하기엔 뼈만 앙상하게 남았거나 배가 불룩했다. 여섯 명 중 두 명은 팔을 들고 즐기는 데 반해 셋은 얼이 빠진 것 같았고 한 명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사진의 상태로 볼 때 지금쯤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그들은 신들이 여기에 이렇게 박제되었다는 사실을 알. 사진 아래에는 사장님의 잠언이 적혀 있었다.

바이킹 철학(올라가면 반드시 내려간다)
잘나갈때 겸손하고 많이 베풀라는 교훈입니다.

또 다른 곳에는 중년 남성 셋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한 명이 양팔을 벌리고 서서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흉내 내는 반면, 다른 한 명은 거의 울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완전히 기가 질린 얼굴이었다. 그 표정이 너무나 실감이 나 사진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이 밖에도,


산방산바이킹은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줘서 우울증•암•자살 예방에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타기에 도전한 당신!!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외로워요! 껴안아주세요!

이 어이없는 문구들에 묘하게 설득되는 중이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바로,

어린이들에게 자신감을 키워주는 바이킹!! 20년 전 요금 3천원

그래, 결심했어!


내 안에도 어린아이가 있었다. 겁 많은 이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줘야겠다 싶어 작심하고 바이킹 출입문으로 향했다. 티켓은 따로 없이 사장님으로 보이는 조종수 아저씨에게 3천원을 직접 건넸다. 맨 끝 줄은 아무래도 무리겠다 싶어 끝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다. 반대쪽에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앉았고 가운데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탔다.

우우우우웅. 바다 저 깊은 곳에서 범고래가 포효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슬 긴장이 되면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 손잡이가 덜컹하며 아래로 주저앉았다.

뭐야, 고장 났나?

손잡이 잡고 흔들어 보니 위아래로 심하게 덜컹거렸다. 뭐야! 일순간 정신이 번뜩 들면서 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다. 그러나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며 순식간에 배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와아아악 하하하하

비명인지 환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났다. 내려갈 때는 그나마 괜찮은데 올라갈 때가 문제였다. 손잡이가 뜨면서 엉덩이도 동시에 떴다. 농담이 아니라 이대로 튕겨나갈 것만 같았다. 손잡이를 꽉 잡고 엉덩이를 붙이기 위해 무릎을 굽혀 바닥에 앉으려 했다. 소용없었다. 몸이 중력을 거스르며 날아올랐고 나는 거의 누운 자세로 방산랜드 전체를 울릴 것만 같은 발성으로 비명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악 하하하하하하하

재미가 있어서인지, 공포에 질려서인지, 도와달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비명과 웃음이 혼재된 고함소리였다. 눈에서는 눈물이 났다. 이 역시 무서워서인지, 재미있어서인지, 안구건조증 때문인지 정체를 알 수 없다. 나의 비명소리가 끝나면 앞에서 학생이 바통을 이어받아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와 같이 탄 사내아이는 할머니 쪽으로 머리를 숙이며 내 고추 살려, 내 번데기 살려 외쳤다. 저 할머니는 괜찮을까 걱정되는 것도 잠시 몸이 다시 하늘을 향해 떴다.

와아아아아아악 하하하하하하하하

바이킹이 좌우로 흔들리는 내내 나의 비명과 웃음소리가 산방산랜드 전체를 울렸다.




사장님의 센스 넘치는 홍보문구 어쓰기를 포함해 있는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