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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갈등의 기원

왜 남녀는 갈등하기 시작했을까?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으로 인간 사회를 탐구해 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남녀 사이엔 항상 사랑만 있을 것 같지만 갈등이 따라오게 된다.

그리고 그 갈등은 때론 집단적인 양상으로 충돌하기도 한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 젊은 세대는 전례 없는 집단적 젠더 갈등을 겪고 있다.


이 젠더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달라붙어 해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현실의 갈등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 바로 젠더는 남녀라는 것, 즉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인 특성을 말이다.



생물학적 특성: 몸무게와 힘의 양면성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개체는 일반적으로 힘이 세다.

그리고 이것은 양면성을 가진다.

좋은 점은 포식자나 경쟁자를 제압하여 자원(먹이)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쁜 점은, 많이 먹어야 하기에, 먹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빨리 굶어 죽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구에서 일어났던 5번의 대멸종에서 크고 무거운 개체들은 여지없이 멸종을 맞이했다.

힘은 강자의 무기였지만, 환경이 변하는 순간 가장 큰 족쇄가 되었다.


대멸종 때뿐만이 아니었다. 아메리카의 스밀로돈(검치호), 북위도의 매머드, 모리셔스의 도도새, 한반도의 호랑이 등 환경의 변화에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큰 동물들이었다.



번식 경쟁 몸 불리기


그러나 환경이 비교적 안정적인 한, 힘센 개체가 생태계 피라미드의 상위를 차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동시에 이렇게 몸집이 커지는 방향으로의 진화는 단순히 생태계 속 먹이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바로, 번식 경쟁을 위해서도 그랬다.

수컷들은 교미 기회를 두고 다투었고. 몸집이 큰 수컷이 작은 수컷을 눌러 이기곤 했다.

이렇게 번식 경쟁이 치열했던 개체들일 수록 수컷은 점점 커져갔고, 암컷과 무게 차이가 생겨났다.

이를 성적 이형성(sexual dimorphism)이라고 지칭한다.


<영장류 몸무게의 성적 이형성>

✔️오랑우탄 암수 중량비: 1 대 2

✔️고릴라 암수 중량비: 1 대 1.8

✔️침팬지 암수 중량비: 1 대 1.3

✔️인간 남녀 중량비: 1 대 1.2

✔️보노보 암수 중량비: 1 대 1.1


오랑우탄과 고릴라 수컷은 암컷에 비해 극단적으로 커지다 보니, 결과적으로 수컷 중심의 사회가 되었다. 경쟁에서 이긴 수컷 한 마리가 가부장적 일부다처제를 이룬다.

침팬지(수컷이 1.3배)는 수컷 중심 사회이기는 하지만 오랑우탄이나 고릴라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다. 암침팬지도 충분히 특정 교미를 거부하거나, 수컷을 선택할 수 있다.

보노보(수컷이 1.1배)는 반대로 암컷 중심 사회다. 암컷들이 연합을 이뤄 개개인의 수컷들을 통제하고, 교미 대상을 능동적으로 고른다.

인간 남녀의 몸무게 비율(남자가 1.2배)은 침팬지와 보노보의 중간쯤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거부터 남성 중심도 아니고 여성 중심도 아닌, 평등한 협력 사회에 가까웠던 것은 아닐까?



수렵채집 사회의 균형


인간 남녀가 비교적 평등했다는 단서는, 실제로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남녀 무덤의 동일한 장신구, 뼈의 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남녀의 같은 식단, 남녀 동일한 부위의 관절 마모를 통해 남녀가 같이 대우받고, 같은 음식을 먹고, 비슷한 노동을 했음을 밝혀낸다. (농업혁명 이후 근대 이전까지 남녀의 식단은 바뀐다. 남자는 고단백, 여자는 탄수화물 위주)


이러한 배경은 사회 구조에 있었다.


✔️ 동등한 기여:

남성은 사냥(고위험, 고보상)을, 여성은 채집(저위험, 안정적 식량 공급)을 주로 담당했다. 여성의 채집은 부족 생존에 가장 중요하고 안정적인 식량(칼로리)을 80%가량 책임졌다. 식물 채집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 독성 식물 구별법, 계절 변화 예측 능력 등은 단순한 근력보다 생존에 더 결정적인 요소였다. 이러한 지식은 여성들이 주로 담당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회적 발언권이 높았다.


✔️ 이동의 중요성:

대규모 정착지나 영구적인 건물이 없었으므로, 무거운 짐을 옮기는 물리적 힘의 가치가 낮았다. 모든 구성원의 지식, 기술, 협력이 힘보다 중요했다.


✔️ 육아의 분담:

수렵채집 사회는 협력적 육아(alloparenting)가 일반적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엄마 외에 다른 친족과 공동체 구성원(남성 포함)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이는 어머니가 채집 활동에 다시 복귀할 수 있게 했고, 여성의 경제 활동이 끊어지지 않도록 보장하여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을 막았다.


이 시기에는 남성의 물리적 힘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압도할 수 없었다. 인류는 협력을 바탕으로 한 평등한 유목민이었다.



농업 혁명의 역설 - 밀, 쌀, 보리 그리고 쟁기


약 1만 년 전 시작된 농업혁명은 식량을 확보하고 인구를 늘려준 대사건이었지만, 양성평등의 균형을 깬 것 역시 농업혁명이었다.

특히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쟁기를 사용하는 농업(plow cultivation)이 필요했다.

유라시아에서 자라는 밀, 쌀, 보리의 까다로운 특성상 넓은 땅의 흙을 뒤집어주어야 했고, 무거운 쟁기질이 요구되었다. 쟁기질은 흙을 뒤집어 통풍성을 높이고, 영양분을 섞고, 잡초를 제거시켜준다.


힘을 동원할 수 있었던 남성은 쟁기질을 통해 농업 생산의 우위를 점했고, 잉여 작물 저장과 자원 통제를 맡으면서 여성을 주요 역할에서 배제시켰다.

이는 곧 사유재산과 부계 혈통 중심의 가부장제를 낳는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


약 2만 년 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인류도 자체적으로 농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의 주식이던 옥수수, 콩, 호박 등은 쟁기질이 필요 없는 괭이 농업(hoe cultivation)에 적합했다.

그 결과, 농업 노동에 여성들이 쉽게 참여하거나 주도할 수 있었고,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 다수는 구대륙과는 달리 모계 사회 또는 비교적 평등한 사회를 수천 년 동안 유지했다.

이는 젠더 관계가 단순히 농업혁명 자체가 아니라, 그 농업이 힘을 필요로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종말을 고하는 힘의 시대: 현대 젠더 갈등의 본질



쟁기가 지배하던 1만 년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18세기 산업 혁명부터 오늘날의 AI, 로봇 시대는 육체적 힘의 경제적 가치를 붕괴시키고 있다.

공장의 로봇과 도처의 스마트 기기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생산성을 발휘한다. 육체적 힘보다는 창의성, 판단력, 감정이 더욱 존중받는 시대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젠더 갈등은 1만 년 동안 쟁기질을 통해 권력을 독점했던 힘 중심의 경제 구조가 해체되고, 과거 수렵채집 사회와 같은 협력과 평등의 시대로 회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권력과 역할의 재조정이다.

새로운 협력 방식을 찾는 인류 전체의 과제다.


과제의 해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다음 화에서 함께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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