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무엇을 기대 했던가.

by 맨디

- 지난 주 한 보험사와 했던 두번의 채용 인터뷰 후 이번주 수요일 아침 전화를 한 통을 받았다. 두번의 인터뷰 모두 너무 좋은 인상을 받았고, 내가 데이터 분석가로 좋은 커리어를 만들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는 채용을 진행하려던 그 포지션은 내부 사정으로 포지션을 없애기로 했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그랬구나, 그렇게 됐구나 싶었다. 지난 달 다른 회사의 길었던 채용 과정 (화상 면접 이후 비행기를 타고 네이피어로 가서 현장 면접을 보고, 연락을 주기로 한 때보다도 몇 주를 더 끌다 결국 탈락을 통보했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그래, 뭐 다른데 계속 해봐야지.


- 취준 23주차, 지원한 회사 190여개, 총 3번의 면접 탈락. 평균치로 보면 주당 8.2개의 회사를 지원했고 대략 64번의 지원 후에 1번의 최종 면접까지 가는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지만 직접 이 취준 데이터를 한 줄씩 만들어온 입장에서는 그와는 다른 어떤 흐름과 그걸 뒤집어온 변곡점이 보인다. 그 변곡점은 모두 면접 탈락 이후에 내가 만들어냈다. 경력 부족을 이야기 했던 첫번째 회사 면접 이후, 나는 면접이 잡힌 회사의 관련 도메인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화해서 면접에 들어갔다. 고심 끝에 그 지역 사람을 뽑기로 했다는 두번째 회사의 면접 탈락 이후, 이제는 서류 합격률을 더 높여보자는 목표로 커버레터를 보강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힌 세번째 회사는 면접 이후 포지션을 없앤다는데, 이 난감한 양반, 이제는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할런지. 그래, 뭐 별수 없이 다른데 계속 해봐야지.


- 이런 날은 탈락 버프에 지원을 가열차게 하려고 해도 넣을만한 회사도 여의치 않아보인다. 링크드인에 올라온 공고는 없나 뒤져볼 요량으로 링크드인에 접속 했는데, 전 회사 사장님의 메세지가 와있었다. 오랜만에 오클랜드 왔는데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했다. 취준 초반에 데이터 분석 컨설팅 회사 (이 회사도 연락을 준다 그러고 잠수를 탔더랬다) 에 다리를 놔줬던 고마움도 있어 그러자고 했고, 약속은 일사천리로 잡혀 그날 저녁을 함께 먹었다.


- 3년만에 만난 그는 이전보다 젊어진 모습이었다. 그가 두바이에서 지내고 있다는걸 알긴 했지만, 이제는 아예 회사 경영은 매니저에게 맡기고 주로 여행을 하며 지낸다는 건 몰랐던 사실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건 경력상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그 차이가 고작 2살이라는 것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여전히 초 아침형 인간으로 새벽 4시에 조깅을 하고 오디오북을 듣는다는 말에 여전하구나 싶었다가 곧 이어 이어진 본론에서 의도가 선하다면 그 표현이 좀 거칠어도 상관없다는 식 (말하는 너야 당연히 상관없겠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일반화가 성급하다 못해 궤변으로 탈바꿈 하는 것을 들으며 기시감이 느껴지며 역시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너를 알지, 잘해주고도 말로 왕창 까먹던 너를. 그래도 자기 사람이다 싶으면 꽤 여러방면으로 도와주려는데 진심이었던 것 또한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그날 저녁 자리에서도 AI가 더 발전하면 곧 없어질 데이터 분석가라는 직업을 구직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라는 말에서는 '데이터 분석가는 AI에 대체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로 바꿔 듣고, AI에도 대체되지 않을 틈새시장에서 잘 운영되고 있는 우리 회사로 돌아와 다시 일을 해보는건 어떻냐는 말은 내가 구태여 더하고 뺄 것 없이 그대로 들어도 괜찮은 말이었지만,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 분야의 비전과 5년내 예상 연봉은 얼마나 되는지를 묻고, 그는 답했다. 그의 회사에 처음 입사하고 나서 그 분야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큰 의지 없이 지속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을 꿈꾼다며 늘 지금이 좋다고 하던 3년 전과는 달라진 내 모습에 그는 몰랐던 나의 새로운 면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대화 중 내게 했던 말은 다른 회사들은 너를 모르지만 나는 네가 열심히 일하고 똑똑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면서도 잘 알고, 잘 알면서도 또 모르고 있었다.


