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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May 09. 2024

별 일 없이 산다.

기분 관리는 능력이고, 실력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주로 유명인의 자서전이나 에세이 종류를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가장 기억나는 나의 첫 책은 ‘오체불만족’과 ‘오프라 윈프리’ 이야기였다. 그때의 나에게 이 두 책은 아주 새롭고 꽤나 큰 설렘이었다. 어려운 역경을 잘 이겨내고 이렇게 마음 부자가 되어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짜잔. 하는 내용의 책들은 겪어보지 못한 것이 더 많은 미지의 세계(어른들의 세상, 진짜 사회) 내가 만나게 될 꿈같은 따뜻한 사회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준 책이었다.


외동으로 태어나 엄마가 재혼하기 전까지는 혼자 조부모 밑에 자랐기에 책은 내게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최대치였다. TV나 영상도 많이 접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책은 상상이 파고들 수 있는 틈이 많았다. 시집을 좋아하는 엄마의 영향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수두룩한 시집을 이해가 될 때까지 읽었던 것도 기억난다.


기억나는 것 중에 헤르만 헤세의 ‘흰 구름’이라는 시가 있다.


아, 보라. 잊어버린 아름다운 노래의
나직한 멜로디처럼 구름은 다시
푸른 하늘 멀리로 떠간다.

긴 여로에서
방랑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구름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해나 바다나 바람과 같은 하얀 것,
정처 없는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
고향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누이들이며 천사이기 때문에.


직관적인 시선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던 나이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과 단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저 시인의 의도들이 공감이 간다는 게 참 신기했다. 이렇듯 책은 나만의 모양으로 내가 맞이할 세계를 오밀조밀 만들어가게 해주는 과정이 즐거웠고, 그것은 마치 연극이 시작될 때 막이 열리기 직전의 발을 동동거리는 설렘의 모양새와 같았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성인이 되어 직장인이 된다. 많은 사람들과 일에 치여 내가 상상 속에만 그리던 세계는 차츰 잊혀 갔다. 그 시절 본 책들은 대부분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그린 세상을 없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건 나 자신이라는 생각말이다.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별 일 없이 살아간다. 평탄하고 비슷하게 비슷한 루틴으로 살아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만나는 사람 모두에겐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색깔이 있다. 옅고, 진하고, 밝고, 어두운. 그날그날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하는 과정도 알 수 있다.


대부분 우리는 매일 비슷한 루틴으로 살아가긴 하지만, 서로의 기운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기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세상을 대하면 돌아오는 기운도 다정하고, 나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면 돌아오는 기운은 썩 좋지 않다는 진리도 알고 있지만, 나는 그다지 즐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우울하지도 않은 중간 어디쯤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왕 사람들이랑 부대끼며 살아가는 거, 조금만 더 밝고 반짝이는 기운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다가올 세상을 기대하며 오밀조밀 세상을 만들어 나갔던 어릴 적 나처럼 말이다. 기껏해야 이제 3N 년 살아 본 인생에 앞으로의 날들에 설레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오늘 하루, 이틀, 일주일, 평생을 좌지우지하는 기분은 결국 우리의 전부다. 기분 관리도 능력이고, 실력이다. 내가 어떤 기운을 풍기며 무슨 색깔로 앉아 있는지는 자신의 선택이고, 결정 권한도 모두 나에게 있다.


혹시 지금 무표정으로 필자의 글을 읽고 있는 그대도 나의 생각에 조금 동의한다면 거울을 보며 광대와 입꼬리를 한껏 올려보자. 설레는 내일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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