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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환 예비작가 Dec 15. 2023

Stay

내 몸하나 쉬어갈 곳

나는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곳을 상상한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서 누구의 간섭과 시선도 없는 조용하고 편안한 곳을 찾아 쉴 수 있는 공간을 상상을 한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면서 집이 아닌 낯설지만 왠지 편한 휴식 공간을 찾는 상상을 한다.


직장에서는 나와 친하게 지내며 웃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동료와 친구가 있지만 왠지 모르는 답답함이 항상 가슴속 어딘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내가 차지하는 나만의 자리가 있지만, 가끔은 그 자리에서 모든 걸 뒤로하고 떠나고 싶은 생각이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소리친다.


때론 업무적인 출장이든 아님 기한 없는 휴가를 상상하며 지금의 나를 위로한다.

하루의 일이 끝나 퇴근하고 향하는 집에 가족들이 없이 혼자 조용히 있는 상상을 한다.

기한 없는 휴가로 떠나는 여행에서 호텔의 편안한 침대와 폭신한 베개를 베고 누워서 그냥 의미 없이 고요함 속에 시간이 흐르는 여유를 보내고 싶다.

시간이 되면 책도 읽어보고,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오래된 추억 속 봤던 옛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을 한다.


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싫어 틈만 나면 친구에게 전화해서 만났는데,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이젠 가끔이라도 혼자 시간을 보내고 혼자만 머물 수 있는 곳이 있기를 상상한다.

여유 시간에 즐겨하던 취미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평소 익숙한 사람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런 시간들이 익숙할 때쯤 나는 어김없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상상한다.

처음에는 가끔 하던 상상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자주 하게 되고 점점 뚜렷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기 내어 템플스테이를 하거나, 혼자 낚시를 즐기며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그냥 흐르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나도 혼자 시간을 즐기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실행했고,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처음에는 펜션을 찾아가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계획을 잡았다.

펜션에 도착해서 혼자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그 준비한 음식을 배불리 먹고, 냉장고에서 막 꺼낸 시원한 캔 맥주 하나를 시원하게 마시며, 해지는 노을을 보고 늦은 저녁이 되면 향긋한 커피에 하늘의 별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상상과 현실은 달랐으며 나 혼자의 머묾은 실패했다.


조용함은 잠시였을 뿐 그 조용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펜션을 찾아온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들로 인해 나만이 원하던 시간과 조용함 그리고 여유로움을 가질 수 없었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을 보는 것도 주변 소음으로 모든 것이 흐려지고 말았다.


내가 원하지 않은 음악을 들어야 되고, 조용한 침묵 속에 마음과 머리를 쉬면서 밤하늘을 보고 싶었는데, 사람들은 그들만의 행복한 대화와 지금의 시간을 즐기며, 나는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며 웃고 즐거워하고 있다.

그리고 제목도 알지 못하는 음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난 그 주변 소음에서 벗어나 그냥 방으로 들어왔다.


재미도 없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그냥 내용보다는 주변의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머물고 있는 방을 텔레비전 소리로 가득하게 틀어놓았다.

무엇을 찾으려 이곳에 왔는지 지금은 목적도 이유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첫 시도는 실패를 경험했다.


다시 시도한 곳은 부산의 바닷가 호텔이다.

다행히 바다를 볼 수 있는 방으로 배정을 받았고, 호텔 주변에 맛집을 찾아 이른 저녁을 먹고 바다의 모래를 밟으며,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좋아하는 음악을 혼자 들을 수 있었고, 주변에 사람은 많았지만 방해받지 않고, 모래를 밟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다 끝에서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도시의 딱딱한 보도블록과 아스팔트 길에 익숙한 나에게 모래의 폭신함은 내 몸을 가볍게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그 새로웠던 지금의 시간과 경험도 아주 짧은 잠시의 여유였다.

시간이 늦을수록 바닷가에서는 폭죽이 여기저기서 터졌고, 술에 취한 사람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조용한 바닷가는 어느새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로 늘어나고 있었다.

자신들이 이곳에 주인인 듯 행동하며, 다른 이들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했다.

난 그 자리를 피해서 캔 맥주와 과자를 사서 호텔 방으로 들어왔다.

호텔 방에서는 흐릿한 불만 키고 어두운 밤바다를 바라보며 캔맥주를 먹는 여유로움을 즐기려고 했다.

흐릿한 조명으로 방안의 침묵과 함께 바라보는 밤바다는 어두웠고, 그 어두운 바다 끝 어딘가에 별빛이 보였다.

