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꺼내어 보아야, 다시 새겨지는 일이 있다 (6)

태풍이 오고 난 이후에야...

by CHADA

엄청난 강풍과 폭우가 부산을 덮쳤다.

마린시티도 뭐 물에 잠기고 난리도 아니었다.

센텀시티까지 물이 흘렀다고 할 정도로, 꽤나 심각했다.


그날, 난 여전히 술에 잔뜩 취해서 잠들었다.

비 오는 소리도 심상치 않고 뉴스에도 난리길래 조금 일찍 나갔다.

우리 물건을 실은 탑차가 바닷가 코앞에 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도착해 보니

이건 보통 상황이 아니었다.

비가 퍼붓고 뭐 파도도 치는데

난 여전히 술이 덜 깼으니깐..

넋 나간 사람처럼 물건을 정리하고 차를 빼고 올라가는데

언덕 위에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단다

그냥 오라고 "미친놈아 죽는다고. 빨리 나오라고"

진짜 파도가 내 등뒤까지 와서 차를 덮치려고 하는데.. 그것이 들릴 턱이 있나.

근데 나를 정말 이뻐하셨던 이모랑 삼촌이.. 정말 화를 불같이 내시더라. 기억도 안 난다..

소리만 질러대서. 근데 뭐 이런 뜻이었던 것 같다

"니 왜 내려갔냐".

"죽고 싶으면 딴 데 가서 뒤져라". 하여간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올라와서 보니..

횟집 수조가 물에 잠겼더라.

본인들 가게가 물에 잠겨있는데도, 나한테 그렇게 성질을 낸 거다.

지금 생각해도 , 그 마음의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난 그 정도로 마음이 커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있고

좀 소강상태가 되어서 1층에 있는 수조를 보러 갔는데..


"아, 횟집 1층 수조에 고기가 하나도 없는 거 아닌가."

진짜 사람이고 동물이고 죽고 사는 건 팔자인가.

몇 시간 후면 식탁 위에 올라갈 고기들이 살 길 찾아 다시 바다로 가버렸다.


무튼, 다들 어이가 없어서 웃더라.

4층짜리 큰 회센터에서 팔려고 사놓은 수천만 원 치 고기가 아예 0이 된 거다.

다른 상점들도 마찬가지였고, 다 물에 잠기고 쓸려나가고 , 사람이 다치기도 하고..


그런데.. 사람 참 간사하더라.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가만히 보고 있는데... 완전히 초토화인데

정말 간사한 것이, 나만 힘들다 하고 살았는데

눈앞에서 정작 나보다 더 힘들어진 사람들 보니까. 내가 힘든 게 조금은 사라지더라.

무슨 깨달음, 해탈 이런 것이 아니라, 그냥 속이 조금은 쓸려내려 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본 풍경을 통해 내가 하나 깨달은 것이다.

삶의 경험치, 고통의 역치, 고난을 이겨낸 경험이란 것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강하고, 집요하구나.

지금 사업장이고 재산이고 다 싹 초기화가 됐는데...

"우짜겠니"ㅡ. 한마디 하고 바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다.

바닥을 쓸고, 청소를 하고 다시 고기를 사 오고..

내가 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계산대를 서기도 해서,

남은 돈이 얼마 있는지도 고깃값이 얼마인지도 얼추 알고 있었다.

그걸 아니까 , 저 덤덤함을 가진 사람이 태산 같더라.

같이 흙물을 쓸고, 닦고, 비품을 사 오고.. 나도 스멀스멀 마음이 잡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