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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우파, 그리고 유전자

우리는 왜 서로 다른 정치성향을 가질까.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에서 인간 사회를 탐구해 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매 번 선거철이 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각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흑색선전까지 불사해 가며 치열하게 다툰다.


왜 사람들은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가 다른 것일까? 왜 정치적 성향이 다른 것일까?

이를 결정짓는 요소는 다양하다.

거쳐온 현대 역사, 교육, 개인적 경험, 부모의 영향, 소속된 집단(지역), 미디어 노출 등이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정치적 성향을 결정짓는 강력한 원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유전자다.



우선, 보수와 진보를 구분해 볼 수 있겠다.


한마디로 보수는 변하지 말고 지키자는 것이고, 진보는 바꾸자는 것.

사람은 누구나 안정적이고 신중하려는 유전자와 모험적인 유전자 모두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마다 경향성이 조금씩은 차이가 난다.

이 조그마한 차이는 5천만 년이라는 시간이 누적되면, 미아키스라는 동물을 개와 고양이로 갈라놓는 것처럼, 그냥 무시해 버리기에는 중요한 차이다.


이를 좀 더 학술적인 단어로 바꿔보자면 '위험 회피 성향'의 정도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하면 보수적, 모험을 좋아하는 성향이 강하면 진보적이게 된다.

어떤가. 스스로 진단하는 위험 회피 성향과 정치적 성향이 일치하는가?

그런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구분에는 일정 한계가 존재한다.

✔️ 위험 회피 성향은 유전자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부가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많이 가진 사람이라면 변화를 싫어할 것이다.

✔️ 진보와 보수는 해당 시점의 가치 기준이기 때문에, "아이를 적게 낳겠다.", "탄수화물이 풍부한 흰쌀밥을 먹는 것이 좋다."와 같은 생각이 50년 전에는 진보적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보수적이게 된다. 진보와 보수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개념으로, 절대적인 가치 지향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가치 지향의 정치적 색채를 표현하기에는 '보수와 진보' 보다는 '좌파와 우파'가 더 적합해 보인다.

(공산주의자들과 전쟁을 벌였던 경험 때문에 우리는 좌파라는 단어에 포비아를 가지고 있지만, 순수한 학술적 의미로서의 '좌파'로 이해하면 되겠다.)



좌파와 우파 성향도 유전자를 통해서 발현될 수 있을까?


이기심과 이타심이라는 유전자를 들여다보자.

단, 리처드도킨스처럼 이타심 역시도 이기적 유전자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의 일환으로 해석해 본다면, 이기심과 이타심을 통칭해서 '이기심'이라는 단어 하나로 사용해도 무방할 것 같다.


사람은 저마다 이기심의 범위가 다르다.


✔️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소속된 집단 정도만을 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극도로 이기적이며, 자기 집단을 벗어난 사람들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관심이 없다. 세금을 단돈 1원 한 푼도 내기 싫어한다. 극우다.


✔️ 이기심의 범위를 조금 넓히면 나의 이웃, 내가 속한 국가까지다. 나라의 부강함, 애국심 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대체로 우파에 속하는 부류라고 볼 수 있다.


✔️ 국경을 초월해 보편적 인류애를 중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기심의 범위가 사람까지 커졌다. 좌파다.


✔️ 인류를 초월해 모든 동식물까지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발을 반대하고 자연 보존에 관심이 높다. 이들에게 극좌라는 호칭을 붙인다면 조금 억울해할까?


극우, 우파, 좌파, 극좌... 주장이 모두 그럴듯하고,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다. 동시에 모두 비판받을 포인트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극좌의 주장을 비판해 본다면, 생태계 먹이사슬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사슴이 사자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고 해서 사자를 나쁘다고 말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우파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우파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들을 우파라고 볼 수 있을까.

좌파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가. 그런 척하는 것은 아닌가? 이들을 또한 좌파라고 볼 수 있을까.

각자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이처럼 이기적 유전자가 설정한 '이타심의 기본값(Default Setting)'은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유전자는 이기심의 경계선을 '나와 내 가족'에 둘지, 아니면 '생명체 전체'에 둘지, 또는 그 사이에서 선천적인 성향을 부여한다.

우리가 선거철마다 치열하게 싸우는 것은, 합리적인 논쟁 이전에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이기심의 범위'를 확장할 것인가, 사수할 것인가에 대한 본능적인 싸움일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 다른 본성의 언어를 쓰고 있으며, 상대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방식으로 옳다”라고 느끼는 것이다.

유전자와 환경이 만들어낸 정치 성향의 스펙트럼을 이해하면 정치를 향한 분노는 줄어들고, 대화와 타협의 공간은 넓어진다.

정치는 상대를 없애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본성이 공존할 수 있는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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