그렇게 별빛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그 별빛 보다 더 밝은 빛이 나타나 내가 바라보던 그 별빛을 가려 버렸다.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그 빛나던 것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표현하고 소리 지르기에 충분할 정도로 터지는 폭죽 그 빛들이 내 눈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난 그 폭죽들이 잠시면 끝나겠지 하는 생각을 했고, 그 폭죽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저기에서 계속 터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함성은 더욱 커져갔다.

난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커튼으로 창을 가려버렸다.


이번에도 역시 실패를 경험했다.


다음에는 무엇으로 도전해야 할까 생각하며,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는 평소와 같이, 어제와 같은 반복적인 생활로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반복적인 일상에서도 조금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은 어제와 다른 새로운 사람과 약속이 있거나, 아니면 매일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가끔 찾아오는 새로운 일들로 인해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지만, 그런 행복과 즐거움은 모두가 그런 것처럼 나에게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서 우연한 기회에 자연 휴양림을 알게 되었다.

자연 휴양림을 예약하고 혼자 하는 여행 계획을 잡아본다.

어쩌면 여름의 끝자락에 이른 지금 시기가 최고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단풍으로 물든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고, 그러면 난 혼자서 머물며 쉴 기회를 또 놓치고 말 것이란 생각에 지금 시기가 최고의 시기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기다리며 계획한 그날이 되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

모든 여행이 그렇겠지만 오늘도 출발 전에 찾아드는 설렘이 나는 좋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사실이 어쩌면 나도 모르는 설렘이 있을 것이고, 잠시라도 반복적인 내 삶에서 벗어나 내 몸 하나 머물며 쉼을 찾을 수 있는 기대감 같기도 하다.


도심 속을 벗어나 고속도로에서 멀리 보이는 깊은 산을 향해 달리는 차 안 내가 듣고 싶은 잔잔한 음악소리가 오늘 하루를 기대하게 만드는 기분 좋은 시작을 말해 주는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자연 휴양림 입구는 내 기대 이상이었다.

예약을 확인하고 내가 오늘 머물고 쉴 수 있는 숙소 위치를 안내받고, 내 차로 예약한 숙소까지 올라가는 그 길이 너무 예쁘고 평온했다.

난 내가 배정받은 숙소 앞에 주차를 하고, 가져온 짐을 풀기도 전에 나는 가장 먼저 자연 휴양림 입구까지 다시 걸어서 내려갔다.

이번에는 자동차가 아닌 내 두 다리로 그 길을 걸어서 내려가고 싶었다.


차를 타고 오면서 보지 못한 것을 보려고, 그래서 천천히 걸으며 그곳에 많은 것들을 내 온몸으로 느끼고, 내 눈으로 직접 그 모든 것들을 보고 싶어서 걸어 내려간다.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길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내 눈과 코와 귀를 가득하게 채워줬다.

차로 10분도 안 되는 길을 천천히 걸어가니 30분이나 걸렸다.

이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었으며, 나에게 지금의 여유로움은 새로움이라는 선물로 다가왔다.

나는 이제 다시 내가 배정받은 숙소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 길이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 길을 걸으면 또 새로운 무언가를 찾을 듯한 기분이 기대감으로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이번에는 급하지 않게, 내려오던 발걸음보다 더욱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며 많은 것을 느끼며 보려 한다.

여전히 한결같이 바람에 흔들리며 흐르는 바람 소리를 들려주는 나뭇잎과, 깊은 곳 어딘가 숨어서 울어대는 산새들의 소리가 너무도 완벽한 조합이었다.

오히려 내 모습이 불청객이 된 기분이라 이 완벽한 곳에 미안함이 든다.

이번에 오르는 길에서는 발아래 풀들과 이름도 모르는 야생 들꽃을 보게 된다.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자리 잡은 그 들꽃을 보고 있으니,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가 생각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지금 내 발아래에 있는 그 들꽃을 나는 분명 기억하지 못하는 어디선가 그 들꽃을 봤다.

한 번도 가는 길을 멈추고 말없이 서서 그 들꽃을 소리 없이 한참을 바라보며 있었던 적은 없었다.

시인 나태주 님의 말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이 말이 내 마음을 완벽하게 가득 채운다.

그리고 시 마지막에 “너도 그렇다.” 이 말은 지금의 나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고, 지금 내 가슴에는 오랜 시간 지친 나를 내 마음이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그렇게 걸어서 오르는 길에 내 얼굴에서는 땀 한 방울이 머리부터 시작해 얼굴선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기분 좋은 느낌으로 땀 한 방울 또 한 방울 그렇게 머리에서 얼굴선을 타고 내려왔다.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어느덧 도착한 내 숙소에 짐을 풀고 이른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가볍게 쌀을 씻어서 밥을 하고, 삼겹살과 소시지 그리고 각종 야채를 준비했다.

