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꺼내어 보아야, 다시 새겨지는 일이 있다 (끝)

인생은 항상 뒤통수로 온다, 앞통수로 오는 삶은 없다.

by CHADA

태풍이 오고 아무 일도 없단 듯이 해운대 사람들의 이상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때 같이 정비를 하고 태풍을 수습하면서.

당장 모든 게 날아간 사람들 앞에서 청승맞게 혼자 술 마시고 있을 수도 없고 해서, 술을 끊었다.

그때 끊은 술을 지금도 끊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장사를 시작했다, 잘됐다.

맨 정신에 웃으며 일을 하니 손님이 늘고, 돈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일을 마치면, 여관에 돌아와서는 공부를 시작하였고, 부산 막바지쯤 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때 부산의 인연들이, 서울에 있는 지인들을 소개해주고,

자리를 마련해 주고 그렇게 인맥이 쌓여갔다.

해운대에서 우리한테 물건을 달라고 하는, 사장님도 하나둘씩 생기고


정신이 맑아지니, 말이 뚜렷해졌다. 말이 뚜렷해지니, 눈빛이 건강해졌다.

더욱 신기한 것은 , 그때 우리 집의 사정도 거짓말처럼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운이란 이리도 신비로운 것이다.


시간이 흘러

해운대의 여름은 예전 해운대의 여름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슬슬 줄어드기 시작하였다.

그 해 여름이 지나고 꽤 쌀쌀 해질 때쯤.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를 마음먹었다.

"다시 새로 시작해야지, 올라가야겠다"라는 전화에

"여자친구" 지금의 "아내"가 내려와 주어서

짐을 싣고 같이 올라갔다.

지금 이 이야기에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의 내 아내는 그 당시,

거의 매주. 매월. 내려와서 일을 도와주고, 밥을 사 먹이고. 고생 많았다.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가득 찬 나를 옆에서 지켜보기 힘들었을 텐데

날 한 번도 놓지 않았다.


매번 내려와 일을 도와주어도 돈이 없어 맛있는 거 한번.

제대로 된 데이트 한번 하지 못하였다.

여관방에 짐을 싸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당시 내 기준으로 부산에서 먹은 회 중에 가장 맛있었던, 고랑치회를 사주었다.

올라오는 길에 부산에서 대구까지는 울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 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그 사람들과 다음을 기약했지만

나의 그 시절을 다시 꺼낼 용기가 없어. 10년이 지났다.


그 뒤로.. 힘든 일이 없었냐? 왜 없었겠나.

이랑을 처음에 시작할 때,

모든 라인업을 정리하고 단 하나의 상품만을 전문적으로 만든다며 리랑 펫 캐리어 만들 때도

가죽하나, 부속 하나 모든 것이 장애물의 연속이었고.

결혼의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결혼을 하고. 가장의 역할이 주어지고

딸이 태어나고, 바로 다음 해 또 딸이 하나 더 태어나고.

나는 뭔가 미래를 준비하며 꿈꾸는 것보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더 중요했다.

하루하루 당장의 현실의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다 보니 결국 가정의 여유. 안전한 가정은 해낸 것 같은데..

내 이름 석자, 내 개인의 업적. 영광의 순간은 아무리 떠올려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지금이 그때, 부산에서의 시절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겪고, 이겨내면서..

어떻게든, 끝끝내... 해내야 한다.라는 마음이 더 강해진 것이다.

왜?.. 난 겪어봤으니깐, 이겨내 보았으니까.


세상에 무탈하기만 하는 인생은 어디 있겠나...

요즘 드물지 않게 , 들리지 말아야 소식들이 들린다.

"죽으면 해방이지 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조차도 그랬었다.

나도 삶에 미련도 없었고. 이렇게 그냥 끝났으면 좋겠다 한 적이 왜 없었겠나.

숙제처럼 밀려드는 독촉장. 청구서들이 눈만 뜨면 어김없이 밀려오는 게 지금 우리네 인생인 것도 안다.


다 안다.. 너무나 잘 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도 당연히 내가 제일 힘든 것도..


. 다른 사람이 나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

내 인생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그래서 내가 제일 힘들고 아프다.


아는데... "살면 살아진다"

지금 당장 끝내고 싶어도, 살다 보면 온다. 안 올 것 같지만 분명히 온다.

어릴 적 그렇게 귀하게 여겼던 장난감, 친구, 물건, 사람.

그때 귀하다 여기는 것이 지금도 귀한 것이 얼마나 남아있나?

지금 오늘 하루 힘든 것이 나중에 가면 훈장이 되기도 하고,

지금 당장 먹고살만하다 생각하여 등 따습고 먹고 살만 할 때. 그때쯤 꼭 인생은 뒤통수 때리더라.

앞통수 맞는 인생은 없다. 인생의 사건은 항상 뒤통수로 오지.


살만 할 때쯤 한 번씩 나락 가고.. 나락이 길어져서 다 끝났다. 썅.. 할 때쯤

또 뭐가 다시 시작되기도 하더라

인생은 꼭 그렇게 뒤로도 오고 , 옆으로도 오고, 앞으로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