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보람 Jun 16. 2023

우리 집 벽지가 찢어져 있는 이유

손목, 노쪽 치우침, 자쪽 치우침, 손목 폄근, 손목 굽힘근, 망치

아빠의 일상은 눈치의 연속입니다.


아이들이 숙제할 때, 저는 옆에서 함께 책 읽는 척해야 하고,

아내가 설거지할 때, 저는 청소하는 척 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집에 들르지 말라고 해도, 저는 집에 들러 얼굴을 비춰야 하고,

어머니께서 김치가 맛없으면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저는 김치와 함께 밥을 먹어야 합니다.


어느 날 아내가 벽에 시계를 걸어야 한다길래 벽을 톡톡 쳐보니 콘크리트 벽이었습니다. 이때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죠. 하지만 아내의 눈치를 보니 ‘그래도 박아야지?’라는 강렬한 눈빛에 어느새 베란다로 나가서 망치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콘크리트 벽에 못 박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벽의 특성에 따라 어떤 못을 사용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고, 벽의 깊이에 따라 드릴을 써야 할지, 망치를 써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드릴을 사용할 경우, 어느 정도 굵기와 깊이로 구멍을 뚫어야 하는지, 못을 잡아줄 플라스틱은 어느 정도 넣어야 하는지, 충전은 되어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망치를 사용할 경우, 못의 휨이 없게 박으려면 무엇으로 고정해야 할지, 벽지를 안 찢고 못만 정확하게 치려면 어떤 자세로 해야 할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가 사람을 부른다고 하면 '이 정도는 나도 박을 수 있는데 무슨 사람이냐'며 큰소리를 쳐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벽에 걸려있는 시계나 액자를 들어서 못의 모양이나 벽지의 상태를 한 번 보세요. 못이 한쪽으로 휘어 있거나, 못의 머리 부분의 한쪽이 접혀 있거나, 또는 못 주변의 벽지가 찢겨 있지는 않은가요? 그렇다면 망치로 못을 칠 때 이루어지는 손목의 치우침 동작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보 도배 다시 해야겠어요...


손목의 치우침(deviation)이란 해부학적인 자세를 기준으로 손바닥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했을 때, 이마면(frontal plane)을 따라 손목을 움직이는 동작입니다. 엄지손가락 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을 노쪽 치우침(radial deviation)이라고 하고, 새끼손가락 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을 자쪽 치우침(ulnar deviation)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치우침 동작을 망치를 쥐고 못을 박는 동작에 적용하자면, 망치를 들 때노쪽 치우침 동작을 말하고 망치내려칠 때자쪽 치우침 동작 말합니다. 이러한 치우침 동작만 순수하게 일어난다면 못은 정확하게 벽에 박히게 됩니다. 하지만, 치우침 동작을 하는 동안 손목의 굽힘근이나 폄근 중에 한쪽으로 우세한 근육이 있게 되면, 치우침 동작과 함께 손목의 굽힘 또는 폄을 하게 되어 못이 한쪽으로 치우친 망치질이 됩니다.


노쪽 치우침에 작용하는 근육으로는 노쪽손목굽힘근(flexor carpi radialis)노쪽손목폄근(extensor carpi radialis)이 있습니다. 두 근육의 이름 앞에 붙어있는 ‘노쪽’이란 글자처럼 근육이 노쪽으로 주행하기 때문에 두 근육이 함께 작용했을 때는 손목을 노쪽 치우침하게 합니다. 하지만 두 근육의 이름 마지막에는 ‘굽힘’과 ‘’이란 글자처럼 손목을 굽히거나 펼 수도 있는 근육입니다. 두 근육 중 어느 근육 하나가 우세하게 강하다면 노쪽 치우침과 함께 손목의 굽힘 또는 폄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망치를 들 때 노쪽손목폄근이 강하다면, 노쪽 치우침과 함께 손목을 손등쪽으로 펴면서 망치를 들게 되어서 못이 박히는 방향에서 벗어나게 망치를 들게 되는 것입니다.


자쪽 치우침에 작용하는 근육으로는 자쪽손목굽힘근(flexor carpi ulnaris)자쪽손목폄근(extensor carpi ulnaris)이 있습니다. 노쪽 치우침과 마찬가지로 근육에 있는 '자쪽'이란 글자처럼, 두 근육이 함께 작용하면 자쪽 치우침을 만들고 각각 작용하게 되면 손목의 굽힘을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근육 하나가 우세하게 강하다면 자쪽 치우침을 하면서 손목의 굽힘 또는 폄 방향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망치로 못을 내려칠 때 자쪽손목폄근이 강하다면, 자쪽 치우침과 함께 손목을 손등 쪽으로 펴면서 내리치게 되어서 못이 휘거나 못의 위치에서 벗어난 벽지를 망치로 내려치게 될 것입니다(오른손잡이라면 못의 오른쪽, 왼손잡이라면 못의 왼쪽 벽지를 찢게 되는 거죠;;).

여보 드릴 하나 살까?


자쪽 치우침은 망치를 내려치며 힘을 주는 동작이기 때문에 더욱 두 근육의 균형이 맞아야 못을 휨 없이, 못 머리의 접힘 없이, 벽지의 찢어짐 없이 못을 박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아빠가 오른손잡이이고, 지금 확인한 못이 왼쪽으로 휘어 있거나, 못의 왼쪽에 벽지가 손상되어 있으면 아빠에게 이렇게 얘기해 보세요. “아빠! 아빠의 손목에 있는 자쪽손목굽힘근이 너무 강해서 못의 왼쪽 벽지가 찢어졌잖아요! 다음엔 자쪽손목폄근에 힘을 더 주어서 두 근육을 균형 있게 내려치도록 하세요!” 그럼 아빠는 이렇게 말할거에요.      


“그럼 네가 해봐!”


< 이 글을 읽고 다음을 생각해 보세요>


1. 우리 집의 벽지는 찢어져 있지 않나요?

2. 망치를 들 때 사용하는 근육과 망치를 내려칠 때 사용하는 근육을 구분해 보세요.

3. 아빠에게 혼나지 말고 여러분이 해봅시다.

이전 07화 뒷짐지면 가슴이 펴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