조금은 이른 시간에 저녁을 먹게 되었다.

오늘 저녁 식사 시간은 끝나는 시간을 정해두지 않았다.

직장 생활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시간까지 점심을 먹고 다시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 지금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라는 그런 일상의 패턴 같은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지금 나에게는 없었다.

지금부터 나에게는 내가 시작하고 내가 끝내는 모든 것이 온전히 나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아직 해가 안 떨어졌는데 저녁을 먹는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고 낯설지만, 지금 그런 건 결코 상관없다.

지금부터는 내 시간이고,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젠 내가 온전히 이 시간들을 채워가는 순간들이다.

중요한 전화는 먼저 연락을 하고, 항상 손에 있던 핸드폰도 잠시 꺼두기로 했다.

이곳에서 울리는 핸드폰 소리는 소음과 같을 것 같다.

고기도 천천히 익히면서 하나하나 천천히 급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시간이 흐르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지금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며, 온전히 내가 머무는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어디서 인지 모르는 바람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고,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내 귀를 통해 가슴속까지 울렸다.

내 이른 저녁 식사가 즐거울 수 있도록 내 발아래 어딘가에서 작은 소리로 울리는 풀벌레들이 혼자서 먹는 식사가 외롭지 않게 만들어 줬다.

휴양림이라 사람도 많이 없고,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도 없고, 자신들만의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음악을 크게 틀거나 폭죽을 터트리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도 좋았다.

이제서야 내가 나를 위해 머무는 휴식을 선물하며, 쉬어 갈 수 있는 진정하게 나를 머물 수 있게 하는 장소를 찾은 듯했다.

식사가 마무리되어 자리를 정리하고, 고소한 향기를 가득 품은 커피 한잔 준비해서, 숙소 앞 테라스에 자리 잡고 어둠이 깊어가는 시간의 풍경과 경치를 감상한다.

어느덧 어둠으로 모든 것이 변해 버린 순간 낮에는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이 지금은 나를 스산하게 만든다.

미리 준비한 긴 옷을 입으면서 내 몸에 온기를 품는다.

나는 다시 새롭게 자리 잡고 깊어가는 어두운 밤하늘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데, 내 두 눈으로 똑바로 보고 있는데, 그런데도 의심이 든다.

나는 태어나서 밤하늘에 이렇게 많은 별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두운 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별들이 사실이기 바란다.

내 의심과 상관없이 저 별들은 진실이었다.

너무도 아름다웠다.

지금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많은 별을 보기 위해서, 나 하나 잠시 머물기 위해 반복된 여러 번의 여행들이 실패했고, 만족하지 못한 시간을 지나서야 지금의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지금의 감동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단어로 이 순간의 감동을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순간을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 순간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필요는 나에게 없다.

지금 이 순간이 어제가 되어버려도, 시간이 지나 내가 다시 찾아오면 이 순간의 그들은 나를 지금처럼 반겨 줄 것이다.


내가 오늘 이곳에 머물 수 있다는 건, 그리고 하늘의 수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건,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지나고, 시간이 언제가 되어도 다시 머물기 위해 온다면 지금의 그것들은 나를 반겨 줄 것이다.

변함없이 지금처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들의 모습은 조금 다를 수 있을 뿐, 조금 달라진 모습이라 해도 다시 머물기 위해 찾아온 나를 잘 반겨줄 것이라 난 믿는다.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에게 내 마음속 소원을 말하기 위해 잠시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맞잡는다.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지금 말하는 이 소원은 내 마음속과 어두운 밤하늘 가득 떠 있는 별들 중 어느 별 하나만 알아줄 것이다.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된다.

그 핑계로 다시 이곳을 찾아올 거니깐.


언제나 내가 항상 머물러 있어야 하는 곳, 내가 살고 있는 그곳은 내가 살아가야 할 집이었다.

지금 내가 그렇게 머물고 있는 곳, 항상 머물 수 있는 곳, 그 집은 나에게 얼마나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주고 있을까?

어떤 날은 조용히 쉬고 싶은데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에 의해서 그 조용함은 사라지고 여유로움도 사라지는 날들이 많다.

이런 생각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삶인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나에게 머문다는 건 하루의 지친 내 몸만 머물렀지, 지친 내 마음과 영혼은 편안하게 머물지 못했다.

