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우주가 품은 청춘
경쾌한 알람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의 공기를 가로질렀다.
무겁게 누르던 눈꺼풀이 천천히 열리며 침대 머리맡으로 흘러든 아침햇살을 마주했다.
전날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탓에 몸은 아직도 꿈결 속을 헤매고 있는 듯했다.
천장을 바라보며 몇 초간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선명하게 쏟아지는 햇살이 커튼틈을 비집고 들어와 손끝을 간질였다.
마치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침대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였다.
골목을 따라 부드러운 바람이 천천히 흘렀다.
벽을 타고 내려오는 아침 햇살은 어제보다 더 따듯하고 선명했다.
이마에 닿는 바람이 나른한 기분을 조금이나마 깨우는 듯했다.
다른 친구들을 차례로 깨우고 꿈길을 걷듯 계단을 내려갔다.
고작 한 층 아래인데도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마치 꿈과 현실 사이, 그 경계를 조심스레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어제의 로비가 아침이 되자 식당으로 변해 있었다.
조용한 아침을 닮은 미소를 짓고 있는 직원이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4명에서 한 줄로 앉았다.
조그마한 테이블에는 메뉴판들이 올라가 있었다.
볶음밥과 샌드위치.
우리는 2명씩 짝을 지어 함께 나누어 먹었다.
한입 크게 떠먹은 볶음밥은 적당한 간이 배어 있었고, 고슬고슬한 식감이 마음에 들었다.
함께 나온 계란과 따듯한 국물.
작은 식탁 위의 소박한 아침식사가 여행지의 공기와 어우러져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샌드위치는 부드럽게 넘어갔고 과일주스의 상큼한 향이 천천히 혓바닥을 간질였다.
천천히 음식을 씹으며 오늘의 일정을 정리했다.
어디를 방문할 것인지, 무엇을 먹을 것인지.
자세한 일정보다는 큰 일정들 위주로 짜인 계획이었다.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어떻게든 굴러가기 마련이니까.
대단한 계획이 없어도 괜찮았다.
어디를 가도 결국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순간은 함께 보낸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숙소로 올라왔다.
민아는 곧장 침대로 돌아갔고 민정이는 망설임 없이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나 또한 수영장으로 달려갈 준비를 마쳤지만 세희는 아직도 고민 중이었다.
수영과 달콤한 낮잠 사이에서의 갈등이었다.
우리는 한시가 바쁘다는 듯 문 앞에 서서 신나게 외쳤다.
“그럼 고민해 보고 와! 우린 먼저 가있을게.”
여전히 고민하는 표정의 세희를 뒤로하고 민정이와 나는 어린아이 같은 발걸음으로 계단을 두 칸, 세 칸씩 뛰어 내려갔다.
작은 호텔의 작은 수영장.
어제 미리 보았기에 크기에 대한 기대는 없었지만 아침에 마주한 수영장은 역시나 놀라웠다.
이 어린이용 풀장 사진을 어쩜 그렇게 넓게 찍었는지!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서든 우리는 즐겁게 놀 수 있었으니까.
수영장 물에 발끝을 조심스레 넣었다.
차가운 물의 온도가 발끝부터 전해져 올라왔다.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가 이내 익숙해졌다.
물안경을 단단히 눌러쓴 뒤, 수영장 안으로 몸을 던졌다.
한순간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햇빛에 반짝이는 수면 아래에서 오로지 나 혼자만의 공간이 펼쳐졌다.
손끝을 움직일 때마다 작은 공기 방울들이 흩어졌다.
부드럽게 얼굴을 간질이는 머리카락만이 고요 속 유일한 움직임 같았다.
고요는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깨졌다.
물속으로 뛰어든 민정이와 함께.
커다란 물방울을 만들며 등장했다.
아주 작은 수영장이기에 내가 어디에 있던 민정이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미니 멋진 선글라스를 쓰고 신나 하는 민정이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손과 발을 흔들며 반짝이는 물속을 유영했다.
잠수를 하고, 물속에서 한 바퀴 돌아보기도 하며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만끽했다.
물속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로웠다.
떠오르고 가라앉는 것,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멀어지는 물결.
어느새 세희도 잠을 포기하고 수영장으로 내려왔다.
작은 수영장 안에서 세 사람은 물장구를 치며 웃었다.
이 작은 수영장 안에서 끊임없이 헤엄치며 웃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그저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이곳에서 언제까지고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이 반짝일 때마다 얼굴에도 작은 별들이 내려앉는 듯했다.
작은 수영장이었지만 우리의 즐거움을 담아내기엔 충분했다.
얼마 후 민아도 내려와 합류했다.
이 작은 수영장은 우리만을 위한 작은 우주였다.
우리는 그 안에서 시간도, 공간도 잊은 채 반짝였다.
수영장 안에서 물을 튀기고 서로를 밀쳐보기도 하고, 잠수를 하며 장난을 쳤다.
공간이 작아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었다.
크고 웅장한 여행지보다, 때로는 이런 작은 공간이 더 깊이 남는 법이었다.
물속에서 몸을 기울이며 해를 바라보았다.
빛을 가득 품은 채 세상이 둥글게 보였다.
햇빛이 물 위에 부서지며 눈부신 반짝임을 만들어냈다.
또 하나의 청춘의 장면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어렴풋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물장구를 치며 웃고 있는 지금.
거창한 계획 없이도 하루가 빛이 나고, 대단한 일이 없어도 모든 것이 특별해지는 순간.
비엔티안의 하늘은 높고, 푸르렀고, 어디에도 닿지 않을 듯 멀고도 깊었다.
태양은 아낌없이 빛을 쏟아냈고 물방울들이 반짝이며 우리의 청춘을 더욱 투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작은 호텔의 작은 수영장에서 우리가 함께 보낸 이 아침은 먼 훗날에도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청춘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젊음의 한 때는 더더욱 아니다.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작은 수영장에서 뛰놀고, 물속에서 손을 흔들며 바라보는 친구의 얼굴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가 있던 이 공간과, 그때의 웃음소리와,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던 물결.
이 모든 것이 모여 우리의 청춘을 이루었다.
라오스의 하루 하루가 청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