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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_날짜를 잘못 예약했지만 럭키비키잖아

오히려 좋아

by 한경환

8월 1일. 출발 10일 전.

문제가 발생했다.

마지막 점검차 티켓을 확인하는데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발견한 것이 화근이었다.

라오스로 가는 3장의 티켓을 먼저 예매한 뒤에 따로 예매하기로 했던 민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카드 문제로 결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마침 카드사 실적이 필요한 때라 흔쾌히 대신 예매해 주었었다.

그렇기에 총 4장의 티켓이 떠야 하는데 3장과 한 장이 따로 검색이 되었다.

따로 결제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 넘기려는 찰나에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불안한 손으로 예매 상세내역 보기를 클릭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던가.

차례로 읽어보던 와중에… 헉.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따로 예약한 민아의 티켓만 마지막 날이 15일로 되어있었다.

다시 확인을 해보아도, 아니 몇 번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도 확실히 잘못예매한 것이 맞았다.

수많은 비행기 예매에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던 나인데!

내 티켓을 잘못 예매한 것이라면 그냥 하루 더 있다가 오면 될 일이지만 이건 민아의 티켓이었다.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서둘러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현재 시각은 새벽 2시 30분… 전화를 받을 리 없었다.

고객센터는 내일 9시부터 열린다고 하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출발도 전에 일이 틀어지다니.

내 인생은 왜 생각대로 굴러가지를 않을까.

스스로를 원망하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째깍째깍.

오늘따라 시간이 참 더디게 흘렀다.

평소 같으면 너무 빨리 흘러 늘 서둘러야 했던 출근길에서 조차 시간이 여유롭게 흘렀다.

1시간 같은 1분이 흘렀고 드디어 9시가 되었다.

업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바로 창고로 달려가 전화를 걸었다.

이제 막 업무를 시작해서인지 서너 번의 통화음 뒤에 바로 연결되었다.

다급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화기 너머에는 한껏 발랄한 여성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파스텔 톤의 밝은 목소리와는 상반된 죽상인 목소리로 내가 대답했다.


“비행기 티켓을 잘못 예매했어요… 도와주세요…”


내 목소리에서 절박함을 느꼈는지 그녀의 목소리도 덩달아 다급해졌다.

그녀는 나의 예약번호를 묻고는 연신 키보드를 두들겼다.

꽤 오랜 정적과 타자 소리 후에 수화기 너머로 희망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14일로 바꾸기 위해 해당 비행기에 좌석이 남아있나 확인해 보았는데 아직 빈자리가 조금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수수료가 있다는 것.

그것도 2중으로 수수료가 발생한다고 한다.

항공사 수수료와 여행사대행 수수료가 각각 6만 원씩 총 12만 원.

그리고 비행기 티켓의 가격이 다르다면 그 차액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차액이 얼마인지 알아보고 다시 전화를 준다는 말에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한순간의 멍청비용으로 12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니.

억울하지만 여지없는 내 잘못이었다.

저번달에 아껴 썼으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업무를 시작했다.


한창 집중하고 있을 무렵, 전화가 울렸다.

번호를 확인하기도 전에 어디서 온 전화인지 직감이 말해주었다.

바로 핸드폰을 들고 다시 창고로 달려갔다.

역시나 대행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고 우울한 목소리를 숨기지도 못한 채 차액이 얼마냐고 대뜸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나의 기분을 한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우리가 예약한 비행기의 시간이 항공사 사정으로 조금 지연된 항공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직 홈페이지를 통해 변경 시간을 확인했다는 체크를 하지 않았기에 1회에 한해 무료로 날짜 변경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렴풋 비행기 시간이 변경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겨우 10분 정도 지연된 것뿐이었고 그때도 지금처럼 업무 중에 온 전화였기 때문에 대충 넘겼었다.

나중에 해야지 하며 미루던 일이 이걸 해결해 주다니!

뜻밖의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어젯밤부터 방금 전까지 온통 어두웠던 세상이 한순간에 빛이 들었다.

긴 장마가 끝나고 마침내 맞이하는 햇살 같았다.

그럼 당장 바꿔달라고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쏙 들어갔다.

대신 민아 꺼말고 나머지 3장의 티켓도 무료변경이 가능한지 물었다.

우리의 여행일정이 짧아 넣지 못한 루앙프라방이 끝내 걸렸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무료 변경이 가능하지만 15일이 공휴일이기 때문에 남아있는 좌석이 5석뿐이라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감사인사를 전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또다시 전화를 돌렸다.

처음은 민정이었다.

잔뜩 잠에 취한 민정이가 전화를 받았다.

대뜸 비행기 티켓을 15일로 무료변경이 된다는데 괜찮냐고 물었다.

민정이는 잠깐 고민하더니 몽롱한 목소리로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민아와 세희에게도 차례로 전화를 걸어 똑같이 물었고 모두 상관없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다시 항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좀 전과는 다르게 확신이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강민아 티켓 말고 나머지 3명 티켓을 15일로 옮겨주세요.”


더 이상 대행사에 전화할 일이 없길 바라며 전화를 끊었다.

15일 한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

다음날 7시 반 도착이다.

9시 출근이지만 하루만 견디면 주말이니 상관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여행의 기간이 늘어났다는 것에 즐거웠다.

여행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 했지만 이런 이유의 수정이라면 100번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 출발일이 얼마 남지 않았고 모두 꽤 긴 여행에 대비해할 일들을 미리미리 끝내놓아야 했기에 나머지 여행계획과 수정은 줌회의로 이루어졌다.

하루 더 여유롭게 있을 것이냐, 루앙 프라방에 방문해 볼 것이냐.

꽤 오래 고민해야 할 문제 같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결정이 났다.

루앙 프라방을 방문하기로.

다들 가보고는 싶었지만 여행 기간에 끼워넣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기에 그냥 넘어갔었으리라.

그리하여 우리의 일정은 첫날에 비엔티안에 도착해 다음날부터 방비엥에서 3일을 머무른다.

그리고 루앙프라방에서 하루, 다시 비엔티안에서 하루를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정해졌다.

도시 간의 이동이 반나절이 넘게 걸리던 예전 같으면 불가능했던 일정이지만 지금은 라오스에 기차와 고속도로가 생겼기에 가능해졌다.

물론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무언가를 잃었을 것이다.

가령 라오스의 자연이라던가.


방비엥과 비엔티안의 숙소 날짜를 옮겼고 루앙 프라방에 새로운 숙소를 예약했다.

방비엥의 숙소는 변경이 가능한지 여러 번의 메일을 보냈으나 답신을 받지 못했기에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취소 후 다시 예약을 진행했다.

이제 완벽한 여행을 위한 계획이 완성되었다.

물론 계획대로 흘러가는 여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많은 여행 안에서 부딪히며 몸소 배웠다.

그래도 매여행마다 계획을 빠지지 않고 세웠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생기는 아쉬움들이 결국 우리를 다시 여행길로 안내할 거니까.


그리하여 남은 일은 배송올 옷가지들을 기다리며 캐리어를 차곡차곡 채우는 일뿐이다.

돌아올 때에는 이 캐리어보다 더 큰 기억들을 가지고 오겠지.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해도 결국엔 다 잘될 것이다.

출발 전부터 틀어졌지만 결국엔 더 잘 풀린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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