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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xd Nov 15. 2023

내가 잠든 사이


제주에 와 그렇게 푹 잔 건 처음이었다. 잠자리가 계속 바뀌며 하루 6시간 이상 잠자지 못했었다. 한라산의 힘이었다. 그리고 내가 잠든 사이 아주 놀랄 만한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인스타 팔로워가 한 명 늘었다. b였다. 그리고 b로부터의 메시지...

인스타 가입했다. 잘 읽었어. 전부. 네 목소리도. 여행 손바닥 메모 모음 솔직 담백 무척 좋네. 넌 순간을 잡아내는 이런 단상글에 재능이 더 있을지 모르겠네.

실소가 터져 나왔다. 시간을 보니 30분 전에 남긴 메시지였다. 바로 답장을 보냈다.

웬일이래. 안 본다더니. 가입까지 다 하고.

웬일로 바로 1이 사라지고 답장이 왔다.

새벽에 깨서 잠이 안 와 뒤척이다.

b답지 않은 말과 행동에 다시 웃음이 났다. sns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b였다. b는 세상을 한 발짝 떨어져 보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거리를 두었고 그래라, 알았다 하는 식의 관조적 자세를 줄곧 유지해 왔었다. 제주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그런 사람이 내가 제주에서 무얼 하는지 보기 위해 가입까지 하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특한 마음에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멀리 남벽이 보이는 윗세오름 돌 표지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b가 바로 핑크빛 하트를 보내왔다. b답지 않은 반응에 자꾸만 웃음이 났다. 다시 답장을 보냈다.

귀엽게 왜 이러지.
네 글 읽고 널 다시 보게 됐어.

끅끅 웃음이 새어났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지난번 물가에서 통화할 때도 그렇고 b는 지난 5년간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b의 반응을 놀리듯 답장을 보냈다.

초심을 잃지 마라. 사람이 변하면 안 된다.
그동안 너한테 잘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걸 이제야 깨달은 거야?
응. 언제 통화할 수 있어?
내일 오후쯤?
그때는 혼자가 되는 거야?
엉.
알겠어. 기다릴게. 오늘 여행 노트도.

b는 또다시 핑크빛 하트를 보내왔다. 끅끅 웃느라 배가 땅겼다.

또 한 가지 벌어진 놀라운 일은 도민의 메시지였다.

차 가져왔으니까 짐 가져가서 편하게들 챙기셔. 준비 다 되면 해장국 먹으러 가자고.

도민의 차에는 우리의 짐이 실려 있었다. 도민은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제주시의 집으로 가 차를 끌고  것이다. 갔다 오는 시간을 더하면 2시간 반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그 메시지를 보고 j와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세를 너무 많이 지고 있었다. 너무 고마웠지만 조금 부담스러웠다.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내가 계산적인 건가.

언니는 아침 먹어요?

j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더 자고 싶은 것 같았다. 나 역시 잠긴 목소로로 대답했다.

아니...
저도요... 어떡하지... 가기 싫은데...

j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았다. 나도 가기 싫었지만 아침부터 수고한 도민에게 차마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도민은 제주에 온 우리가 가능한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 하자는 대로 하자... 차도 가져왔는데...

도민의 말과 달리 소해장국은 비렸다. 우직하게 해장국 외길 인생을 걸어온 이곳은 다른 해장국 집에 비해 확실히 냄새가 덜 났다. 다른 곳과 달리 국물도 맑고 담백해 안 비리다고 한 도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의 내장 냄새는 감출 수 없었다. 그 냄새를 감춘다면 소해장국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불행히도 비위가 약한 나는 한 숟가락을 떠먹고 더 이상 먹지 못했다. 도민은 민망해하며 내 밥의 절반을 가져갔고, 나는 남은 밥을 깍두기와 먹었다. 아침을 먹지 않는 j도 해장국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도민이 상심할 것을 걱정하여 억지로 먹는 것 같았다. 결국 j도 해장국을 쯤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두 번 다시 해장국이 비리지 않다는 말은 믿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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