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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랑 Sep 25. 2024

청소부도 좋은 직업입니다. -1

이사입주청소업 - 첫 현장 이야기


매일 쓰던 글쓰기를 잠시 중단하고 한동안 나의 직업 정체성에 대해 생각에 빠져 지냈다. 그중 하나는 직종을 바꿨다는 것. 15년 가까이 시각디자인 업을 이어가면서 나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내가 지금 필요로 하는 직업은 무엇일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직종을 바꾸어도 될까? 직업이 상관이 있을까? 등 직업에 대한 터닝포인트를 가지게 된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고심이 생각 후 청소 창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소자본 창업이라 청년들이 많이 도전하고 많이 그만두기도 한다는 직종. 부동산이 무너지면서 레드오션 직종이라고들 한다.


아무도 나를 뜯어말리지 못하도록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탄탄하게 준비 후 옆지기의 응원을 얻어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마케팅을 준비하고 자료들을 준비하며 스텝을 나아간 지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이 일을 해야만 했던 이유.

1. 사람들과 어울려 사교를 해야 하는 일이 아닐 것

2. 품위유지비가 들어가는 직업이 아닐 것.

3. 타지에서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기에 시간적 제약이 없을 것

4. 유동적인 직종 일 것.

5. 소자본의 창업이 가능할 것

6. 내가 대표이자 직원인 프리랜서


정말 나에게 딱이다! 내가 찾던 직종이었다.


시동생 밑에서 일을 배우고 나 홀로 정식으로 일한 기간은 정확히 9/10일부터이다. 보름 만에 나는 4개의 현장에서 이사청소를 하고 100만 원 남짓 벌었다.


15일동안 4일 일하고 번 돈이었다. 이렇게 적게 일하고 알바만큼 벌다니 메리트 있어 보였지만,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극심한 근육통과 더위를 먹었고, 하루 일하고는 3일을 뻗어 누웠다. 이 업계에서 내가 해본 건 고작 마케팅 하나뿐이라 첫 현장 일을 따내고 현장에 도착하는 것까지만 가장 자신이 있던 것이었다.


첫 집 이사청소는 35년 된 구축아파트에 장기간 공실로 비워져 곰팡이와 바퀴벌레와의 싸움을 7시간 동안 한 후 끝날 수 있었다. 결과는 수고했다는 인사와 견적금액에서 1만 원이 더 입금되었고, 뿌듯함과 힘듦과 녹초와 근육통 그리고 다음날 민원으로 이어졌다. 하하.. 허허..


나 혼자 가게 된 첫 현장이었고 첫 민원이었다. 민원 해결 전화를 드리는 내내 조마조마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마음을 조리 다 못해 심장이 곶감처럼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고객의 요구는 이사청소를 처음 맡겨보는데 청소 범위를 확인하지 않고는 금액의 일부를 돌려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욕조를 이렇게 만들어줬는데, 민원이라니.



환풍기를 이렇게 해줬는데도 민원이라니!


너무 속상하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디자이너로 15년 짬밥인 나는 내 디자인에 대해 늘 고객들이 감탄만 해줬었는데, 이 청소업은 결과물이 디자인 일처럼 아름답거나 멋져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100% 서비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민원 하나에 물러설 수 없었다. 나의 속상한 마음을 챙기기보단 맘에 들어하지 않는 고객의 요구 해결이 먼저였다. 환불은 어렵지만, 대신 불만족스러우신 부분에 대해 A/S를 해드리겠다 하고 환불이 어려운 이유와 작은 언쟁 후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재능이 아닌 몸을 써서 일하는 일은 이렇구나. 소위 ‘현타’가 오는 순간이었다.


청소 업은 참 주관적이다.

고객의 만족이 어디까지일지도 모르고, 청소 범위/영역을 아무리 안내해도 고객은 더 요구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고객일 때를 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된 순간이었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옛말 하나 틀린 말이 없다.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분이 상하거나 언짢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 첫 현장에서 환불을 요구하던 그 고객에게 오히려 감사하며 나는 다음 현장에 놓치는 부분 없이, 민원이 들어올 곳이 없이 청소를 하게 되었다. 더 꼼꼼하게 더 세심하게.


오히려 좋다는 원영적 사고가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현장도, 그다음 현장도 나는 계속 레벨업을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도전하는 과정에 있어 엄청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다. 20년 가까이 가진 직종을 바꾼다는 건 가장 큰 터닝포인트였던 만큼 나는 다시 또 이 길을 달릴 것이다.


달리다가 만난 기회엔 환대하며 두 팔 벌려 맞아줄 것이고, 달리다가 넘어지는 구간에서는 쉬어갈 것이다.


모든 폭풍은 방해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폭풍은 오히려 길을 닦아주기 위해 오는 것이라는 말처럼 내가 더 강해지고 단단해지는 멋진 직업으로 여기며 나아갈 것이다.




청소업을 고민하고 시작하면서 나의 하루하루는 또 바뀌어 간다. 건강한 방향으로 말이다.


인생의 순리에 조급해하지 않고, 오늘 할 수 있는 일들만 하며, 매일 다른 업무를 해야 하지만 희열을 느끼고 나의 한계를 의심하지 않으며, 나를 믿고 나아간다. 회사에서 정해진 월급에 정해진 틀 안에서 버는 1,000원보다 내가 온전히 노력해서 버는 1,000원이 더 값지고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새삼 내 자신이 너무 멋있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매일 나를 이기는 싸움에서 나는 운동 시간도 1시간 더 늘렸고, 건강하고 오래 하기 위해 건강한 식단들로 나를 챙김까지 하고 있다는 건.


청소부도 정말 멋진 직업이 아닌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아닌 이 레드오션에서 나는 나만의 색깔로 나만의 신념으로 또 나의 한계를 넘어 걸어가려 한다.


글을 만나 1년 2년을 쌓아 완전히 바뀐 나의 새로운 인생처럼 나의 서른의 중반에서 새로 시작한 직업은 1년 후, 2년 후 나를 또 어떻게 성장시킬지 기대가 된다.


글 쓰는 청소부.

크.. 낭만 가득한 타이틀 이구만!


나의 역량을 나의 능력을 나의 한계를 레벨업 시켜보자. 혹시 아는가 - 엄마의 응원처럼 이왕 시작한 거 청소계의 달인이 되어 돈방석에 앉은 서민갑부가 되어있을지 말이다. 하하하!


혹여나 이 글을 읽고 계신 같은 동종업계 선배님들이 계시다면 모두 화이팅 합시다! 건강 먼저 꼭 챙기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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