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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xd Nov 11. 2023

브런치


뒷담화는 비밀로 하고 회포를 풀기 위해 호텔 근처 흑돼지집을 찾았다. 도민은 이곳에 온 적이 있는지 주인과 아는 체를 하고는 삼겹살에 소주를 시켰다.

한라산에 다녀왔으니까 한라산을 마셔야지.

한라산이 나오고 도민은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병을 집어 들며 말했다.

이제 이 한라산을 볼 때마다 오늘을 기억할 거야. 이게 우리가 봤던 남벽이거든.

투명한 병에 부착된 스티커에는 눈 덮인 한라산의 정상이 인쇄되어 있었다. 간혹 술자리에서 한라산을 시키는 사람들로 인해 병에 한라산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것이 남벽인 줄은 몰랐다. 하루 종일 추위에 오들오들 다리가 후들후들 사투한 것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그래, 잊을 수가 없지. 그렇게 걸었는데.
인생에 기억할 장면이 생겼다는 게 얼마나 멋지냐.
그래, 멋지긴 한데, 돈내코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죽는 줄 알았어.
맞아요. 한 번이면 족한 것 같아요. 다음엔 다른 길로 가요.
이번에는 남쪽으로 내려갈 계획이었으니까 거기로 온 거야.
다음에는 록담이를 봐야지.
우와, 우리 다음에도 다 같이 가요.

우리는 언제 있을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며 잔을 부딪쳤다. 목구멍을 적시며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한라산은 쓰면서 달았다. 도민의 말대로 한라산을 잊지 못할 것이다. 쓰면서 단 그 기억을.

삼겹살이 나오고 도민은 자연스럽게 집게를 들어 고기를 불판에 올렸다. 지지지직 소리가 났고, 우리는 어미새가 잡아 먹이를 기다리듯 군침을 삼키며 불판을 바라보았다. 도민이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내일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없는데요. / 하자는 대로 할 건데.

j와 내가 동시에 말했다.

너넨 아무 생각이 없구나.

j와 내가 동시에 웃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 해장을 하자. 아주 잘하는 소해장국 집이 있거든.
나 해장국 못 먹는데, 비려서.
거기 하나도 안 비려. 아주 맑아.
해장국이 안 비릴 수가 없는데.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하나도 안 비려. 해장국 안 먹는 사람도 거기는 다 좋아한다니까. 한번 믿어 봐.

도민은 하나도에 강세를 뒀다. 그리고는 j에게 물었다.

해장국 먹니?
저는... 해장국 잘 먹지는 않는데 먹을 수는 있어요.
그럼 내일 아침은 소해장국으로 하자.

j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해장국을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직 해장국보다는 브런치를 즐길 나이었다. 나 역시 소해장국은커녕 아침을 먹으면 속이 부대꼈다. 그런 우리와 달리 도민은 혼자 신이 나 보였다. 도민이 다 익은 고기를 우리 쪽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글 못 올려서 어떡해?

글이라 하면 내가 sns에 올리는 여행 노트를 말했다.

노트 가져왔어. 기록해 뒀다가 나중에 써야지.
근데, 언니 글 재밌지 않아요?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며 j가 말했다. 도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너 예전에 글 쓴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었지.
지금은 안 써?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브런치라도 해봐. 너 정도면 바로 작가 될 수 있어.
브런치? 그게 뭐야?

도민이 허허, 리를 냈다. 이가 없을 때 나오는 소리였다.

글 썼다는 애가 어떻게 브런치도 모르냐?
알아야 되는 거야?
그거 유명해.
그래?
거기서 알려져서 책 낸 사람들도 있어. 검색해 봐.

핸드폰으로 브런치를 검색했다. 작품이 되는 이야기라고 적혀 있었다. 나중에 찾아봐야지. 화면을 캡처한 후 핸드폰을 내려놓고 도민이 구워준 삼겹살을 집어 들었다. 과연, 미식가는 고기 굽는 솜씨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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