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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Jun 30. 2023

열무 아저씨와 항아리 아줌마

episode 03.


 고요하고 나른한 시골 마을에 갑자기 등장한 어린아이와 그 엄마는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기 충분하다. 늘 같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다 보니 두 번 이상 마주치면 일종의 호구조사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 관심이 무서워 닌자처럼 사람 없는 곳을 쏘다녔는데, 높고 낮은 언덕에 출몰하는 우리의 모습은 동네 어디에서나 보이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되었다.


 어르신들 질문에 답을 안 할 수도 없고, 답하자니 애매해서 웃음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길 며칠. 나는 어느새 동네 주민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어르신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누군가 캐물으려 하면 의 또 다른 누군가가 '젊은 사람한테 꼬치꼬치 캐묻지 말라'며 타박을 하셨으니 나는 그 배려가 아주 고마웠다.

 

 좁은 동네의 뻔한 산책길을 오가다 보니 어디에 누가 살고, 무슨 일을 하시는지 금세 알게 된다. 크고 작은 텃밭을 가꾸는 부모님 세대가 대부분인데, 동네분들과 친해지다 보니 가끔씩 집에 놀러 가는 사이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긴 담이나 대문이 의미가 없다. 길과 마당의 경계가 불분명할 정도로 네 집이 내 집이고, 내 집도 네 집인 곳이랄까. 물론 나를 도와주시기 위해 오신 부모님이나 이모가 계실 때나 이웃집 방문이 가능한데(아직 혼자 갈 정도의 짬이 안된다), 우리 가족 간에 이웃들을 칭하는 별명이 생긴 걸 보면 심리적인 대문이 활짝 열린 것은 확실하다. 





 시골생활의 핵심은 이웃이다. 거의 매일 밥상에 오르는 온갖 종류의 채소들은 이 정다운 이웃들에게서 왔다. 마을 윗편, 소 농장으로 가는 길에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아저씨가 어느 날 갑자기 아빠와 친구가 되시더니 열무를 가지러 오라고 하셨다. 제철에 갓 수확한 열무라니, 그것도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상추를 키우는 아저씨의 농작물이니 기대할 만했다.

 아, 시골생활의 중요한 룰이 있는데 바로 '자급자족'이다. 열무를 준다고 했지 캐 준다고는 안 했다. 우리 몫으로 남겨두신 한 평 땅의 열무는 아빠와 이모의 노동 덕에 김치가 되었고 이분은 열무아저씨가 되었다. 

 

 마을 초입에, 항아리로 마당을 빙 둘러 기가 막힌 익스테리어를 해 놓은 항아리 아줌마는 아이가 가끔 잔디밭을 무단침입해도 그저 웃는다. 항아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아이에게 '놀다 가라' 쿨하게 한마디 하고 할 일을 하러 들어가신다. 그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논밭은 연두색 호수 같아서 한참을 구경하다 오기도 했다.


 아이는 옆집을 '꼬꼬집'이라고 부르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온갖 종류의 조류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긴 신부님의 가족이 사시는 집인데, 직접 알을 부화하신 아거위이 신부님을 엄마처럼 따른다. 강아지와 거위가 함께 산책하는 풍경을 본 적이 있는가? 엄청나게 동화 같은 장면이다.

 담 하나 너머로 온갖 종류의 채소를 건네주시기도 하고, 닭들 말고도 고양이 가족들과 까칠한 강아지가 있어 아이와 종종 놀러 가곤 한다. 동물원에 갈 필요도 없이, 작고 소박한 동물농장에서 꼬마 거위와 텃밭을 거니는 경험이 얼마나 값진지. 언제든 대문을 열고 맞이해 주시는 그 가족들의 마음은 더 예쁘다. 아이가 커서 이 장면을 기억할진 모르겠지만, 무의식 한편에 행복했던 유년의 한 장면으로 남길 바란다.


동물농장 꼬꼬집의 우아한 풍경



 또 다른 이웃집에는 십 수마리의 개와 엄청 큰 거위가 산다. 인생의 커다란 굴곡을 겪은 멍멍이집 아저씨는 단순하고 명쾌한 친절을 베푼다. 나는 그런 마음이 참 좋다. 이분은 우리가 처음 왔을 때부터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셨는데, 하다못해 에프킬라와 모기약까지 챙겨주실 정도로 가족 같은 사랑을 베푸셨다. 내 아이를 위한 배려였다.

 지금은 아빠와 거의 절친이 되어 오가는 길에 늘 안부를 물으신다. 거위알을 몇 번 주시기도 해서 생전 처음으로 달걀, 메추리알 이외의 알을 먹어보았다. 거위알은 계란과 맛이 같지만 한 알로도 계란말이 한 줄 뚝딱 가능할 정도로 푸짐하다.

 


(왼) 쌈채소 부케         (오) 거위알의 위엄. 계란의 세배 정도 크기이다.


 이토록 평화로운 생활 속에서는 나의 고통의 이질감이 더욱 도드라진다. 행복한 전원생활에 젖어들다가도 문득 변호사와의 통화나, 행정적인 부분을 처리해야 할 때면 그 극명한 대비감에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다행인 것은, 이웃 사람들을 만나면 고통스러운 감정도 제 자리가 아닌 것을 아는 것처럼 금세 기억 저편으로 숨는다는 것이다. 따사로운 빛 앞에 어둠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럴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이웃들에게서 온 신선한 음식들은 마음도 치유한다.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 집 마당 뒤편의 보리수를 나눠드리, 그 인사로 감자가 돌아다. 오고 가는 저녁 식사에는 그 집의 텃밭 일부가 옮겨온다. 이는 단순히 수확의 일부를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다. 땀과 시간과 인내를 나누는, 가장 값진 친절인 것이다.


 나의 이웃들은 오늘도 늘 같은 길에서 인사를 나눈다. 어제보다 하루만큼 더 친밀하고,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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