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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Jul 06. 2024

아직은 맞는 생각이 아닌 것이다

- 혼자라는 생각

‘나는 나다’라는 생각과 ‘나는 하나다’라는 생각이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한 인간을 한 명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고 내가 말하면 아마도 나를 정신 나간 사람이고 비난할 것이 분명하다. 마치 내가 두 개의 자아나 의식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지 처음에 말한 ‘나는 나다’라는 말과 ‘나는 하나다’라는 말이 우리 상식처럼 그렇게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그저 원초적인 차원에서 ‘나’라는 것과 ‘하나’라는 숫자가 도대체 관계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해 보고 싶은 것이다. 동의한 적도 의심한 적도 없이 상식과 습관에 갇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고 싶다. 쓸데없는 공상을 이리저리 다듬어 보자. 철학이 우리를 어디론가 이끌어 줄 것이다.


나는 너가 아니고 저 물건도 아니니 나는 저들과 구분되는 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어제 내가 한 일 그리고 이따가 할 일을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으니 거의 항상 동일한 나로 머물러 있다는 것도 분명한 것 같다. 나는 여기에 있으면서 저기에 있을 수도 없다. 나는 지금 이대로 이 작은 몸에 갇혀 있는 한 명의 사람이 분명하다. 나는 나다라는 생각이 나는 하나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다시 기술해 보았다. 여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 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해 볼 만한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내가 하나의 나라는 사실은 내가 저 사람이나 저 물건 아니 저 밖에 있는 세상과 구분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저것이 아닌 나’라는 말의 얄팍한 수작 말이다. 이 말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말과 같다. 결국 저것이 저기 있어야 내가 내가 되기 때문이다. 나와 구분되는 다른 것이 없다면 나는 나일 수 없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데 나는 왜 나를 하나라고 말하는 것일까.


또 나는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치 않는 나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변하지 않는 하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제 어떤 일들을 하고 내일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그런 일들과 뒤엉켜 있는 상태에서만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은 나는 수많은 잡다한 일들이 통과하는 통로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저 통로. 많은 일들이 서로 교차하는 작고 좁은 교차로. 이런 상태에서 실제로 내가 하나의 나로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동시에 두 군데에 있을 수 없으니 나는 하나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은 어떨까? 이 말은 얼핏 보기에 부정하기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의 트릭에 속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두 군데에 있을 수 없으니 나는 하나의 나라는 주장은 나는 한 공간 안에 하나의 부피를 차지하고 있고, '한' 부피를 차지하고 있기에 나는 하나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부피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곧 나는 하나라는 사실을 그들은 증명하지 않고 우리에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피, 나의 몸, 나의 살은 언제나 세상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세상이 없는 상태에서 나의 몸만 가져본 적이 없다. 내 몸이 느끼는 쾌적함과 편안함은 곧 내가 언제나 이미 세상에 스며들어 있다는 반증이다. 부피를 가진 몸은 나와 세상이 결코 구분되지 않는다는 더없이 확실한 증거이다.


내가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면 이런 것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혼자서 살아가야 하고 혼자서 책임을 져야 하고 혼자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들. 저들은 나를 외면할 것이고 내 몫은 결국 내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들. 아직은 맞는 생각들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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