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내는 게 좋을까요?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으로 인간 사회를 탐구해 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대부분의 경제 시스템은 '수정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기본 시스템은 자본주의지만, 정부가 이를 규제, 조정,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뼈대에 사회주의적 양념이 적절하게 섞여있는 것이다.
이 둘의 조화는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아주 잘 나타나고 있다.
헌법 제119조 (경제질서)
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정부의 개입은 필요 없다는 자유주의자들도, 자본주의가 자체 모순으로 몰락하고 공산주의가 온다는 마르크스도, 현대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면 모두 불만을 가질 것 같다.
각국의 자본주의에 국가의 개입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지, 즉 사회주의적 요소의 비율을 확인하기 가장 쉬운 지표는 조세부담률이다.
2023년 말 기준 OECD 국가의 평균 조세부담률은 25.3%로 나타나며, 북유럽 40%대, 서유럽 30%대, 미국은 18.9% 수준이다. 대한민국은 19%다. (2024년 말에는 17.8%로 더 하락)
궁금증이 생긴다.
행동경제학이라는 경제학 분야가 있다.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경제적 행동을 하는지 실험을 통해 보여주기도 하는데, 가장 유명한 실험 중 하나는 바로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이다.
게임 방식은 간단하다.
한 사람(독재자)에게 일정한 금액을 주고, 이 돈을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지를 자유롭게 결정하게 한다.
상대는 돈을 받은 사실조차 모르고, 평가도 없고, 벌도 없다.
완벽하게 익명이고, 완벽하게 자유로운 상황이다.
만약 인간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순수 이기적 존재(Homo Economicus)라면, 독재자는 1원도 주지 않을 것이다.
돈을 모두 갖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수많은 실험 데이터는 인간이 평균 25%~40%를 기꺼이 나눠준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바로 앞서 언급한 OECD의 조세부담률과, 이 독재자 게임에서 사람이 나눠주는 비율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공정함의 본능, 이타심을 갖고 있으며, 인간은 0%도, 100%도, 절반도 아닌 어느 정도의 적정한 수준은 내놓아야 사회가 유지된다고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타심이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유명한 쥐 실험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쥐는 우리 안에서 고통받는 다른 쥐를 보면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고, 심지어 갇힌 쥐를 풀어주기 위해 반복적으로 노력한다.
세금은 바로 인간의 ‘본능적 균형점’을 제도화한 장치다.
정부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그 이기심이 낳는 불평등과 사회 붕괴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강제된 이타심(조세)을 요구한다.
현대 수정 자본주의는 인간 본성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만나는 평균점, 즉 7~8개는 내가 갖고 2~3개는 나눠주는 본능적 균형점에 가장 잘 맞는 체제라고 해석할 수 있다.
첫째,
“내가 피 땀 흘려 번 돈인데 왜 정부가 가져가나? 부자가 죄인인가?” 하는 주장이다.
수십억, 수백억 자산을 가진 사람이 매년 몇백만 원, 몇천만 원의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세금을 낼 때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부는,
치안이 없었다면 쌓이지 않았고
법과 제도가 없었다면 보호받지 못했고
도시 인프라가 없었다면 가치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상당수는 알게 모르게 부모로부터 유무형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즉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환경이 만들어준 부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금은 ‘빼앗기는 돈’이 아니라, 자신의 부가 유지될 사회적 환경에 대한 일종의 유지비와 보험료로 인식되어야 한다.
부자가 세금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키지 않는다면, 사회는 혼란해지고, 부는 쌓이면 쌓일수록 보존이 위태로워지지 않겠는가.
둘째,
"부를 물려받는 것은 불공평하며, 부자의 불로소득은 인정되어선 안 된다."와 같은 주장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은 도덕적 구호일 뿐 현실 묘사는 아니다.
부의 세습은 불평등의 상징처럼 들리지만, 인류 문명의 관점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
인간은 자녀에게 유무형의 자산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이 친족 번식 본능이야말로 장기적 자산 축적·도구 발전·기술 축적·기반시설 형성 등 세대 간 문명을 이어주고 확장하는 중요한 추진력이 되어왔다.
만약 모든 재산이 국가에 몰수된 후 평등하게 배분받는다면, 장기적 계획을 세울 이유와 동기가 사라진다. 그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그래서 국가는 부의 세습은 인정하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상속세·증여세라는 완충장치를 둔다.
정부는 불평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붕괴하지 않을 수준으로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요즘 세상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은 물리적 노동의 대체를 넘어 사무직과 서비스업의 업종까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앞으로 인간이 할 일이 없는 분야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자본은 인공지능과 결합해 더 큰 부가가치와 부를 창출하겠지만, 결국 노동수입이 줄어들어 소비자가 없어지게 되면 마찬가지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기본소득 도입 등, 조세부담률이 점점 높아지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부자들은 세금을 더 내겠지만 소비해 줄 시장은 존속 가능해질 것이고
로봇과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뺏긴 많은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통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는 형태로 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과거부터 무리를 지어 내편 남의 편 나누기를 좋아하던 습성을 가진 인류에게는 여전히 그러한 유전자적 코드가 작동하고 있다.
세금을 조금 더 걷어서 복지를 늘리자고 하면 보수정당은 공산당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고
세금을 줄여 기업 활동을 활성화시키자고 하면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은 극렬히 반대한다.
그러나 사람은 무리를 구분 짓는 것처럼 100% 유전자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서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본능을 조절하고, 객관적,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쪽만을 맹신하는 극단주의가 아니다. 과학적 데이터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중용(中庸)의 자세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의 낮은 조세부담률, 고령화, 미래 기술환경의 변화를 고려한다면 세금을 점진적으로 늘려나갈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극단적인 생각이다.
매년 연말쯤이 되면, 세금을 성실히 납부한 유명인들에게 국세청에서 '모범납세자' 포상을 한다.
이웃에 대한 봉사와 자선, 기부는 멀리 있지 않다.
굳이 누가 포상을 하지 않더라도,
부자들은 세금 내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들을 존경하는 그런 세상이라면
굳이 극단주의까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