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일지

by Blissful life

1980년대 내가 다니던 대학 탁구 동아리에는 동아리 구성원들이 사소한 것들을 기록할 수 있는 동아리 일지가 있었다.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신의 하루의 발자취를 남기기도 하고 일주일 후면 자신이 뿌려놓은 어설픈 철학적 사고의 기록물을 보며 밤새 이불을 걷어찰 어설픈 취기가 흘려져 있기도 했다.


당시 동아리 구성원들 중 같은 기수 간에는 거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별명을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 역시 처음엔 강아지로 불리다 어느 순간 개가 되어 버렸고, 눈이 커 개구리가 되어버린 친구도 있었다. 그 외 너구리, 얍삽이, 검은 눈꺼풀 등 다양한 사물과 현상들이 이름을 대신했다.

동아리 일지에는 그날 자신의 흔적을 별명으로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쓰인 글에 대한 반응 역시 별명으로 남겼다. 당시 개구리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는 00이었는데 큼지막한 눈에 커다란 코, 두꺼운 입술을 가진 남학생이었다. 자칭 얼굴 개인기는 훌륭하나 조직력이 부족하다고 자랑하고 다니던 친구였다. 동급생들 중 가장 다사다난한 학교 삶을 누리고 있던 친구이기도 했다. 친구를 배려할 줄 알고 화려한 유머 감각으로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00이는 처음으로 나의 별명을 강아지에서 개로 바꾼 나쁜 친구다. 하지만 항상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항상 즐거움을 주는 친구이기는 했다.


동아리 일지에 남겨진 그 친구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오늘 00이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만났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사랑하는 여친과 데이트를 했다.

아쉬운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흘러간다.

헤어질 시간 좁은 뒷골목에서 00이는 그녀에게 달콤한 키스를 했다.

그녀는 황홀경에 빠져 달콤한 목소리로 00에게 말했다.


"개굴개굴"



물론 이 글을 쓴 이는 개라고 불리기 싫었던 강아지였다.

30년이 지나 인생의 지난 자취를 생각하게 되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당시의 상황 속에 빠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다. 몸에 이어 마음도 늙어 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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