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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Jun 28. 2024

놀라운 방식으로 '무'와 뒤섞여 있다

- 철학자들이 '무'에 관심을 갖는 이유

나는 한 아이의 아빠다. 아이는 11살이고 항상 나를 아무렇지 않게 ‘아빠’라고 부른다. 나는 아이의 밥을 차려주기도 하고, 집에 간식이 없으면 슈퍼에서 간식을 사오기도 한다. 학교 갈 때는 가방을 챙겨주기도 하고 숙제검사도 한다. 수학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기도 하고 축구학원에서 축구를 할 때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른 부모들처럼 아이가 축구하는 모습을 보러 간다. 아이가 골을 못 넣어 기분이 좋지 않으면 저녁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고기를 먹자고 말하기도 한다. 10시가 넘어서까지 TV를 보고 있으면 혼내기도 하고 어서 자라고 한다. 그리고 자는 모습을 보며 몰래 볼에 뽀뽀도 한다. 나는 아빠다. 그런데 만일 누가 나한테 아빠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마음에 아이를 돌본다. 그럼 나는 아빠가 되는 것일까? 사실 내가 한 이 모든 일은 아빠와 관련이 없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내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수도 있을 것이고, 나 역시 다른 아이를 상황에 따라서는 내 아이처럼 사랑으로 돌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내 아이에게 한 모든 행동 안에는 그 자체로 ‘아빠다운’ 것이 없다. 그저 그때마다 아이가 나를 아빠라고 부르기 때문에 '아빠가 한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은 그게 다다. 그런 내가 아빠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우리가 자연스럽게 놓치고 있던 한 가지가 이렇게 분명해진다. 나는 아빠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빠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며, 그건 살아보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이상한 것일까, 자연스러운 것일까? 아빠가 뭔지도 모르면서 아빠로서 문제 없이 살아간다는 것. 


우리를 다소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면서도 나는 그 일을 참도 잘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르지만 해야 하고, 하고 싶고, 그렇게 했을 때 행복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하겠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건 또 이런 뜻이 된다. 모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는 것이고,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모르지만 그렇게 했을 때 나는 진정으로 행복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을 이렇게 바꾸어 볼 수도 있다. 모른다는 것 설명할 수 없다는 것, 정확히 말해 내 안에는 내가 모르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실제로 있으며 그건 나를 특별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된다. 어떤 철학자들은 그걸 ‘무’라고 부른다. 무는 나를, 인간을 살게 하는 실제로 작용하는 힘이다. 그건 단어나 개념이 아니다.


무란 형이상학자들에게만 허락된 지성소 어딘가에 있는 개념이 아니다. 형이상학자들은 무를 신비화하고 자신조차도 모르는 말들로 장식을 한다. 그들은 우리의 삶이 이미 놀라운 비율로 무와 뒤섞여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무는 생물학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내 심장은 나와 상관‘없이’ 뛴다. 내 몸은 나와 상관‘없이’ 늙고 병들어 간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건강히 살아간다는 말과 완전히 같은 뜻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사실은 그것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확실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개념을 정의하고 공식과 법칙을 만드는 것이 다 그런 것이다.


알 수 없지만 하고 있고, 하고 싶고,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이 나를 그렇게 살게 한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철학자들이 무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무란 무엇일까. 물론 무는 개념이나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무는 움직임이기 때문에 삶이라는 움직임이 그리는 궤적이 한 단초가 될 것이다. 무가 함께 만들어 간 흔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빠 노릇을 하며 쌓이는 추억들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내가 왜 아빠로서 살아가는 것을 원하고 좋아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 조금 늦은 대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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