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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Aug 09. 2024

인간은 달 표면에 도달한 게 맞을까(섬_정현종)

사람들 사이의 머나먼 거리는 과연 좁혀질 수 있을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정현종, <섬>



아, 저는 왜 아이를 낳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전 절대 안 낳을 거예요.     


세상에 만연한 ‘혐오’라고 일컬어지는 것 중에 하나를 마주친 순간이었다. 혐오를 마주하게 되면 내 방식은 거진 하나였다. 대충 동조하는 척 회피하는 것. 그리고 곱씹는 것. 그렇게 얘기하지 말걸. 여름철을 맞아 네일아트를 하러 와서 손을 내민 상태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썰을 풀다 보니 나온 얘기였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는 네일리스트가 새로 와서 서로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이야기했었다.  살기엔 너무 '키즈프렌들리'한 동네지 않냐며 농담처럼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고객님들이 많다 보니 자기는 저런 생각이 저절로 든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를 공격하려고 한 말도 아니고, 그냥 자기의 생각일 수도 있지. 저런 말에 하나하나 상처받기엔 나는 지금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을 고민했고 결정했기에 더더욱 말할 수 있었다. 별 의미를 두고 한 말은 아니고, 내게 별 의미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기에 그냥 나도 내뱉을 수 있는 대꾸였다.


 

그래요? 난 너무 재밌는데. 아이 키우는 게 너무 재밌어요.
내 적성이 그건 거 같아.     


하니까


어 정말요? 고객님 그런 말 하시는 분은 처음 봐요 하면서
육아가 적성에 맞으세요?

하면서 질문한다.     


대신 나는 매장에 있는 강아지에게 화제를 돌렸다.

하얗고 작고 뽀얀 포메라니안은 네일리스트를 닮아있었다.

당신에게도 소중한 게 있지.

아이만큼이나 소중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도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저 친구랑은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 번식장이요.


네?


생긴 게 너무 작고 귀여워서 다들 샵에서 온 줄 아는데, 번식장에서 왔어요.
저렇게 작은 친구라서 교배시켰으면 임신하자마자 죽었을 수도 있는데,
사람이 제일 나쁘죠?     



까르르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는 이럴 때마다 항상 겸손이란 단어의 참면목을 한 번씩 되뇐다.


자기 PR의 시대를 넘어서서 완전한 상품화의 시대, 스스로가 콘텐츠가 되어야 하고 어떤 이야기를 양산해내어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어떤 단면만을 전문화해야만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사회에 우리는 얼마나 또 이면을 보지 않고 있는지.


숫자로 이루어진 좋아요와 내 이야기를 듣겠다는 청자들을 뛰어넘어, 실제 나는 내 앞의 네일리스트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는 않았을까. 번식장에서 온 강아지를 키워내는 네일리스트가 굳이 아이를 키워보고 싶어요라고 이야기를 끌어내고자 했던 오만한 생각을 가졌던 게 아닐까 싶어 그 뒤로는 손톱에 눈을 맞추고 대화를 이어갔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닐 암스트롱은 무려 인류를 위한 위대한 도약을 내디뎠다. 그러나 그 작은 한 걸음을 보고 과학계의 다시없을 큰 진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까지도 음모론은 남아있고, 이제는 그 참과 진실은 개개인의 믿음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런 과학적인 사실과 진실조차도 서로 믿고 믿지 않고 나뉘는 상황에, 사람의 뒷 이면은 언제 발견될 수 있을까.



그 뒤부터는 대수롭지 않은 대화들로 남은 시간을 꽉 채우고 예쁜 손톱을 가진 채로 가게를 나왔다. 유난히 바디가 짧아 조각달 같은 내 손톱을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더 넓게 애써준 그 이의 집중력 가득한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고 유기견 봉사를 다녀야지 생각하는 나와 번식장에서 직접 강아지를 데려와 구원해 놓고 아이는 못 키우겠다는 그 이 중에,


과연 우리는 누가 더 ‘혐오’스럽지 않은가.


결국 나는 아직 달 착륙은커녕, 달 조각도 사보지 못한 평범한 시민이고 엄마로서, 아직 어떤 다른 인간의 달 앞면도 뒷면도 도달하지 못해 본 사람이라는 겸손을 마음속에 새긴다.

과연, 우리는 대체 언제쯤 서로의 달 표면에 착륙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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