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끝, 그리고 회복의 시작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으로 인간 사회를 탐구해 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두세 번 더 길을 돌아갈까
적막 짙은 도로 위에 걸음을 포갠다
아무 말 없는 대화 나누며
주마등이 길을 비춘 먼 곳을 본다
그때 알게 되었어
난 더 갈 수 없단 걸
한 발 한 발 이별에 가까워질수록
너와 맞잡은 손이 사라지는 것 같죠
- 악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
젊은 시절을 떠올려 본다. 공상과학철학자 역시 여러 번의 이별을 겪었고, 그때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마 당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별이 꼭 실패나 나약함의 증거일까?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이별을 경험한다. 우리는 흔히 이 고통을 ‘내 잘못’으로 해석해 더 힘들어지곤 한다.
이 글에서 우리는 이별을 진화적·과학적 현상으로 바라보며, 이 고통을 어떻게 회복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그 실마리를 함께 찾아보자.
사랑은 기본적으로 '함께 하는 것이 내 삶에 유리하다'는 뇌의 계산 위에 서 있다. 그렇다면 이별이란 그 계산이 맞지 않을 때 찾아오게 될 것이다.
✔️ 유효기간의 벽: 사랑이라는 여러 개의 무지개 빛깔 중, 뜨겁던 열정(빨강)이 사라진 뒤에는 관계가 안정적인 신뢰(주황)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많은 커플이 이 전환에 실패한다. 열정을 불러오던 도파민의 불꽃은 사라지지만, 새로운 신뢰와 애착의 회로가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전 화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나요?' 참조.)
✔️ 자원의 하락: 상대가 보여주던 매력, 가능성, 안정감이 예전보다 줄어든 순간, 뇌는 무의식적으로 “이 관계를 이어가는 게 손해일 수 있다”라고 계산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작은 잘못이 누적될 때 이 자원 하락은 가속화된다.
✔️ 새로운 자원 탐색: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나은 짝을 찾고 싶어 하는 성향을 완전히 지우기 어렵다. 지금의 관계가 주는 ‘이득’이 줄어들면, 뇌는 더 큰 가능성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한다.
심지어 이득이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손해가 된다면, 다른 짝을 굳이 찾지 않더라도 현재의 짝과는 일단 단절을 선택하게 된다. 만약 그런 상황에 놓여있다면, 연민과 혼자되는 두려움은 과감히 떨쳐내고 스스로를 지키는 선택이 필요하다.
결국 이별은 뇌의 회로가 “지금 방식으로는 더 이상 유리하지 않다”는 신호를 보낸 결과라고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찬 쪽이 아니라 차인 쪽이라면 반대의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차갑지만, 진화적으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결론이다.
이별의 고통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다.
사랑할 때 우리 뇌는 도파민, 옥시토신 같은 강력한 보상 물질을 쏟아낸다. 이 화학물질 덕분에 우리는 상대를 생존에 꼭 필요한 자원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다 관계가 끊기면, 이 물질들의 분비도 급격히 끊긴다. 뇌는 이것을 마치 중독자가 약을 끊었을 때처럼 받아들이며, 극심한 금단 현상을 일으킨다.
실제로 뇌 영상 연구를 보면, 이별 직후 활성화되는 부위가 신체 통증을 느끼는 영역과 겹친다고 한다. 실제 이별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아스피린을 처방하면 놀라울 정도로 효과가 개선된다.
우리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뇌가 실제로 고통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특별히 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뇌가 수십만 년 동안 학습한 방식대로 경보를 울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별은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의 본능인 번식 본능, 즉 유전자의 대물림 본능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또 이별은 무리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혼자가 되면 죽는다는 생존 본능도 위협한다.
생명체의 궁극적 본능인 생존과 번식.
이별은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심연을 건드려 위태롭게 만드는 중대한 사건이다. 결코 가볍게 여길만 한 문제는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에 더 이상 내가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이별...
내 마음의 빛이 닿을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
힘들겠지만 이제 우리가 해 볼 일은 그 고통을 새로운 회복의 에너지로 전환해 보는 것이다.
✔️ 외적 자극 차단하기: 휴대폰 갤러리 속 상대의 사진만 되새기고 있는 것은 중독자가 다시 약을 찾는 것과 같다. 처음엔 힘들지만, 의도적으로 멀리 해야만 뇌가 ‘이 자원은 끝났다’고 인정한다.
✔️ 새로운 도파민 회로 만들기: 운동, 창작, 새로운 배움 같은 활동은 뇌에 '나는 더 강해지고 있다'는 신호를 준다. 상실감 대신 성취감으로 뇌를 재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 복기하기: 이별은 단순히 끝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성장할 기회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안정되면 지난 관계를 복기해 보자. 내가 잘했던 점과 부족했던 점, 상대에게 고마웠던 부분과 아쉬웠던 부분을 정리해 두자.
그 사람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든,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든, 같은 실수를 줄이고 더 성숙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
결국 사랑이란, 혼자로는 부족해서 살아가기 어려운 인류라는 종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를 채울 때 부족한 부분은 자연스럽게 보강되고, 더 나은 사랑의 기회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이별을 극복한다는 건 단순히 눈물을 그치는 게 아니라, 집착을 끊고 상대를 과거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능동적인 선택일 것이다.
상대방을 놓아주는 순간, 그 사람 역시도 당신을 바라보던 색안경을 걷고 시간이 지나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다시 반추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을 놓아준다는 것은 과거의 상처를 성숙하게 치유하고, 새로운 인생의 막을 펼치기 위한 끝맺음이자 시작이 된다.
만약 상대방을 차는 경우라면, 단호하되 얼굴을 마주 대하고 예의를 갖춰 차자. 그것이 지난 시간 동안 서로를 위한 마음을 쏟았던 사람에 대한 마지막 배려일 것이다.
힘들어도 결국 당신은 이 고통을 견딜 수 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이전보다 단단해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 때 당신을 미소 짓게 만들었던 그 사람이라면...
비록 기억은 옅어지겠지만, 양자역학적으로 정보는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의 소중한 추억의 페이지들은 우주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