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수업과 자율학습이 그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초창기 프로야구의 성적에 대한 언쟁이 나머지였다. 가끔 실업계 여고생과의 로맨스를 더러운 나름의 미사여구로 분탕질한 무용담을 떠벌리고 있는 녀석과 그를 에워싼 채 니코틴에 절어 노랗게 물들어 버린 손가락으로 볼펜을 힘차게 돌리며 웃음을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무리의 소란스러움을 제외하면 대체로 재미없는 일로 가득했다. 친구 간의 다툼이 가끔씩 있었지만 나름 영악하여 물리적 폭력으로 진행되기 전에 가벼운 언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항상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다.
50분간의 수업이 끝나고 맞이하는 10분간의 쉬는 시간은 학생들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소중한 10분의 가치를 알기에 모두들 자신들만의 다양한 방법으로 주어진 자유를 누리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날도 나의 소중한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을 때였다.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다. 쉬는 시간 그날 당번이었던 한 녀석이 칠판을 닦은 분필 지우개로 내 머리를 찍어 하얗게 만들었다. 당시 두발 자율화로 제법 긴 검은 머리를 하얀 분필가루로 뒤덮은 후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뒤뚱거리며 도망가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반사적으로 쫓아갔지만 좁은 복도 모퉁이를 돌아 이미 멀리 도망간 다음이었고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온 후에야 자기 자리에 앉은 그 비겁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 동안 수업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주기 싫어 한겨울에도 부엌 바닥에 쪼그려 머리를 감고 왔다. 혹 생각지 못한 악취로 친구들에게 따돌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숨길 수 없었던 가난의 냄새가 싫었기에 나름 노력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머리에 분필가루를 한가득 뿌리고 도망간 이유가 뭘까? 책상 위에는 내 바로 뒷자리에 앉은 녀석의 얼굴이 가득했고 책장을 넘기면 녀석의 까만 웃음이 들리는 것만 같아 미칠 것만 같았다.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점점 커져 갔고 곧 폭발할 것 같은 상태에 이르자 책상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수업을 종료하는 벨이 울리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정확하게 녀석의 왼쪽 눈을 향했고 녀석의 눈에는 붉은 피가 흘렀다. 그 이후 일들은 잘 기억나질 않는다. 평소 덩치만 믿고 나에게 건방을 떨던 옆자리 짝은 겁을 잔뜩 먹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눈길을 피했다. 수업을 마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교사는 서둘러 교무실로 향했다. 눈에서 흘러나오는 핏줄기에 놀란 친구들이 황급히 녀석을 보건실로 데리고 갔고 조금 뒤 담임이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독사라고 불렸던 표독스러웠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손은 와 그렇노?”
말없이 오른손 주먹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주먹을 타고 흘러내린 크고 작은 검붉은 피 덩이로 흥건해진 교실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분노에 차 휘두른 주먹에 녀석의 안경이 깨어지며 눈과 주먹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
“너 이 새끼 뭐야?”
“...”
“너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아니 기억에 남아있질 않다. 분명 스펙터클한 스토리가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기억을 할 수가 없다. 기억에 남지 않은 것인지 의도적으로 지워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당일 담임 독사와의 일은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다.
끔찍한 사고가 있었던 바로 그날 학교로 호출된 아버지와 함께 하얀 분필가루 검은 요정의 집을 방문했다. 죽기보다 싫었지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녀석의 부모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당장은 용서를 빌고 사죄를 받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청 공무원이었던 녀석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감당하지 못할 큰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의 모호함에 더욱 설움이 북받쳐 왔다. 한참을 소리 없는 울음을 흘렸던 것 같다.
“미안합니다. 치료비는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이소.”
“각막은 다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행이지예? 그래도 이게 뭡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교육 잘 시키겠습니다.”
“쟈 눈을 보니 참 고집 있고 못됐게 생겼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이소.”
일방적인 질타와 멸시가 끝나갈 무렵 녀석이 방으로 들어왔다. 하얀 붕대로 드레싱을 한 한쪽 눈 위에는 새로 맞춘 검은 뿔테 안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겠다. 서로 두 손을 잡고 고해성사를 하는 신자와 신부처럼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안하다.”
