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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性(성)은 존재하는가?

여자, 남자, 그리고...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으로 인간 사회를 탐구해 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조금 더 공격적이고 모험을 좋아하며, 공간 감각이 우수한 남자...

그리고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며 사회적 공감능력이 발달한 여자...

그런데 이 두 성별은 어떻게 이런 경향성을 띄는 것일까?


바로 호르몬 때문이다. 테스토르테론과 에스트로겐이 남녀의 기질을 다르게 한다.

남자의 테스토르테론은 기질뿐만이 아니라 신체 구조도 여자와 다르게 만드는데, 남자의 Y 염색체가 뇌로 하여금 테스토르테론을 분비하도록 명령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성생식을 하는 대부분의 생명체는 암, 수 2개의 성으로 구분되어 있다.

여자의 염색체는 XX, 남자는 XY.

XX 염색체를 가진 여자는 후대에 X 염색체만 물려주고, XY 염색체를 가진 남자는 후대에 X 또는 Y 둘 중의 하나를 물려준다.

그래서 후대에서 만들어지는 조합은 XX 아니면 XY, 다시 2가지 성이 된다. 심플하다.



제3의 성 Z?


그런데 X나 Y염색체 말고 Z 염색체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선 유전적 다양성은 훨씬 풍부했을 것 같다.

손가락이 5개 달린 개체, 4개, 6개 달린 개체 등, 무척 다양한 모습들을 상상해 보자.

이렇게 다양한 모습들의 후손들이 태어났고, 그중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고 번식해 왔을 것이다. 대멸종과 같은 급격한 환경 변화에도 종족이 보존되기 유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Z 염색체가 등장하는 순간부터는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X, Y 두 가지의 염색체로 만들 수 있는 조합은 XX, XY, YY 3가지만 가능하므로, 여자를 XX, 남자를 XY로 정해놓으면 계속 똑같이 남녀가 구분되어 대를 이을 수 있었다.

그러나 Z 염색체가 끼어드는 순간 조합의 수는 무려 10가지(XXX, XXY, XXZ, YYY, YYZ, YYX, ZZZ, ZZY, ZZX, XYZ...)로 늘어나고, 이 조합으로 후대를 3가지 종류의 성으로 이어가려 하니 계산이 어려워진다.


현실적으로도 꽤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 될 것 같다.

지금이라면 영희 씨와 석훈 씨 둘이 만나 2세를 낳으면 아들 아니면 딸일 텐데, 성이 하나 더 있는 순간 영희 씨와 석훈 씨는 둘 다 마음에 드는 제3의 성을 한 명 더 찾아야 후손을 이을 수 있다.


이렇게 3개의 성이 존재한다면, 서로 다른 성이 만나 번식에 성공하기까지 소요되는 에너지와 시간이 비효율적으로 늘어난다. 극단적인 효율성을 추구하는 진화의 관점에서, 암수 두 개의 성은 가장 단순하고 성공률이 높은 최적의 해법이었다.



성이 X, Y가 아닌 1과 2라면?


그런데 성별을 X, Y가 아니라 1과 2라고 정의해 보면 어떨까?

여성을 1, 남성을 2라고 할 때, 3이라는 제3의 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현실에서 제3의 성을 말한다면, 그것은 1.1, 1.5, 1.9와 같은 형태로 존재할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아마 그것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말해 본다면 바로 길거리에서 형형색색의 무지개 색 시위를 벌이는 LGBTQ(IA) 들일 것이다.



✔️ L(Lesbian): 레즈비언 / 여자에 끌리는 여자

✔️ G(Gay): 게이 / 남자에 끌리는 남자

✔️ B(Bisexual): 바이섹슈얼 / 두 성별 모두에 끌리는 사람

✔️ T(Transgender): 트랜스젠더 / 생물학적 성과 정체성을 다르게 느끼는 사람

✔️ Q(Queer 또는 Questioning): 퀴어 또는 퀘스처닝 / 정체성을 탐색 중인 사람

✔️ I(Intersex): 간성 / 생물학적(외형, 호르몬 등) 경계성 성

✔️ A(Asexual): 무성애자 /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사람



아마 여기까지만 읽고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좋아요도 누르지 않은 채 뒤로 가기를 터치하는 독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보면 어떨까.



