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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새로운 사회 계약

힘을 나눠 책임에서 해방되기: 젠더 갈등 해소를 위한 스파이더맨의 역설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으로 인간 사회를 탐구해 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가장 효율적인 징집 방법은?


아프리카 콩고강 유역...

여기에선 수컷 50마리와 암컷 50마리가 함께 모여 사는 침팬지 마을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옆 마을 침팬지들과 명운이 걸린 전투를 위해, 이 마을에서 전사 40마리를 징집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종족의 번영과 유지를 위해서 어떻게 성별을 선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까?

수컷만 40마리? 암컷만 40마리? 암수 20마리씩?

영화 혹성탈출


첫째, 전투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힘이 좋은 수컷 40마리가 아무래도 전쟁에서 유리하다.

둘째, 만약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종족을 보존해야 할 것이다. 역시 힘이 좋은 수컷 40마리를 보내는 것이 유리하다.

수컷은 10마리만 남더라도, 암컷 40마리가 그대로 남는다면, 종족의 번식 속도는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된다. 번식의 핵심 자원은 암컷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계에서 많은 수컷들은 종종 ‘소모품’ 역할을 맡았다.

고릴라, 오랑우탄은 극단적 일부다처제를 이루며, 침팬지 사회에서도 알파 수컷 위주로 교배권을 독점하다시피 한다.

결과적으로 강력한 유전자적 번식 본능에도 불구하고, 수컷의 80% 이상이 교미 한 번 못 해본 채 생을 마감한다.

이는 다수의 수컷이 희생하더라도 알파 수컷 같은 소수의 수컷만 살아남는다면, 종족 보존을 위해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암컷의 개체수가 온전히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수컷은 아니다.


양성평등을 위해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주장은 어쩌면 생물학적 논리와 충돌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도의적으로도 그렇다.

인간의 여성 역시 생물학적 고충을 감내하며 인류의 존속을 떠받쳤다.

매월 월경의 통증과 불편, 9개월에 걸친 임신, 출산의 위험, 수유까지 이어지는 긴 과정은 그 자체로 막대한 헌신이다.



남자는 안 억울한가.


공상과학철학자는 여성 편만 들 생각은 없다.

남학생은 통상 여학생에 비해 2차 성징과 뇌의 발달이 늦게 찾아온다. 또 유전적 특성상 여성은 차분하고 남성은 자유분방한 경향이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들은 고스란히 남자가 어려서부터 상대적 박탈감을 체험하게 만든다.

바로 남학생은 고등학생 때부터 여학생에게 내신성적에서 밀려 불리한 구조 속에 놓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 몇 년 더 지나면, 인생의 가장 혈기왕성한 시절 18개월을 군복무에 바쳐야 한다.


군 제대 후, 학교 졸업 후 사회에 나오면 또 다른 부담이 기다린다. 전통적으로 남편·아버지·아들로서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한다. 평생을 무겁게 짊어지는 스트레스다.

심지어 힘들게 벌어온 돈마저 아내에게 경제권을 맡기는 경우가 흔해, 정작 본인은 '돈 버는 기계'가 된 것 같은 억울함까지 느낀다.


남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상하게 보인다. 법과 제도 속에서는 남녀가 평등해 보이는데, 정작 고생은 남자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의 본질은 권력


하지만 여기에는 맹점이 존재한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와 비슷한 나이 또래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또래 속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세상 전체의 모습으로 착각하게 된다.


20대까지만 보면 취업이나 급여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없기에, 남성들은 '남녀가 이미 평등해졌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열 살 많은 사람들, 혹은 그 윗 세대까지 아울러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출산한 여성이 원래 일터로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곳에도 취업하지 못한 채, 경력이 단절되어 돈을 벌지 못하는 30대, 40대, 50대 여성은 너무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 경제는 시장경제 자본주의로 굴러가고, 이 시스템에서 가장 큰 권력은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에서 '평등'은 무엇이 평등해야 한다는 것일까? 바로 권력이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25년 3월 OECD 통계에 따르면, 여성 임원 비율, 남녀 임금 격차, 여성 친화적 노동 환경의 3대 핵심 지표에서 한국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표면적으로는 평등이 가까워 보이지만, 구조적 현실은 아직도 남성에게 권력이 기울어 있는 셈이다.

똑같이 맞벌이를 하는 데도 더 많은 여자의 가사노동 시간, 자주 노출되는 남자로부터의 폭력이나 성희롱은 이 기울기의 각도를 더 크게 만든다.



스파이더맨 할아버지가 주는 교훈


영화 스파이더맨 1탄에서 피터 파커의 할아버지는 피터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단..."


이 교훈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힘을 나누면,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진다."


한국 남성을 괴롭히고 있는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중압감...

여성에 권력을 나누어 맡김으로써, 남성들은 비로소 책임도 넘길 수 있게 된다.

물론 여성 역시도 권력을 나눠 가질 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함께 짊어지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양성평등 제언


유구한 호모사피엔스 역사에 비하면 극히 짧았던 1만 년간의 쟁기 농업, 남성 힘의 우위 역사...

진정한 양성평등은 남녀가 과거의 낡은 계약을 파기하고, 권력과 책임을 함께 나누는 새로운 사회 계약을 맺는 것이다.

여성은 더 넓은 경제적 자유를, 남성은 과중한 부담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얻는다.


이는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남녀 모두가 고충을 덜고 자유로워지는 상호 호혜 전략이 될 것이다.

평등이란 누가 더 가졌는지를 다투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짐을 덜어주며 자유를 넓혀가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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