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시골의 여름 하루는 조용하기만 했다. 강렬한 태양 빛에 그을린 까만 머리끝에 끊어질 듯 붙여진 검은색과 초록빛이 마아블링 된 가슴, 그 연결 부위 빈 공간을 가득 메운 우윳색 울음판을 파르르 떨며 거세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제외하면 세상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지평선을 따라 달려오는 풀 비릿한 바람은 대지를 식혀 버릴 듯한 기세로 불어오지만 이미 푹 젖어버려 온몸에 축축함을 더해줄 뿐이다. 김해로 전학 온 후 4번째 맞게 되는 아직 익숙하지 못한 여름은 고3이라는 막다른 골목길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허무함에 한여름 뙤약볕에 축 늘어진 호박잎처럼 생기를 잃어버린 계절이었다.
장남이라는 태생적 장점으로 식구들의 대접을 받는 편이었지만 밥값은 해야 했다. 여름이면 음습한 눅눅함에 악취가 배가되는 닭장으로 사료를 옮기는 일은 암묵적인 나의 일과 중 하나였다. 힘겹게 20kg짜리 사료 포대를 들고 닭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늘 시선은 닭장 너머를 향했다. 하루에 두 번씩 면접해야 하는 대상이었지만 갑작스런 인간의 등장은 얼기설기 주어 온 판자를 덧댄 낡은 집의 주인들에겐 언제나 소란스러운 행사였다. 오늘도 변함없이 뿌연 먼지와 함께 그들의 몸에서 이탈된 지 오래되어 제 빛을 잃어버린 솜털들을 허공에 날리며 격하게 반응했다. 게 중에는 커다란 삼지창 모양의 검붉은 색 닭벼슬과 털 없는 조그마한 얼굴에 남겨진 다양한 모양의 상처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하는 녀석이 있었다. 이 구역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듯 위협적인 날갯짓과 특유의 괴성으로 자신의 몸집보다 몇 배나 큰 인간을 향해 강력한 도발을 일삼는 놈이었다. 방문객의 입장에서는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는 녀석의 도발은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도발을 감행하는 존재가 무서운 게 아니라 그들의 생존이 곧 나의 생존과 직결되었기에 무례한 행동마저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그들에게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존재이기에 조용히 그들의 요구에 따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다. 긴 세월에 헤어져 곧 찢어질 것 같은 그믈에 몸을 칭칭 감겨버린 작은 쪽문을 허리를 쪼그려서 나서면 비탈길 아래로 새까맣게 반짝이는 국도가 눈에 들어온다. 들고 나온 바구니엔 일출이라는 멋진 별명을 가진 학생주임 교사 머리모양의 제법 건실한 달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모의 사랑을 가득 담아 태어났지만 타고난 환경의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인간도 그리고 달걀도...
지금의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을 방법은 판잣집 너머 국도를 달리는 빨간 버스를 타고 도망가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일까? 제법 윤리적 레지스탕스 같은 생각을 했다며 스스로를 위안한 후 또 다른 무허가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이”
누군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고3 담임이었다. 두꺼비처럼 튀어나온 커다란 눈, 얼굴 한가운데 자리 잡은 엄지 손가락보다 두꺼운 송충이 모양의 눈썹, 축 쳐진 양볼 사이에 끼어 옆으로 자라지 못하고 아래로 축 늘어져 버린 순대 빛 입술, 쌀가마니 같은 커다란 몸통에 불뚝 튀어나온 아랫배와 명품의 이름을 잃어버린 검은색 허리띠의 주인이 학년 초부터 군 단위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아이들의 가정을 방문하기 위해 장만한 80CC 오토바이를 끌고 좁고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뭐 하고 있냐?”
“닭 사료 주고 있는데요.”
“부모님은?”
“집에요.”
“집이 어딘데?”
“저기요.”
“그래? 가보자!”
그가 우리 집을 찾아온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3월이 시작한 무렵부터 교실에는 그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야. 어제 우리 집에 놀부 왔다.”
“와?”
“와긴. 대학 진학 관련 상담 핑계로 돈 받으러 왔지.”
“추잡기는....”
공립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이었다. 박봉이라고는 하지만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에 그것도 마을에서 벗어나 자리 잡은 산 중턱 외딴 무허가 주택에 교육 공무원이 방문을 했다. 전기가 들어오질 않아 오토바이를 타고 오느라 한여름 아스팔트 열기에 덥혀진 머리와 가슴을 시원하게 식혀 줄 냉수를 대접할 수 도 없고, 큰 머리와 존재를 가늠키 어려운 짧은 목, 비엔나소시지를 연상케 하는 두툼한 팔, 오랫동안 팔리지 않아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부풀 대로 부풀어 버린 어묵 같은 손, 그리고 그 끝에 아르곤 용접으로 결코 떨어질 것 같지 않을 듯 꼭 쥐어진 부채를 대신할 선풍기도 없는 집에 그 지역 유일한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은 국가 공무원이 갑작스럽게 방문을 했다.
이 지역으로 전학하기 전 중학교 2학년 담임이 오버랩되었다. 찢어질 듯 가난한 형편에 대도시에서 군 단위 산골짜기로 전학 가는 학부모를 학교로 불렀다. 교무실에서 학부모 면담을 마치고 열쇠를 챙겨 중앙 현관이 아닌 굳이 잠겨있는 동쪽 현관으로 어머니를 데리고 갔던 담임. 복도 끝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눈치 없이 어머니를 부르며 반대쪽 출입구를 향해 달려가던 나에게 오지 말라며 손짓하던 담임. 그리고 그날 저녁 어머니가 나에게 들려주었던 촌지 이야기가 지금 다시 생생하게 들려왔다.