-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나도 모르게 마른 세수를 하며 두 손을 머리에 감쌌다. '이게 다 뭐지, 어떻게 해야하지? 데이터 분석가로 취업을 계속 해야하나 아니면 예전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친구 꾸꾸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진작 아침에 보험사에서 포지션을 없앴다는 걸 메시지로 보냈을 때 나 대신 분개해주던 친구는 저녁이 되어 전혀 다른 소식을 들고온 나를 보며 함께 혼란스러워 해줬다. 나는 꾸꾸에게 '아침에 그 면접관은 난 계속 하면 좋은 데이터 분석가가 될 것 같다고 했던 그 피드백이랑 방금 사장이 말했던 데이터 분석가는 없어질거야 라는 말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아. 어느 시그널을 따라가야 할까?' 그랬을 때 꾸꾸의 말은 '나는 사실 그 시그널들이 같은 말을 하고 있는걸로 보여. 아침에는 데이터 분석가 포지션이 사라졌다, 저녁에는 데이터 분석가가 사라질거야.'


- 이제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꼭 내가 고집해오던 길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길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능성 없는 무언가를 고집하며 괴로워하는 것보다 산뜻한 새 출발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다음 날 아침 눈을 때, 그간 목표로 해오던 것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마치 뭔가를 하다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돌아서는 듯한 찝찝함으로 다가왔다. 나아가 이게 나에게 떳떳할 수 있는 선택인가? 이게 맞나? 라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 모든 생각이 우스워졌다.


하루 아침에 많은 걸 다 뒤집어 버리는 일을 종종 하는 인생을 두고 나는 왜 내 행동의 일관성에 집착하는 건지. 다른 선택이 더 좋을지도 모르니 다 열어두고 생각해보자는 내 의식의 주문보다 저 밑에서 올라오는 찝찝함, 불편한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혹시 내 무의식은 아직도 어린 시절 봤던 디즈니 영화 속 주인공들의 어려움을 뚫고 끝내 목표를 이뤄내는 서사에 익숙해져있는 탓일까. 그래서 가수를 꿈꾸던 주인공이 여러번의 오디션 낙방 끝에 갑자기 농사를 짓는 모습으로 끝나는 영화 결말에 아연실색한 아이의 마음으로 지금 이 상황을 나는 보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알지 않는가. 내가 원하는 길이 꼭 내 길이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을. 그냥 내 것이 아니었나 보다 생각하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또 앞으로 나아간다면 또 그 속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 누군가 인생은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 그랬던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인생의 변덕스러운 얼굴을 보며 그 인생과 함께 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인생의 변덕에 내가 익숙해져야겠지. 인생이 내게 익숙해지지는 않을테니. 그간 나는 인생이 부리는 변덕을 알고 있었음에도 최근 몇년은 또 내가 기대하고, 하는 만큼 인생이 순순히 그 보상을 해줄 것이라는 낙관적 시각을 가졌던 모양이다. 인생은 그렇게 내가 바라보고, 함께갈 무언가는 아닌 것 같다. 어떤 변덕 속에서도 그 길이 끊기고 다른 길로 나아가야 하는 순간 조차도 가볍고 즐거울 수 있는 태도를 나는 늘 유지할 수 있다면 인생이 순순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keyword
이전 22화12년전 오늘, 내게 남겨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