집이란, 편안하고 따뜻함으로 하루의 지친 나를 편안하게 머물며 쉴 수 있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집이란 곳이 하루의 지친 내 몸만 머물렀지, 내 마음과 영혼은 그곳에서 머물지 못했다.

이렇게 찾은 이곳은 낯설지만 내 몸과 지친 내 마음 그리고 영혼이 짧은 시간이지만, 방해받지 않고 여유롭게 머물며 쉴 수 있는 곳이었으며, 여행이란 말보다 휴식과 위로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내가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내 지친 영혼까지 머물 수 있는 지금 이곳이, 내가 찾아 떠난 수많은 여행들보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모든 것을 허용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허락해 준다.

내가 지금 있는 이곳에서 평소에 가질 수 없었던 도시의 시끄러움을 잠시 벗어나, 내 몸도 편안하게 머물 수 있고, 마음도 편안하게 머물 수 있고, 내 지친 영혼까지 머물며 위로받을 수 있었다.


하늘에 수많은 별들과, 어디선가 들리는 새들의 노랫소리 그리고 나뭇가지를 흔들며 들려주는 바람 소리까지 지금 나에게는 너무 완벽한 조합이었다.

머문다는 건 그냥 내 지친 몸 하나 누워서 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꼭 여행을 통해서 무언가 찾아야 머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머물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드라이브하면서 음악을 크게 틀고 달리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이고,

어떤 이는 조용한 곳에서 이어폰을 끼고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난 낯설지만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곳이지만, 내가 찾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이곳에서 잠시라도 머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잠시라도 머물며 다시 찾아올 그날까지, 나는 지금의 기억을 아주 오래오래 가슴에 담아 둘 것이다.

지금의 순간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다시 찾은 널 꼭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때는 낯설어하지 않고 나 하나 머물며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너를 가슴속 가득 품고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잔다.


그렇게 깊은 어둠이 지나 아침이 찾아왔고, 아직은 찬 바람에 긴 옷을 입어야 되는 아침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평온하게 밤을 보낸 방에서 나와 밝은 아침의 푸른 하늘을 잠시 올려다본다.

어제의 네가 보일까 싶어서. 하지만 어제의 넌 보이지 않았다.


밤새 내린 밤이슬에 내 발아래 풀잎들은 송골송골 맺힌 이슬방울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어제 본 들꽃도 꽃 잎 하나하나에 맺힌 이슬방울이 떨어질 듯 꽃잎마다 달려 있었다.

난 잠시 마지막 여유를 즐기기 위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새벽이슬 가득 품고 있는 숲의 공기를 내 가슴속 깊은 곳까지 긴 숨으로 들이마신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향기와 상쾌함이 내 몸과 내 가슴속 깊은 곳까지 감싸준다.


나무에서 떨어진 새벽이슬방울이 내 얼굴에 묻는다.

그런데 그 시원함이 결코 싫지 않아, 난 그 순간을 다시 느끼고 싶어 진다.

지금 이 새벽이슬방울에게도 인사하며, 이제는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갈 준비를 해야 한다.

다음에 내가 다시 찾아오면, 지금의 너희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길 나는 바란다.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바뀌는 세상에서 사는 건 생활의 편리함도 있지만 가끔은 처음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것들도 있다.

내가 뛰어놀던 골목길 그리고 낡은 놀이터,

주머니에 숨겨둔 동전으로 사 먹던 떡볶이,

시간이 지나 변해버린 지금은 그런 것들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뛰어놀던 골목길과 놀이터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로가 되어 더 이상 처음 그 모습이 아니다.

주머니에 숨겨둔 동전으로 이젠 사 먹을 수 있는 게 없다.

내 어린 시절에 가능했던 일들이, 이젠 내 아이들에겐 경험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내가 머물며 자라온 환경이 너무 짧은 시간에 많이 아주 많이 변하는 과정을 겪으며, 그로 인해 나도 많은 것이 변해 버렸다.


진심으로 이번에 내가 잠시 머물렀던 이곳은 다음에 시간이 지나 다시 찾아와도 그대로 있어주길 바란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들꽃 하나까지도 그냥 변하지 말고, 지금 모습 그대로 제발 그대로 있어주길 바란다.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하는 세상에서 내가 추억하며 마음 편하게 머물 곳을 나는 잊어버렸고, 지금 내 마음속 깊이 담아둔 이곳의 네 모습을 다음에 다시 만난 널 내가 기억할 수 있게 그대로 있어주길 바란다.

하늘에 별에게 내가 빈 소원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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