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의 경계
현관 앞 신발들 가까이에 앉는다. 조금 열어둔 현관문 틈으로 선선한 바람이 몰래 들어오다 내 얼굴을 타고 지나간다. 이제 그 바람을 두 손으로 가만히 움켜잡는다. 철학이 한 움큼 내 손에 들어왔다. 철학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저기에도 있을까 싶어 갑자기 어린이처럼 신나 작은 방 내 책상으로 가본다. 오래된 조금씩 썩어가는 내 나무책상을 손으로 만진다. 두 손바닥으로 책상을 문지르다 책상에 붙어 있는 철학을 닦아내듯 쓸어모아 두 손에 올려 놓는다. 여기에도 철학이 있구나. 나는 두 손으로 철학들을 만져 본다.
자 이제 됐다. 누가 한 번 나에게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말해보기 바란다. 생각이나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철학이라고 함부로 말하고 손으로 쓸어 담느니, 움켜쥐었느니 하는 표현들은 또 철학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 따져 주기 바란다. 요즘은 아무나 철학을 말한다고 많은 책과 논문을 쓰신 철학박사님들과 교수님들이 나를 무시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나보다 철학을 잘 아는 그분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다. 철학은 당신의 삶에서 어디까지 입니까? 철학책을 읽을 때 철학은 당신 머리 안에 있는 것입니까? 철학은 당신이 쓴 논문입니까? 철학은 도서관 책 속에 있어 내가 그 책을 빌려와 펼치고 읽을 때 시작되고 덮을 때 끝나는 것입니까? 철학은 정말 그렇게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으면 정리해 둘 수 있는 것입니까?
기한에 쫓겨 책을 읽고 논문을 쓰다가 머리와 마음이 답답해 지면 나는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현관 쪽 바닥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댄다. 그 자세로 머리 기댈 곳까지 찾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나는 그 별 볼 일 없는 공간에서 휴식을 취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는 그 상태가 좋다. 그럼 바람이 느껴지는 만큼 긴장감이 풀어지고 생각들이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럼 나는 그 생각을 잊기 전에 얼른 책상으로 가서 글을 이어간다. 바람이 들어오는 현관쪽 방바닥은 지난 여름 그렇게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철학을 하다가 거기에 앉아서 쉬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책상에 앉았던 일들이 몇 번이나 될까. 오늘 또 그렇게 현관 쪽에 앉아 있는데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현관에서 저 책상까지의 거리 사이에 철학과 철학이 아닌 것을 구분해 주는 경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왜 여기 현관 바닥은 별 볼 일 없는 공간이 되고 저 책상은 지적인 공간이 되는 것일까? 만일 구분이 없다면 여기와 저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차이가 없다면 여기도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주 조금이라도. 이 생각은 책상으로 가져와도 똑같다. 책과 노트북이 아니라,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언제나 그것들을 받치고 있던 이 책상의 표면, 내 팔꿈치와 내 시선, 내 손바닥이 수없이 문질러 댔던 이 책상은 왜 철학이 이루어지는 공간임에도 철학과 상관이 없는 것일까? 책상이 철학이라는 것이 아니라, 책상과 그 고상한 철학적인 생각들과의 경계와 구분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잠깐 정신 나간 사람이 되기로 했다. 책상을 문지르며 이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하기로 했고, 현관 바닥에 앉아 느껴지는 선선한 바람이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철학적인 작업을 하는 동안 나를 도와주고 쉬게 해 주었던 별 볼 일 없는 공간과 사물들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철학자는 생각해야 한다. 만들어진 글이 아니라, 그때까지 같이 했던 작은 연필과 책상, 의자, 빗자루, 쓰레받기, 컵, 벽, 종이, 선풍기가 얼마나 철학과 가까이에 있는 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