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허락해라
화창한 어느 날 길을 걸어간다.
오늘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평일이지만 휴일 같은 날이다.
집에서 조금은 떨어져 있는 공원을 찾아 산책하며, 잠시의 여유를 즐긴다.
어둡고 답답한 내 방을 벗어나 멀리 갈 시간의 여유도 없어 가까운 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화창한 날에 불어오는 바람도 가볍게 불어줘서 산책하기 가장 좋은 날인 듯하다.
이젠 옷을 가볍게 입기에는 조금은 늦은 여름의 끝자락이지만, 오늘은 화창하게 빛나는 태양과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에 일찍 찾아온 가을의 푸른 하늘과 들녘의 바람이 너무 좋은 날이다.
공원을 산책하듯 걷는 것도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로움이지만, 이런 여유 있는 날에 날씨마저 나를 반기듯 너무나 눈부시게 밝은 날이다.
내 주변에 나뭇잎들도 초록의 모습에서 붉은색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듯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들녘에는 초록의 갈대가 아닌 황금빛 들녘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낙엽이 날리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낙엽이 하나 둘 떨어져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
늦어서야 알게 되는 것들,
바쁜 일상에서 이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나는 보지도 못하고 오늘처럼 여유가 있는 시간이 되어서야 계절이 변해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내 주변에 너희들이 조금은 늦어버린 시간에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금 더 추워지면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마지막 낙엽 하나까지 바람에 흔들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을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바람에 흔들려 하나 둘 떨어져 바람의 이끌림을 따라 어디론가 달리듯 떠나가고 있다.
가벼이 부는 바람을 따라 나뭇가지의 흔들림이 춤을 추듯 흔들린다.
나의 삶도 춤을 추는 나뭇가지처럼 가볍고 유연한 삶이면 좋겠다.
지금처럼 일상이라는 시간에 쫓기듯 나를 살필 여유도 없이, 딱딱한 곳에서 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춤을 추듯 가벼운 몸을 하늘 높이 뛰어오르듯 음악에 동화되어 춤을 출수 없으며, 산책하듯 가벼운 발걸음을 바람이 흐르는 방향으로 바람과 함께 동행하듯 걸을 수 없다.
이런 난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어둠으로 채워진 내 방에서 혼자만 있으려 했고, 그것이 나의 유일한 휴식 같은 시간이라 생각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이젠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어두운 내 방이 점점 동굴처럼 생각되며,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나오기 싫은 것인지 구별조차 할 수 없었다.
오늘은 왠지 평일의 여유로운 시간 때문에 내가 머물던 어둡고 깊은 동굴 같은 내 방을 벗어나 집 주변 공원에 나왔다.
부는 바람이 너무 가벼웠고, 햇살을 따뜻했다.
휴일이 아닌 평일이라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더욱 여유로움과 조용함이 고요하게 내 마음속으로 전해진다.
하늘에서 날아다니던 까치 한 마리가 바람에 흔들리던 나뭇가지에 가볍게 내려앉아 있다.
바람에 유연하게 흔들리던 나뭇가지의 낙엽이 떨어져 가고 있으나, 하늘을 날던 까치는 그 나무 위에 가볍게 내려앉아, 여유롭게 주변을 살피며 한참을 앉아 있다 다시 날아간다.
나도 저렇게 가끔은 가볍게 앉아 주변의 풍경을 살피며, 여유롭게 날아오르고 싶다.
조금은 지치고 힘든 몸을 이끌 듯 하루를 보내는 내 모습이 아닌 춤을 추듯 가볍고 유연한 나를 찾아서 주변의 풍경을 살피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한 마리 새가 되어 자유로운 날갯짓으로 가볍게 날아오르고 싶다.
쉬는 것을 허락한다.
나는 나에게 주문을 걸 듯 말을 전한다.
조금 앉아 있을게요.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에서 잠시만 앉아 있을게요.
잠시 앉아 있는 이 시간을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롭게 조금만 더 앉아 있을게요.
앉아서 유연하고 평화롭게 주변을 살피며, 가벼운 몸으로 이곳에 조금만 더 앉아 있을게요.
가벼운 몸으로 이곳에 앉아 들녘의 황금빛 갈대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그 바람에 실려오는 황금빛 갈대의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그런 이곳 여기에 잠시만 앉아서 쉬어 갈게요.
내 주변에서 느껴지는 바람과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리고 황금빛 갈대의 향기까지 조금만 더 앉아서 쉬어갈게요.
서두르지 않고 이렇게 조금만 더 앉아 있을게요.
어쩌면, 지금 이렇게 앉아 있는 시간이 그리 오래 있을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조금만 더 앉아 있고 싶었다.
오늘처럼 화창하고 따사로운 햇살 사이로 황금빛 갈대의 향기를 품고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이 머무는 이곳에 앉아 주변을 여유롭게 살피며,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 같은 지금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 날인 듯 느껴진다.
조금만 더 이렇게 앉아 쉬어 갈게요.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면 내가 있었던 어둡고 깊은 동굴로 다시 들어갈 것 같아 조금이라도 더 이곳에 앉아 있고 있어요.
내가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조금만 더 앉아서 바람과 햇살을 느끼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시간을 허락해 주세요.
그래야 내 안에서 움츠린 당신이 다신 일어날 수 있을 거예요.
내 안에서 움츠린 당신이 건강해야 내가 건강합니다.
당신을 위해 조금만 더 앉아 있을게요.
내가 아닌 당신을 위해 조금만 더 허락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