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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랑 Jun 15. 2024

볕뉘


볕뉘, 이름과 뜻이 참 예쁘다.


이름에 뜻이 매겨져 있다. 볕이 누워 볕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을 말한다. 나무 울창한 숲에서 종종 볕뉘를 만났다. 해가 옆에서 비칠 때, 그러니까 오전이나 오후에 볕뉘가 자주 나타난다. 어쩌면 햇볕과의 숨바꼭질이다.


볕뉘 한 줌 찰랑대는

허름한 오후는 신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으나

바다로 보러 가면 속이 풀렸다

불면의 밤을 팔아

봄을 넘길 자신이 생겼다

성장판을 다시 열고 거인의 키로

등댓불을 켜는 꿈을 꾸었다


‘정희성 - 바다 마실’ 시의 한 구절이다. 요즘 나는 무척이나 여유가 넘치는 마음으로 살아가나보다, 오늘은 햇볕과의 숨바꼭질을 했다. 사진 찍는걸 참 좋아했다. 사연이 깊어 사진과의 연은 이루지 못했으나 사진기를 들고 자연으로 나가면 자연의 찰나들을 만나게 된다. 애써 찾아간 공간이, 공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과 맞아 떨어질 때의 쾌감이란 느껴보지 못한 자는 공감하기 힘들겠지.


해가 진 직후 하늘이 가장 예쁜 순간이 열린다. 해는 없지만, 하늘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남아 있는 시간. 길어야 20분이 안 넘는, 낮과 밤이 교대하는 시간의 하늘 ‘이내’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뜻으로, 낮도 밤도 아닌 애매모호한 경계의 시간, ‘개와 늑대의 시간 (l‘heure entre chien et loup)’ 물비늘이라고도 하며,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 ‘윤슬’


참 예쁜 이름들이지. 여태 나는 무얼 그리 바쁘고 아프게 살았을까. 내가 예뻐하는 나의 세상엔 잠시 여유만 주면 이렇게 세상이 내게 선물해주는게 많은데..


잠에서 깨어 멍하니 천정을 바라볼때면 커튼 틈 사이로 햇빛은 안간힘을 쓰고 있던 날들이 생각난다. 조금이라도 뒤척거려 커튼을 건들때, 바람이 살살 불어와 커튼을 건들때 빛 틈 사이로 먼지들이 유영하듯 부유할 때. 나는 왜 그리 한숨만 쉬고 살았을까. 나와, 멈춘 시간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고요와 적막의 시간들은 이제 흘려보내고 볕뉘의 낮도 윤슬의 밤도 느끼며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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