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오다.
나에게도 기억하기 좋은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다.
그 추억들을 생각하면 짧지만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고, 잠시라도 행복한 여운을 남겨준다.
모두가 그러한 추억 하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 그런 아름다운 추억들이 생각나지 않고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을 시간이 지난 뒤에 조금씩 알게 된다.
내 삶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나를 억압하듯 구석진 곳으로 몰아가고 있다.
아침이 밝아오는 것도 두려웠고, 저녁에 해지는 노을도 두려웠으며,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도 난 아파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파했고, 병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 밖으로 뛰어나올 수 없이 나를 억압하듯 짓누르던 그 무엇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아프니 내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흐려진 기억들,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것도 분명하지 않는 날들이 많았으며, 의식이 흐려지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시간이 흐른 뒤에 그랬구나 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난 알지도 못하고 의식도 흐려져 무엇을 생각하고 보고 있는지도 말하지 못하고 고개 숙여 긴 한숨만 쉬고 있다.
긴 한숨마저 나를 억압하듯 짓누르던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자유롭지 못하게 가늘지만 길게 숨을 이어가고 있다.
한낮에 따사로운 햇살도 내 몸을 찌르는듯한 고통을 전해준다.
그 고통은 내 피부를 타고 온몸으로 펴져 내 마음까지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해서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나에게 고통으로 전해지는 것이고, 그저 의미 없이 스치는 바람마저 내 몸을 감싸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묶어버리는 듯하다.
평소에 걸어가는 길도 이젠 첫 발걸음을 시작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그 길에 모르는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면 아무도 없는 것도 두려워진다.
누군가 그 길에 있다면 그 사람에게서 이유도 없이 나에게 불안감을 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쉽게 길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가려는 그 길에 아무도 없다면 외로워 그 길을 끝까지 가지 못할 것 같은 우울함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을 것 같다.
거리에는 꽃이 피고 하나씩 떨어진 꽃잎이 초록의 빛깔로 내 주변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 변화를 보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했으며, 변해버린 모습만 보고 있다.
초록의 나무들은 어찌해서 그 자리를 오랜 시간 지켜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초라한 내 모습이 소용도 없어 보였다.
그 자리를 외롭게 긴 시간을 견디어 지금까지 지켜냈고, 앞으로도 그 자리에서 외롭지만 잘 지켜내고 있을 것 같다.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 두려움과 외로움 이 모든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난 누군가에게 분명한 무언가를 듣고 싶었다.
지금 불안함에 억누르는 것에서 벗어날 방법을 듣고 싶었다.
지금 우울함에 한숨마저 가늘고 길게 쉴 수밖에 없는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줄 방법을 듣고 싶었다.
내 몸에 퍼져 고통스럽던 것이 내 마음까지 전해지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려주길 바랐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살아라 말하지 않았으나, 난 불안함과 우울함에 오늘 하루도 견디는 날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난 지금 자리에 서 있다.
난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난 비겁하게 도망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이 오래전 아름다운 기억을 다시 생각하며, 짧은 미소를 그리고 행복한 여운을 찾고 싶었다.
난 패배자가 되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싶었다.
당당하게 내 삶을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며 오랜 시간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딘 나무처럼 겉이 건강한 것이 아니라 뿌리가 건강한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보이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무엇이 아닌 보이지 않는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을 난 갖고 싶었다.
내가 기억하고 추억하는 모습은 아름답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아름다움 이란 나의 내면과 외면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내면이 건강하고 단단한 사람은 외면의 모습까지 단단하고 건강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전해줄 것이다.
하지만, 내면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그리고 지쳐있다면 그 모습을 들키기 싫어 누군가 볼까 두려워서 그 모습을 가리려고 나도 모르는 두꺼운 가면을 쓰게 될 것이다.
두꺼운 가면을 쓰게 된 내 내면으로 인해 외면의 모습들은 조금은 신경질적이고 관심 가는 것이 불명확하며, 주변 사람들과 조금은 삐걱거리는 날들이 많아질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짜증을 보여주며, 모든 것에 실증을 금방 느끼고, 다른 새로운 것을 찾지만 결국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도망가려고 노력도 해봤고, 벗어나려 노력도 했지만 결국 그 자리에 있다.
난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다.
내 내면의 모습이 건강해지는 방법을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너무 오랜 시간을 누군가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내 내면의 모습이 건강해지는 방법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아닌 내가 손 내밀어 주면 되는 것을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내밀어 준 손으로 내 내면의 내가 손잡아 주며 나를 오랜 시간 동안 억누르고 있던 무거운 두려움과, 보이지 않았던 어둠 속에서 내가 내밀어 준 손을 잡고 이끌리듯 천천히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아니라 내가 내면의 나에게 손 내밀어 잡아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디며 그 자리를 지키는 그 나무들처럼 난 내면의 내가 손잡아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은 두렵고 외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다리는 시간이 날 억압하듯 억누르는 것이 아니며, 가늘지만 긴 한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에 아직은 살아 있다는 것을 감사해하며 내가 내민 손을 잡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는 것에 충분함을 가지면 된다.
미안하다.
더 빨리 손 내밀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내가 간직했던 아름다운 기억이라는 추억까지 잊어버려 지금은 흐릿해진 기억이지만, 다시 그 기억을 찾으면 되는 것이고, 앞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성급하지 않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꾸준하게 나아가자.
지금까지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
난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걸어왔던 것인데, 가끔은 삶에서 패배자가 되어 도망치고 싶었고 숨어버리듯 아무도 찾지 못하게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런 내 내면에 나에게 미안하다.
그 순간에 내가 손 내밀어 줘야 했는데, 더 깊이 숨어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그랬어야 했는데 늦었지만 이제야 손 내밀어 준다.
내면에 내가 잡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이다.
이제 천천히 나에게 와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