자연계의 LGBTQ(IA)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LGBTQ(IA) 성향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다는 생각이다.

남녀 한쌍이 어울리고 후손을 낳는 것은 자연계의 법칙이고, 이것이 아니면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인간과 유전자가 98.8% 일치하는 가장 가까운 친척 보노보.

하루에도 열 번씩 끊임없이 성행위를 한다. 거의 모든 개체가 이성 간은 물론 동성 간에도 서로 몸을 비비고, 생식기를 마찰시킨다.

침팬지도 마찬가지다. 수컷 간의 성행동이 사회적 지배 관계를 확인하거나 유대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관찰된다.

영장류뿐만이 아니라, 돌고래, 늑대, 양, 오징어, 게, 나비까지... 동성애의 행동이 관찰된 종은 450종이 넘는다.


동성애 성향은 번식 효율이라는 진화의 대전제와 반대되는 것이 아닌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정확한 수치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동물계에서는 개체의 80~95%는 통상적인 번식 행위에 참여하고, 5~20% 정도는 번식 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동성애 비율을 꾸준히 유지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이 일정 비율의 동성애는 몇 가지 이점을 주는데,


첫째, 먹이가 부족한 열악한 환경에서 대책 없는 인구 증가를 막아준다.

둘째, 생존이 쉽지 않은 환경에서 육아의 지원군이 되어 후손의 생존율을 높인다.

셋째, 성적 친밀감을 통해 무리의 유대와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친족 선택 이론(Kin Selection)'을 유력한 가설로 제시한다.


먹이가 부족한 상태 등 열악한 생존환경이라면, 번식을 많이 해 인구를 늘려봤자 공멸의 길일 것이다.

그보다는 소수 영아에게 자원을 집중시켜 생존율을 높이는 질적 번식이 유리한데, 이때 동성애 성향을 가진 개체는 번식을 포기하고 동족의 육아를 지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연계에서 소수 일정 비율의 L, G, B, I, A 현상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T와 Q는 고차원적 정체성 인식의 영역이므로 불가능하더라도).

실제 좁은 동물원 우리에 갇혀 열악하게 지내는 동물들일 수록 번식을 포기하는 동성애나 무성애의 경향은 더욱 높게 관찰되기도 한다.

인간이라고 해서 예외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 사회 LGBTQ(IA) 바라보기


한국은 2명이 0.7명을 겨우 낳는 출산율 세계 최저의 국가이다.

3포 세대, N포 세대가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은 연애.

젊은 세대가 비혼이 늘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그들만의 탓이 아니다.

극심한 자본주의 양극화와 유교 문화가 맞물려, 삶을 살아가기 열악하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안부인사가 없는 환경 탓이 크다.

젊은 세대는 자식을 키울 자신이 없고, 자식이 고생하는 걸 볼 수 없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들은 종족의 유지를 위해 후손의 개체 수를 관리하는 집단 본능을 발현시키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만약 개체수를 줄이는 것이 종족의 유지에 유리하다면, LGBTQIA 성향은 인류의 '질적 번식' 전략을 용이하게 해주는 훌륭한 역할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된다.


자연계의 진화가 효율성을 위해 암수 두 개의 틀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 틀을 벗어나는 수많은 다양성(LGBTQIA) 역시 포용해 왔다. 종의 적응력과 생존력을 높이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상상하면 떠오르는 불쾌한 이미지...

대신, 생물학적 이해의 시선으로 한 번 바라본다면 어떨까?

만약 그들의 성향이 특별한 질병도 아니고, 심리적 비정상도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 중의 하나일 수 있다면, 그들이 순기능을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혐오가 아닌 객관적 시선으로,

제거 대상이 아닌 공존으로,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의 민주주의로,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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