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도파민 디스카운트'를 극복하는 전략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으로 인간사회를 탐구해 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25년 8~9월간 방영된 JTBC 드라마 '에스콰이어'.
로펌과 법정을 배경으로, '사람다움', 그리고 어른들의 성숙한 사랑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윤석훈 변호사에게는 결혼했던 여자가 있었는데, 둘은 권태와 불통 끝에 끝내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훗날 전처와 재회하게 된 윤석훈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한 가지 색이 아니라 무지개 빛깔이래.
처음에는 빨간색의 열정으로 시작해서, 따뜻함의 주황, 기쁨의 노랑, 평안의 초록, 신뢰의 파랑, 깊은 남색, 신비로움의 보라까지...
우리가 했던 사랑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바뀌었을 뿐, 그 색이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가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 거야."
심리학자들은 사랑의 유효기간을 18개월에서 36개월 정도라고 말한다.
기간을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연애 초기에는 도파민, 페닐에틸아민(PEA) 같은 흥분, 보상 호르몬이 폭발적으로 분비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설렘',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주는데, 이 물질이 보통 18~36개월이 지나면 나타나는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무지개 빛깔 중 빨강이 소멸하는 것이다.
이 기간의 이유를 아이의 양육 주기와 연결 짓는 학자들도 있다.
아이가 젖을 떼고 기본 생존력을 갖추기까지 약 2~3년이 걸리는데, 그 기간 동안 부모가 협력하도록 '사랑의 유효기간'이 설계되었다는 주장이다. 즉, 연인, 부부 사이의 강렬한 열정은 아기가 생존에 필요한 기간 동안 부모를 묶어두는 장치라는 것이다.
지금은 양육 환경이 달라졌지만, 우리 뇌 속의 타이머는 여전히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이 빨간색의 열정 기간이 지난 커플은 두 갈래의 길로 나뉘어 걸어간다.
하나의 길은 열정의 기간을 지나 안정·애착 단계의 주황 빛깔로 변화해 가는 것이고,
다른 길은 권태·갈등으로 아예 가시광선을 벗어나 파국의 자외선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둘은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우선 여기서 먼저, 두 갈래의 길을 가르는 기저 심리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안정·애착은 신뢰, 긍정 경험, 유대감이 쌓여, 뇌가 '함께 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학습할 때 나타나고,
권태·갈등은 기대 불충족, 부정적 경험, 갈등 해결 실패 때문에 뇌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낼 때 발생한다.
더욱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열정이 식어도 관계를 이어가려는 것은 '구관이 명관'이라며 계속 함께하는 것이 스스로와 2세의 생존에 유리하다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요,
관계를 끝내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하거나 혹은 상대방이 없는 상태가 스스로의 생존과 유전적 다양성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랑의 회계 장부'에서 '함께 하는 것이 생존에 이득이다'라는 뇌의 학습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현대판 사랑의 기술은 무엇일까?
열정이 사라진 후에도 관계를 단단히 붙잡아 둘 수 있는, 차이지 않기 위한 네 가지 생존 전략을 생각해 본다.
열정의 빨강이 식은 후, 뇌는 냉정하게 상대를 '나의 생존과 2세의 번식에 얼마나 유리한 자원인가'로 평가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는 판단으로 귀결되려면, 상대가 나로부터 지속적인 가치와 끌림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지난 화 「현대판 사랑의 기술 - 사랑의 시작」 편에 이성에게 끌리는 특질들이 간단명료하게 서술되어 있으므로, 정독을 권유드리는 바이다.
대표적으로 보자면,
✔️ 남성(듬직함/자원): 현재의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건설적이지 못한 취미보다는 '미래 설계'에 시간을 투자하는 모습은 무의식적으로 장기적인 자원 확보 능력을 어필한다.
✔️ 여성(정서/관계 자원): 단순한 외모 매력뿐만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여 관계를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정서적 지혜와 공동의 미래에 대한 안정감을 제공하는 공감 능력은 상대를 끌어당긴다.
'듬직함'으로 대표되는 남자의 특성과 '자애로움'으로 대표되는 여자의 특성이 상대방에게 어필된다는 점은, 오늘날의 양성 평등 가치관과는 다소 상충될 수 있지만, 현대의 헌법적 문화적 규범과는 별개로 유전자의 본능에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상대에게 지나치게 다가가거나 집착하는 것은 '나는 당신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취약성을 드러내는 신호가 된다. 진화적 관점에서 약하고 의존적인 짝은 곧 '나의 생존 자원을 빨아들이는 손해'로 인식될 수 있다.
물론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이라는 상대의 애착 유형을 파악하고, 이에 따라 거리를 조절하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심리 치료사가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의 중심을 지키는 것'이다. 자신의 독립적인 영역(직업, 취미, 친구)을 유지하며 '당신이 없어도 나는 잘 살지만, 당신과 함께하는 것을 선택한다'는 독립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상대를 안심시키고 관계의 매력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사랑의 회계 장부에서 권태와 갈등은 부정적 경험(손해)이 긍정적 경험(이득) 보다 많을 때 발생하는 적자 상태이다. 이 계좌를 흑자로 유지하는 것이 긍정적 상호작용이다.
서로의 자리를 지키는 안정적인 상태에서 친밀감을 가지고 서로를 응원하게 되면, 긍정적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고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 고트먼의 5:1 법칙: 미국의 심리학자 존 고트먼(Gottman)은 긍정적 상호작용 : 부정적 상호작용의 비율이 5:1 이상일 때 관계가 안정적이라고 말한다. 부정적인 감정적 에너지가 1이라면, 이를 상쇄하기 위해 5배의 긍정적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새로운 도파민 보상 회로: 긍정적인 경험, 특히 새로운 활동을 함께 즐기려는 노력은 뇌에 '함께 있으면 즐겁고 새롭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도파민 할인 효과를 상쇄하고 관계 자본을 확충해 준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둘 사이에 문제나 갈등이 생겼을 때 회피, 비난, 무시는 상대방에게 '신뢰와 협력의 파괴'라는 가장 치명적인 손해를 입힌다.
존중, 경청, 소통의 대화는 단순히 매너가 아니라, '갈등 상황에서도 나는 당신을 배신하거나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신뢰 시스템을 복구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대화 자체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여 관계를 지키겠다'는 무의식적인 서약이 된다. 이러한 안정감이 단절을 피하고 관계의 회복력을 높여주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열정의 빨강이 사라진 후에도 관계를 지켜나가는 네 가지 전략들을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자신을 가꾸면서 긍정적 상호작용이라는 '관계 자본'을 꾸준히 쌓아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다채로운 무지개 빛깔의 어른스러운 사랑을 만들어 가는 가장 훌륭한 도구가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이별이 찾아오게 된다.
왜 이별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까?
다음 화에서는 이별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