“선생님, 어쩐 일이십니까?”
자식만큼이나 아끼는 소여물을 주시던 아버지는 특유의 매력적인 눈웃음을 보이며 달려 나왔다. 난 공무원들에게 늘 저자세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다. 전 재산 200만 원을 들고 산골짜기로 들어와 살기 위해 힘겹게 만들었던 집은 단순한 거주지 이상의 의미였다. 터세를 부리던 마을 주민 누군가의 신고로 출동한 그들은 막무가내로 건물을 허물려고 했다. 단속반들의 만행만큼이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이 우리의 보금자리를 망치로 두드려 깰 때도 그저 아무 말없이 지켜보던 아버지였다. 어머니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울부짖을 때도, 나름 혈기 왕성했던 내가 나잇살이나 먹은 그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을 때도, 그들이 버릇없다며 나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을 때도 말없이 그들에게 협조하던 아버지였다. 당시 최선의 인생목표는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늘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버지. 제가 소여물 계속 줄까요.”
“그래라. 너무 많이 주지는 말고.“
대답을 하면서도 아버지의 시선은 오늘 처음 방문한 교육 공무원을 향하고 있었다.
“어서 들어오이소.”
집에 어머니는 없었다. 어려운 가정에 도움이라도 될까 마을에 허드레 일을 하러 가신 참이었다. 냉장고 속 시원한 물도, 힘차게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도 없는 곳으로, 늦은 아침부터 데워진 열기로 가득 한 장소로 들어가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건물로 들어서는 순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상상하고도 남았을 텐데 굳이 들어가는 저 교육 공무원은 뭐지? 그들이 은밀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긴긴 시간 동안 데워진 열기 때문인지 경상도 남자들 특유의 부족한 말주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대화는 그리 길지 못했다. 축 늘어진 볼 사이에 끼워진 순대가 승천하는 모습을 통해 은밀히 이루어진 회동의 내용을 추측할 수는 있었다. 다만 놀라웠던 건 갑작스럽게 지출이 가능한 현금이 집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분명 어느 정도의 비상금은 있었을 것이다. 거금을 빌려 구입 한 소가 상하게 되면 큰 일이었기에 먹고사는 데에는 차마 사용할 수 없었던 비상금이 있었을 것이다. 설마 그 비상금을 털어 준 것인가?
“길이 위험합니다. 조심히 살펴 가시소.”
“네, 아버님도 들어 가이소.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더.”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표정이었다. 세상에 웃음을 보이다니...
“공부 열심히 하고! 학교에서 보자”
세상에 나에게 인사를 한다. 처음이다. 이처럼 가까운 곳에서 얼굴을 쳐다본 건 처음이다. 친근감 때문인지 시내 외딴곳 정비소 구석에 쌓아 둔 타이어 더미 같은 그의 몸에서 알 수 없는 향긋한 냄새도 났다.
“네, 알겠습니다.”
냄새에 홀렸는지 아니면 처음 접해 본 웃음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나긋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가 시내 대리점에서 전액 현금으로 구입한 오토바이는 주인의 덩치에 눌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울림소리와 탑승자의 무게만큼의 깊은 흔적을 남기며 떠났다. 오솔길에 남겨진 메우기 힘든 바퀴의 흔적과 흙먼지를 바라보던 아버지는 말없이 큰방으로 향했다. 소 값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잘것없는 철골로 만들어진 비닐 우사였지만 아버지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피곤한 몸에도 웃음으로 채웠던 유일한 장소를 뒤로한 채 큰방에 누웠다. 소의 엉긴 털을 쓸어주고, 먹이통을 청소하고, 잠자리를 돌보아 줘야 하는데 모든 걸 미룬 채 자리에 누웠다. 3년 전 단속을 나온 건축계 공무원들과의 만남 이후 처음이었다.
“니 교대 가라! 그 길밖에 없단다. 돈도 적게 들고 장학금도 받을 수 있고.”
평소답지 않게 짜증이 묻어나는 듯한 낮은 목소리였다. 그래도 장남이라고 아버지는 늘 자랑스럽게 대하던 자식이었다.
“군대 않가도 된단다. 군대 가지 않으면 돈도 빨리 벌 수 있고, 교대 가라”
“알았습니다.”
더 이상 공기를 담을 힘이 없는 낡은 풍선에서 천천히 스며 나오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젠 거스를 수 없는 일이니 더 이상 토 달지 말고 따르라는 강압이 묻어있었다. 그렇게 나의 미래는 결정되었다. 그 상황에선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19살 소년이 최후의 보루를 이제 막 잃어버려 낙담하고 있는 부모의 말을 거역할 수 있을까?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군역의 혜택을 볼 수 있고 대체 복무 기간 동안 사회에 헌신하며 경제적 이익도 챙길 수 있어 부모에게 도움을 주는 교대엘 가야만 한다.
아버지의 소중한 소도 어미의 고통의 흔적이 하얗게 묻은 둥근 달걀도... 그리고 교대에 진학해야 하는 나도...
인생은 계인지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