“괜찮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고 힘들었다. 녀석의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아버지는 나와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늦은 오후 따가운 뙤약볕 사이를 멀찌감치 떨어져 걸을 때도 예상치 못한 사고 때문인지 늘어진 배차 시간으로 오랜 기다림 끝에 힘들게 오른 버스에서도 오로지 정면을 응시한 채 한치의 미동도 없이 정면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때 늦은 충격으로 모든 사고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내 머릿속은 커다란 검은색 뿔테 안경과 손가락 사이를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는 선홍빛 핏줄기 그리고 화면 중앙 작은 점에서 점점 클로즈업되어 결국엔 화면을 가득 채워버린 독사 같은 두 눈이 뒤섞여 계속 맴돌고 있었다. 머리가 점점 차가워졌다. 두뇌로 공급되던 혈액이 모두 막혀 콩고물 떨어진 인절미 빛 얼굴로 변해있을 거라는 느낌이 왔다. 금방이라도 게워낼 것 같은 헛구역질이 밀려왔다. 말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아버지는 하염없이 버스 정면 큰 유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미련한 행동에 대한 괴로움으로 밤새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아니 지금의 답답함을 털어놓고 마음껏 울 수 있는 대상이 없어 더욱 괴로웠다. 오후 내내 머리에 겉도는 체증과 어지러움은 부족한 수면으로 더욱 위세가 강해졌다. 슬픔으로 가득했던 초저녁 소란스러움도 끝 모를 한숨을 몰아쉬던 어머니의 짧은 원망도 멎어버린 이른 아침. 집안 식구 모두가 서로의 위치와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다. 적막으로 가득한 공기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일찍 학교로 향했다.
교실에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다른 녀석들은 다양한 이유로 교무실로 호출을 하더니 왜 난 교무실로 호출을 하지 않는지 담임이 원만스럽기도 했다. 결국 교실문을 열고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커다란 교실에는 일찍 등교한 녀석들이 열심히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평온한 자세로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후 등교한 녀석들도 말없이 자기 자리에 앉아 열심히 문제집을 풀거나 교과서를 읽었다. 뜻하지 않게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들도 짧은 미소를 보인 후 묵묵히 자신의 일에 열심이었다. 어제 나와 손을 잡고 서로를 용서했던 친구는 오늘 등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늦은 저녁이 되었다.
“선생님 저 자퇴하겠습니다.”
밤새 오랜 고통 끝에 내린 결론을 담임에게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퇴학보다는 자퇴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헤쳐 나가는데 용이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뭐?”
“지금 일을 이렇게 벌려 놓고 자퇴하겠다고?”
“뭐 이런 새끼가 있어?”
“...”
담임은 교실 뒤편 귀퉁이에 질서 없이 엉켜있는 밀대에서 자루를 뽑아 나에게 다가왔다.
“엎드려!”
무자비한 매질이 시작되었다. 마지못해 칠판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엉덩이를 향해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 매질은 반항기 청소년의 꿋꿋하게 견디던 자존심이 교실 바닥으로 완벽하게 무너지고 나서야 멈추었다.
“집에 가라!”
“...”
그날 이후 부모님께 엉덩이와 허벅지를 보여준 적이 없다. 집에서 바지를 벗고 작은 손거울로 확인한 엉덩이와 허벅지는 살점이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고통을 참아가며 나름 오랜 기간 혼자 치료를 해야 했다. 삼일이 지나자 피가 멈췄고, 한 달이 지나 시퍼렇게 자리 잡았던 녹색의 굵은 선들이 사라졌다. 시간의 흐름은 육체적 고통과 아픔을 치유해 주었고 마음의 상처도 죄책감도 희석해 주었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나의 과격한 행동에 대한 학교의 처벌은 그걸로 끝이었다.
몇 개월 후 점심 무렵 갑작스럽게 낯익은 시청 공무원이 집을 방문했다. 아마도 치료비 문제인 것 같았다. 난 도망치듯 아스팔트 건너 풀숲으로 피했다. 방문 목적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고 문제는 과연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 있을까 하는 걱정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수개월 만에 느껴보는 갑작스러운 어지러움과 구역질이 올라왔다. 가쁜 숨을 쉬며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눈치 없이 힘차게 뛰어대는 심장과 팔다리의 떨림은 통제하기가 힘들었다. 제법 시간이 흐르고 감청색 정장 차림을 한 낭패한 얼굴의 시청 공무원을 나뭇잎 사이로 볼 수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에 당황하여 이른 초여름 날씨에 손수건으로 짜증을 닦아내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듯 사나운 발걸음을 옮겼다. 정거장 아닌 도로 한 복판에 막무가내로 버스를 세워 타고 거칠게 떠나버렸다. 아직도 그날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아버지의 굳은 얼굴과 어머니의 눈물을 통해 힘겨운 시기가 올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