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나를 우선으로
다른 사람 챙기기를 좋아했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배려하는 게 마음이 편했고 그들을 챙겨주는 게 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듯해서 나를 소홀히 하고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왔다. 내 옷 한 벌 살 돈을 친구들 밥 한 끼 사주고, 생일이면 엄청 친하진 않더라도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관계에 돈과 정성을 쏟았는데도 나는 마음이 늘 공허했다. 여러 명과 함께 놀고 돌아오는 길은 왠지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가슴이 뻥 뚫리고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럴수록 사람들을 잃을까 더욱 남들을 극진히 챙겼다. 친구가 힘들다고 하면 피곤하더라도 밖으로 나가 시간을 보내고 위로도 해주고 다음날 피곤에 지쳐있곤 했다. 그래도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자연히 줄어들게 되었고 각자의 삶을 살기 때문에 신경 쓸 시간이 줄어들면서 타인을 챙기며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었던 나에게 위기가 왔다. 남을 챙겨야 내가 사는 듯한 기분을 느꼈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마음의 불안이 심해지고 공허함도 커져갔다. 공허함 속에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제야 후회가 물밀듯 흘러넘쳤다. 나에게 남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감정, 상황들을 챙기느라 정작 나의 삶, 커리어, 재산, 건강 등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고 후회스러운 삶에 자괴감이 커져갔다. 그리고 거울 속 내 모습을 보았을 때 다듬어지지 않았고 행복해 보이지 않고 불행한 표정의 나를 보며 이제라도 삶의 방향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나를 가꿔야 했다. 친구들에게 밥 한 끼 사주면 금방 쓰는 10만 원은 아깝지 않았지만, 미용실 가는 10만 원은 너무나 아까워 앞머리도 집에서 자르던 나였는데 큰 마음먹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했다. 또 새로운 옷을 사고 가방도 샀다. 처음 시작이 어려웠다. ”이 돈을 옷과 가방에, 화장품에 사용하면 나중에 약속에 돈이 부족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거울 속 나를 돌아보았을 때를 생각하면 그건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친구들은 기다려주지만, 지금 찬란한 나의 시절을 거울 속 불행한 얼굴로 살면, 공허한 마음으로 계속 살면 삶이 피폐해지고 내가 사라질 것만 같아서 걱정을 접어버렸다. 마음에 드는 옷, 가방, 신발이 있으면 구입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나에게 돈을 투자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든든해졌다. 신경 써서 차려입은 내 모습이 마치 갑옷을 입은 듯 나를 지켜주는 듯했다. 그 갑옷은 나의 자존감을 조금씩 높여주었고 자존감은 공허하고 외로운 마음을 줄어들게 만들었다. 피폐해져 가는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나는 나에게 투자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자존감을 높이는 것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으로도 꽤 효과적이었다. 사실 외관에 크게 신경 쓰고 살지도 않았고 신경 쓸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갑옷을 두른(한 껏 가꾼 나를 보고) 사람들의 반응도 전과 달랐다. “혜메다 씨 요새 뭔가 달라졌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맞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쩌면 자기 관리의 한 갈래로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과거의 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텅 빈 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면을 들여다보니, ‘달라졌다.’는 그저 외모지상주의로 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가꾸면서 자존감이 높아진 나의 행동과 모든 면을 보고 했을 말이라는 뒤늦은 생각이 들었다.
과거도 현재도 나의 선택이지만 남들보다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나는 조금 아쉬웠다. 진작 알았더라면 내가 조금 덜 아프고 덜 힘들었을 텐데 하며 말이다. 귀찮고 하찮게 느꼈던 자신에 대한 투자는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누군가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일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투자는 자존감을 높이고 사회적인 시선으로부터 인정받고(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주변 사람들도 느낀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앞서서 옷, 가방, 신발 등 외적인 것만 언급했지만 사실 그것뿐 아니라 책을 읽는다던지,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운동을 하는 등 다양한 것에 나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내면이, 신념이, 자기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공허하고 외로운 마음이 가득했었다. 비어있는 마음을 채워 불안한 생각들을 없애기 위해 여러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외관을 가꾸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을 계기로 운동이나 다른 분야까지 내면도 함께 가꾸기 위해 모든 신경이 그것들에게 쏠리게 된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채울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외면은 금방 가꾸더라도 내면을 꽉 채우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걸 자기 관리를 시작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뒤처질 수는 있지만, 조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급해하는 순간 공허함과 외로움이 밀려올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교하는 순간 자존감이 낮아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만의 길을 가고 나의 개성을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에게 투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