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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_루앙프라방 이니까

주홍빛 청춘

by 한경환

투명한 비냄새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주 작은 빗방울들이 루앙 프라방의 땅을 적시고 있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니 내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시간은 이제 막 6시를 지나고 있었기에 다들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이른 아침의 루앙 프라방을 보고 싶어서였다.


작게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나선 길은 상쾌했다.

같은 라오스지만 비엔티안에서 느꼈던 기분과는 조금 달랐다.

좀 더 차분하고 고요했다.

이름 그대로의 루앙 프라방같이. 고요라는 이불을 덮은 촉촉한 이른 아침이었다.

조용한 거리에는 새들이 작게 지저귀는 소리마저 크게 들려왔다.

구름이 움직이는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대충 손으로 가린 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다녀와야겠다는 목적지는 없었다.

마음이 향하는 길을 따라 걷는 것.

그것이 청춘을 찾으러 무작정 찾아온 이곳과 잘 어울리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가를 따라 걷는 길은 이따금 들려오는 바람소리나 빗방울소리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내가 만드는 소음만 있을 뿐이었다.

나의 발자국 소리, 옷을 스치는 소리, 가끔 내뱉는 숨소리, 뛰는 심장소리.

옆에서 흐르는 강물보다도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5분 정도 걸었을 때 마침내 다른 소리들이 섞이기 시작했다.

차분한 말소리가 강둑을 따라 흘렀다.

멀리서 주황색 승려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순수함을 가득 품은 장난스러운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분함이었다.

가장 어려 보이는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내리는 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얇은 옷가지에 그것보다 더 얇은 빗방울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마치 비와 한 몸이 된 듯, 가볍고 자연스러운 그 발걸음에 비를 막으려 들어 올렸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주황빛, 아주 귀여운 청춘들이 빗속을 걸어갔다.

청춘의 시기를 지나는 것은 저 빗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우리는 청춘의 불확실함과 고난을 비처럼 여긴다.

차갑고 피하고 싶은 것.

가진 것이 없기에 손이라도 들어 올려 막아야만 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정작 가장 어린 청춘들은 그 비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나아가고 있었다.


청춘은 어쩌면 그렇게 맞아야 하는 비일지도 모른다.

피하려고 애쓸수록 더 힘들고 더 무겁게 느껴지는 비.

하지만 막아내는 손을 내리고 있는 그대로 맞아내는 순간, 그 비는 차가움이 아니라 생동감으로 바뀐다.

내리는 비는 나를 적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숨겨진 감각들을 깨워내려는 것처럼 말이다.


어린 스님들은 이미 알고 있던걸까.

청춘의 비는 막아야 할 것이 아니라 느끼며 걸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맞으며 나아가다 보면, 비는 곧 그치고, 그 후에는 더 선명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겪는 청춘이라 불리는 시기는 어쩌면 쏟아지는 비를 맞는 법을 배우는 시간일지 모른다.

손을 내리고 마음을 열 때, 우리는 비로소 청춘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손을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빗방울이 머리를 적셨다.

앞머리에 맺힌 물방울은 얼굴의 굴곡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흘렀다.

하지만 더 이상 피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청춘 위에 쌓였던 먼지들이 내리는 비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보슬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더 이상 손으로 빗방울을 막지 않았다.

청춘이니까.

진흙을 밟았지만 털어내지 않았다.

청춘이니까.

비가 와서인지 그냥 루앙프라방이라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길가에 달팽이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꼬물꼬물 기어가는 그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어릴 적 등굣길이 생각이 났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담장을 기어가는 달팽이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혹시나 밟지는 않을까 바닥을 보며 조심스럽게 걸어야 할 정도였으니까.

귀여운 모습에 집으로 데려와 몰래 키우는 일도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많았던 이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

20년이 지난 지금, 비는 여전히 자주 내리지만 더 이상 꼬물거리며 기어가는 달팽이를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이곳도 20년이 지나면 그렇게 될까.

스쳐가던 꼬마 스님들이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비가 내리면 달팽이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길바닥을 기어가는 달팽이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 옮겨주는 순수함도 여전히 간직한 채라면 더 좋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어디로 향하는 계단일까.

아직 조식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았으므로 이곳을 오르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곳저곳 부서지고 깨어진 돌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이곳에도 마찬가지로 많은 달팽이들이 땅을 기어가고 있었다.

혹여나 이들을 밟지 않도록 땅을 주시하며 계단을 올랐다.

계단 끝에는 소박한 모양의 작은 사원이 보였다.

아까 보았던 어린 스님들의 옷과 같은 주홍빛 옷들이 가지런히 널려있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서니 더 깊은 고요가 나를 감쌌다.

비에 씻긴 돌바닥과 오래된 목조 기둥에서 스며 나오는 시간의 흔적들이 어쩐지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여 주었다.

기둥의 한쪽 면은 닳고 닳아 맨질맨질하게 보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듯했다.

얇은 커튼처럼 드리운 아침 안개와 빗소리가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숨소리와 기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사원의 가장자리로 걸어 나가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빗물이 흐르는 언덕 아래로는 루앙 프라방의 아침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물에 젖은 나무와 강, 멀리 보이는 지붕들이 아침 햇살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짙은 구름덕에 햇살을 보려면 한참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햇살이 오든 오지 않든, 이 순간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어쩌면 청춘이라는 시기는 완벽한 순간이나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완전한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비에 젖은 사원의 공기가 전해주는 말은 단순하고도 명료했다.

풍경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지만, 그 흐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여전히 각자의 몫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내가 그 아름다움의 한 조각이라는 것.

청춘은 그렇게 스스로를 발견하고, 지나가는 시간을 조용히 안아주는 순간들로 완성되는 것 같았다.

돌아서는 길, 사원의 주홍빛 천들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사원이 건네는 작별인사 같았다.

우연히 발견한 이곳을 내가 이번 생 동안에 다시 찾아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오래 전의 청춘의 시기와 같이 말이다.

하지만 파란색으로 빛나던 80살 청춘처럼 아마 다른 색으로 빛나는 나만의 청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사원은 아닐지라도 또 다른 사원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다시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발아래의 달팽이들을 조심스레 피하며 한 걸음씩 걸었다.

이 작은 생명들조차 자신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루앙 프라방의 고요 속에서 우리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나를, 우리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나는 여전히 비를 맞으며 걸었다.

거리는 여전히 고요했지만 먼 곳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루앙 프라방의 아침은 나를 빗속으로 초대했다.

나는 그 초대를 받아들였고 나만의 속도로 걸었다.

비를 맞으며 걸었던 그 시간은 마치 내 청춘의 한 조각 같았다.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멈추지도 않는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묻지 않고, 그 목적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순간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일.


청춘은 빗속을 걷는 시간을 닮아있다.

비를 피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

언젠가 비가 그치고 해가 뜰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걷는다.

설령 해가 뜨지 않더라도, 빗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그날 아침, 나는 루앙 프라방에서 나의 청춘을 만났고 그 안에서 다시 나를 발견했다.

내리던 비가 서서히 끝을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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