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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환 예비작가 Nov 20. 2023

오지 않는 내일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 것

딱딱한 벽돌에 가려져 하루에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무실에서 넓고 높은 공간이지만, 차가운 벽에 나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집은 사무실보다는 좁은 공간이지만, 내일을 기다리며 힘들게 보낸 하루에 지친 내가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가끔은 조용하게 흐르는 음악소리만 들으며, 아직 다 읽어보지 못한 책장을 넘기면서 고요한 공간에 동화되어 간다.

때론 텔레비전을 통해 역동적인 스포츠를 보며, 오늘 보내온 시간을 잠시 잊어버릴 수 있다.

딱딱한 벽으로 만들어진 내 공간에 매년 새롭게 걸린 달력이 있다.

그 달력은 언제나 똑같이 1년이라는 날짜를 표기되어 있으며, 하루가 지나고 지나 한 달을 보내고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간다.

지금까지 그렇게 보내면서 여기까지 왔다.


계획한 일들을 기다린다.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해서 계획을 한다.

내일은 무엇을 해야지!

다음 달부터 무엇을 해야지!

항상, 아직 오지 않은 날에 대하여 계획하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내일이라 말하며 기다리지만 우린 막상 그날이 되면 계획하는 일들을 다시 미루는 일들이 많다.

내일이란 시간이 영원히 있는 것처럼, 항상 내일부터라는 생각과 말로 모든 것들을 미루게 된다.

어느 날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면, 그 오랜 시간 동안 지나온 시간에 수없이 많은 흔적이라는 기억을 남겨두고 오늘까지 왔다.

그 남겨진 흔적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 기억 속에 선명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겨졌으며, 조금씩 흐려진 기억들로 오래전 기억들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기억되는 흔적은 어제의 시간이었다.

분명 어제의 난 내일이라는 시간을 기다렸는데, 내가 기다리는 내일은 오지 않고, 난 계속 내일이라는 시간을 기다린다.

오늘에 난 분명 내일을 기다렸다. 그 기다리던 내일을 무언가 계획하고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다.

내일은 오지 않는 오늘이었다.

선명한 어제의 흔적은 있어도, 내일은 오지 않았다.

오늘은 분명 있는데 기다리는 내일은 오지 않았다.

내가 잠시 멈춘 자리의 지금 이 순간에 돌아본 나의 어제는 분명하고 선명했다.

내일을 기다리는 난 언제나 내일이 아닌 오늘만 살고 있었다.

내가 기다리는 내일은 어떤 날인지 기다려도 그날은 오지 않았다.


내일은 항상 오늘이 되고 말았다.

무엇이 오늘이라는 이 길까지 나를 만들었을까?

난 무엇으로 오늘이라는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렇게 기다리던 내일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을 거쳐서 오늘이라는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내일이라는 것을 기다리고 인내하며 바랬기 때문에 그 바람으로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오지 않는 내일을 기다리면서,

내일이라는 존재가 없는 지금 나는 죽어가는 것인가? 아니면 살아가는 것인가?

시간이라는 것은 지나가고 나는 나이라는 것이 쌓여간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오지 않는 내일은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 것이며,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잠시 멈추어 서있는 이 공간에서 오지 않는 내일의 오늘이 내가 살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죽어가는 것인지? 알 수 없이 그냥 오늘을 보내며, 내일을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던 내일이 오늘이 되어버렸고, 내가 계획한 내일의 일들은 또다시 다른 내일로 미루어지고 말았다.


간절히 바라는 것,

시간은 흘러가는데 나는 지금의 삶을 뒤돌아 보면, 잠시 멈춘 시간까지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오지 않을 내일을 기다리는 나는 살아가는 것인지? 죽어가는 것인지? 그 무엇도 알 수 없는 시간 속에 멈춰 버렸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오늘이 되어버리면, 오늘은 어제가 되고 그런 어제까지 난 잘 살아왔다.

이제는 내가 기다리는 내일은 내가 죽어가는 것인가?


삶에서 살고 싶다고 소리치고 간절하게 바라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쌓인 내 나이만큼 어제를 돌아봤을 때 기억나는 것들이 하나씩 지워지고, 내일이라는 기다림에 오지 않을 내일을 기다린다.

그런 기다림이 오늘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난 그런 내일을 기다린다.

죽어가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무엇이 틀린 것인지 내 마음은 혼란스럽게 복잡해진다.

살아야지 꼭 살아야지 그러니 날 살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고 바랬던 적이 없이 지금까지 왔는데, 오지 않을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살아가는 것인지 죽어가는 것인지 난 알 수 없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의 요동을 느낀다.


오늘의 여기까지 살아온 날들은 기억이 흐리지만 그래도 왔다.

오지 않을 내일은 무엇이 있는지 난 알 수 없어 내일을 계획하는 것 같다.

만약 오지 않을 내일이라는 시간이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어가는 것이라면, 그 끝이 언제인지 모르기에 내일을 계속 기다리고 계획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오지 않을 내일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죽어가는 시간을 잊어버리고, 항상 계획하는 대부분의 모든 것들을 미루고 있는 것 같다.

간절한 바람이 나의 삶에 살아야 한다는 의지보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욕심과 욕망에 나를 가두어버려 오지 않을 내일에 대해 아무런 적정도 하지 않고, 항상 내일을 기다리는 것 같다.

분명 내일은 오진 않는다.

내가 기다린 내일은 그냥 오늘이었고, 내가 살아 숨 쉬는 오늘은 내일이 되어 버렸다.

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어가는 것일 수 있다.

죽어가는 날이 언제까지 인지 모르기에 시간이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고 대부분의 모든 것들을 미루는 반복된 삶이 되는 것 같다.


의미를 찾아야 한다.

오지 않는 내일의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있다면, 지금 보내는 오늘의 시간에 계획하고 실행하며 살 것이다.

하지만 우린 내일을 기다리고 계획한다.

그렇게 찾아온 내일이 오늘이 되어버리면, 다시 내일을 계획한다.

그 계획은 항상 내일이라는 시작점으로 오지 않을 내일을 기다린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끝을 알 수 있다면 삶에 계획이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언제가 끝인지 알고 있는데, 지금 행복할 수 있을까?

끝은 알고 있는데 계획한 일들을 실행할 수 있을까?

계획한 일을 꼭 해야 할까?

계획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난 죽어가는 내일의 끝을 알 수 없어서, 항상 내일을 계획한다.

그런 계획한 일들이 시간이 지나 내 기억 속에서 점점 흐려져 뚜렷하지 않지만, 그런 시간을 통해 삶이라는 삶을 살고 있다.

난 분명 기다리는 내일은 죽어가는 시간일 것이다.

그 내일은 오지 않는 내일이기 때문에 내가 기다리고 계획하는 내일은 죽어가는 시간이다.

오늘은 삶이라는 삶을 살고 있는 시간이다.

나에게 내일이란 시간은 오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내일이라는 시간을 계획하며, 그 내일이 영원히 있을 거라 생각하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멈춘 지금 뒤돌아 보는 내 기억에 선명하지 못하고 뚜렷하지 않은 기억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왔고, 지금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것이 어제의 기억이 될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은 나에게 오지 않는 시간이며, 오늘이라는 시간과 어제라는 시간만이 나에게 존재한다.

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는 죽어가는 것이라도 오지 않을 내일을 계획하고 기다릴 것이다.

그 기다림은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며, 나에게 오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

어제라는 시간과 오늘이라는 시간 그리고 나에게 오지 않을 내일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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