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속 얼핏 보이는 ‘나’
경험이 없어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크게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은 나를 옥죄고 아프게 만들었지만,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몸부림과 투자로 스스로를 가꾸며 개성 있는 ‘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베일에 싸여있던 모습도 찾아가고 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모습과 남이 보는 모습이 동일한 상태를 말한다.
‘나’를 조금 찾기 위해서 나는 많이 슬프고,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진정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찾기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일이란 모든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기 자아를 찾기 위해 사춘기를 겪듯이 어른의 모습을 찾기 위한 사춘기를 또 한 번 겪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세상이 많이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어렵다. 갑자기 내가 어른이어야 하는 사회적 자아과 아직 어린애 같은 자아의 충돌에서 중간 합의점의 행동을 찾는 것이 많이, 자주 어렵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잘못으로 혼났을 때 잘못을 인정하며 행동을 수정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나와 혼났다는 게 억울해 일하기 싫은 마음이 많이 충돌한다. 통상적으로 보았을 때 잘못을 억울해하며 일하기 싫어하면 아직 ‘어리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는 속으론 울면서 “죄송합니다”하곤 피드백을 최대한 수용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처음 일하다 혼났을 때는 사실 눈물을 머금고 하라는 대로 하며 온갖 불만을 다 표출했었다. 사회적 자아와 실질적 자아의 충돌 없이 그냥 날것의 자아였다.
지금은 조금의 합의점을 찾아 속으로 숨기곤 하지만 완벽하진 못하다.
어릴 때 생각했던 성인, 어른은 ‘~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그 틀에 맞지 않으면 ‘나잇값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어떤 행동이 적절한지, 어떤 예의를 갖춰야 하는지 많은 고민들을 가지고 있다. 나이는 어른이지만 관계마다 조의금,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한참 고민하는 어른애이다.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것일까?
수많은 생각에 휩싸여 지치면서 생각을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을 했는데, 그러고 나니 내가 가야 할 길이 조금 보이는 듯했다. 사실 생각의 80%는 불필요한 생각들이었고 불필요한 생각들이 진정한 자아 찾기와 올바른 성장에 방해가 되고 있었다. 간단명료하게 생각을 하면 그냥 내 생각대로, 신념대로 쭉 나아간다면 그게 ‘나’고 그렇게 성장한 ‘어른’인 것이다. 어른에 대한 고정관념을 덜어내 보면 나는 아직 갈피를 못 잡긴 했지만 도덕적 신념이 강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온전하게 나를 받아들이면 나=어른,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성장하고 싶어 하는 어른이자 내가 되는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불가피하게 어른이 되지만 어른이라고 해서 꼭 모든 걸 갖춰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니 그냥 사람다운 어른인 것이다. 저마다 개성이 있기 때문에 똑같을 수 없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 어른다운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었고 ‘나’를 온전히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고정관념이란 정신적 성장조차 방해하는 무서운 것이다.
방황하는 독자들에게 굳이 사회적인 시선, 고정관념에 맞추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고정관념에 나를 맞추려다 상처받고 아팠었기 때문이다. 상처받고 아프기 전에 자신을 먼저 찾으려는 노력과 행동을 하면 어지러운 세상에서 얼핏 돌파구가 보일 것이다. 미로게임을 할 때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는 더욱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뚫린 길만 찾으면 되기에 열린 길로만 따라가면 탈출이 가능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나’를 찾아가는 미로 속 머리 아픈 일들이 참 많지만 생각을 덜어내 보면 충돌하는 생각들 속에서 그저 나를 찾는 길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혼나도 내가 아직 어리다고 느껴도 괜찮다. 아직 그런 ‘나’고 아직 그런 어른이지만, 아직 미로를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 길이 엇갈리고 헷갈릴 뿐 끝까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해도 괜찮고 조금 돌아가도 좋다. 아직 더 성장할 어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