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남을 돕는가.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에서 인간 사회를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영하 60도의 극심한 저온, 시속 100km가 넘는 칼바람...
이 속에서 체온 37℃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몸을 감싸 안고 혹한기를 버텨내는 친구들이 있다.
남극의 황제펭귄이다.
동글동글하게 생긴 이들의 노력은 마냥 귀엽지만은 않다. 필사적이고 처절하다.
허들링(Huddling)은 황제펭귄의 협력과 이타심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30초에서 1분마다 작은 발걸음으로 자리를 바꾸며, 바깥쪽에서 추위에 떨던 녀석들은 안으로 들어오고, 안에 있던 녀석은 다시 바깥으로 나와 추위에 맞선다.
무리생활을 하는 펭귄은 대체로 착한 심성을 가진 것일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겨울을 지나고 난 펭귄은 무척 이기적이다. 물고기를 독차지하기 위한 욕심도 크고, 짝짓기의 경쟁도 치열하다.
펭귄의 이타심은 특별히 착해서라기보다는,
일벌이 여왕벌의 안녕과 무리의 겨울나기를 위해 열심히 꿀과 로열젤리를 벌집으로 나르듯,
개체가 생존하고 더 나아가 집단 전체가 생존하기 위해 유전적 본능을 발현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 이타심의 근원은 동물과 다를까? 아니면 사람의 이타심 역시도 어쩌면 유전적 본능이지 않을까?
인간미 없고 냉정하기로 유명한 진화심리학에서는 마침 사람의 이타심을 오랜 시간을 거쳐 진화해 온 유전 본능으로 바라본다.
크게는 두 가지의 성격으로 보는데, 바로 생존과 번식(대를 이은 생존)이다.
과학에서 바라보는 이타심의 몇 가지 사례에 대한 해석을 들어보자.
✔️ 자녀를 위해 부모의 시간과 자원을 쪼개 헌신한다 → 종족의 후대를 위한 번식 본능
✔️ 어려운 이웃에 봉사, 기부한다 → 무리 내 생존에서 유리하려는 평판 욕구 + 종족 번식
✔️ 목숨을 내놓고 저항운동을 한다 → 소속된 무리의 후대를 위한 종족 번식
✔️ 이성에게 고기를 사주고 선물 공세를 한다 → 짝짓기를 위한 번식 본능
✔️ 귀찮지만 친절과 배려가 몸에 밴 생활을 실천한다 → 생존에서 유리하려는 평판 욕구
✔️ 우물에 빠진 아이를 건진다 → 종족 번식 본능
✔️ 들고양이가 불쌍해 먹이를 준다 → 본능의 오작동(착시적 종족 번식 본능)
이 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귀중한 시간과 자원을 쪼개 행하고 있는 많은 이타적인 행동들을, 우리는 당연히 사람 개인의 '선함'에서 비롯되어 나오는 행동들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대부분이 유전적 본능 + 약간의 교육과 문화로 만들어진 환경으로부터 발현되어 나온다고 본다.
그리고 별로 믿고 싶지 않지만, 이 이타심들은 종족의 번식이든 평판이든, 무의식 속에 대가의 욕구를 수반하고 있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본능을 초월한 사람들을 우리는 성인[聖人]이라 부른다.)
사람은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이타적인 본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이 이타심 또한 대가의 욕구가 숨겨져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기적 이타심'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람은 완전하게 이기적이지도, 완전하게 이타적이지도 않은 중간 그 어느 쯤에 위치하고 있는 존재다.
사람의 본성을 성선설, 성악설의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유아적 사고이며, 다면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그 다면적 스펙트럼이야말로 인간 사회의 모든 제도를 만들어내고 있는 근원이 된다.
다음 화에서는,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현대 사회의 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지, 특히 '경제' 시스템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