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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Aug 30. 2024

전에 밥솥과 세탁기에서 시작하더니

- 인간은 이렇게 생긴 생명체가 아니라 ‘삶’이다

전에 밥솥과 세탁기에서 시작하더니 이제는 세상이 온통 인공지능으로 뒤덮이고 있다. 민첩한 인간들은 말도 잘 만들어 내는데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그렇다. 인간 비슷하게 생긴 로봇에 이걸 탑재해 사람 같은 걸 만들어 내겠다고 한다. 대학과 교육 그리고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이걸 선택하지 않는 건 도태일 뿐이라고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물론 그들은 지금 그들이 꿈꾸고 있는 사람 같은 로봇을 만들어 내고야 말 것이다. 고집은 꺾기 힘든 법이다. 그리고 축하하고 자랑하고 자신의 선견지명을 자화자찬할 것이다. 아마도 내가 죽을 때쯤이면 세상 전체가 또 그렇게 인류의 새로운 발명품에 취해 비틀거리며 흘러갈 것이다.


관련 학회에 다녀왔다. 철학자인 내게 미래 인류에 대한 논문발표가 있는데 논평을 해 달라는 것이다. 머지않은 시대에 인간과 유사하거나 인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형태의 인류가 등장할 것이며 그것은 대세이고 현실이기에 차라리 그들에게 인간의 지위를 부여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그들에게 현재의 인류가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뭔가 완전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빼고 모든 사람들은 그 도발적인 논문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점심식사 때 수닷거리 하나 챙긴 것 같은데 왜들 저러는지.


기술을 비난하거나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치과기술은 발전해야 하고 그 끔찍한 손바닥 만한 마취주사기는 빨리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사 인간’이라는 아이디어다. 발표자에게 무례하게 들릴까봐 얘기하지는 않았는데, 혀 뿌리에서 두껍게 맴돌던 질문이 있었다. ‘유사 인간이라는 표현을 쓰려면 인간에 대한 정의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 인간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발표자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지도 아니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 질문을 그냥 집으로 가져오기로 했다.


인간이란 근육이나 골격, 정교한 감각기능, 정보의 인식과 처리를 합쳐놓은 시스템이 아니다. 따라서 그 기능들을 아무리 발전시킨다 하더라도 인간과 유사하거나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 인간은 애초 ‘정교한 기능’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라, 이렇게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한 아이의 아빠이다. 맛집을 즐기는 한국인이고, 중년의 아저씨이다. 통장 잔고 걱정에 아내에게 돈 좀 아껴 쓰라고 잔소리하는 능력 없는 남편이다. 며칠 전에는 아이의 반장선거 연설문을 몰래 써주었던 사기꾼 아빠이다. 이런 게 인간이다. 인간은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라는 존재방식’이다. 삶과 상관없는 인간이 먼저 있고,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그 시작부터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삶이었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기에 우리는 인간인 것이다. 그렇게 고집을 부려 꼭 인간과 같은 뭔가를 만들고자 한다면 당신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뭔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만드는 첨단의 시대에 와 있다고 말한다. 세상물정 모르는 샌님인 내 눈에는 인간이 더 이상 자신을 묻거나 생각하지 않고 그래서 더 물을 필요도 없이 단순해진 메모지 한 조각의 인간정의에 자기를 끼워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인간에 대한 한 조각 단순한 정의가 시대를 떠받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을 기계적으로 생각하는 패러다임이 완벽히 준비되었기 때문에 생성형 인공지능과 그것을 탑재한 로봇이 힘차게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기계가 인간을 닮아가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그 정도의 발명품이 인간과  유사하다고 간주할 만큼 우리는 인간에 대해 깊이 생각할 능력이 없어진 것이다. 특히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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