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소중한 추억
반평생을 받쳤던 어린이집을 정리며 잊은 줄 알았던 아버지의 숨결을 만나다.
휴~~~ 이건 언젠가는 유용하게 사용할 곳이 꼭 있을 것 같다. 또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것도 같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고민하다 다시 제자리에 놓는다. 몇 날 며칠을 넣었다. 꺼냈다. 고민만 하고 버리지 못한다. 결정장애, 아니면 저장 강박인가? 자신을 자책도 해본다. 하지만 간단히 직장의 정리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인생의 반을 정리하는 것이다. 삼십 대에 어린이집을 개원해서 육십 대에 어린이집을 폐원하고 정리하고 있다. 내 청춘을 바쳤다. 내 청춘의 추억을 정리하는 것이다.
천천히 지난 삶을 하나씩 꺼내어 음미하며 추억을 정리한다. 책상 서랍 깊숙 이서 색 바랜 낡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개원 초의 오래된 아이들 사진이 상자 속에 가지런히 잠자고 있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꺼내 보았다. 생각을 더듬어 보니 아이들의 이름과 그와의 추억이 모두 생생하게 떠오른다. 근 삼십 살 쯤의 성인이 되어있을 아이들이다. 얼굴은 상상으로도 알 수가 없다.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자랐는지 보고 싶고 궁금하다. 내 손을 거쳐 간 아이들 모두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주길 늘 기도 했는데… 한 아이 한 아이 아이들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사진의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다시 깨끗한 상자에 가지런히 옮겨 담았다. 한 십 년쯤 뒤에 또다시 꺼내 보자
이번에는 책장 책꽂이의 파일들을 하나씩 꺼냈다. 맨 위쪽 책꽂이 깊숙이 자리 잡은 두꺼운 파일을 꺼냈다. 거기에는 내가 낮에 일하고 밤에 아파트 독서실에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며 취득했던 사회복지사 자격증 1, 2급이 나란히 꽂혀있고. 아이들과 즐겁게 놀며 따둔 종이접기 자격증, 아동극 지도사 자격증, 동화구연 자격증 등 각종 자격증과 연합의 개근상에 공로상에 구 의장 구청장상 시장상 또한 탁구 대회 상장도 여러 장 꽂혀있다. 다 내가 이룬 것이다. 흐뭇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뒷장에 누런 종이 한 장이 눈에 띈다. 그간 찾다 찾다 포기한 아버지의 한시다. 아버지께서 손수 붓으로 쓰신 한시 두 장이 누렇게 색이 바랜 채 끼워져 있다.
아버지께서는 한학을 하셨고. 시우회에서 활동하시며 취미로 한시를 지으셨다. 한학으로 먹고살기 쉽지 않은 시대에 한학을 하셨다. 가정경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시고 향교에 나가셔서 한시와 시조로 세월을 보내셨다. 우리 집은 항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나 오빠들을 좋아할 리 만무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한문은 돈도 안 되고 쓸데없는 것이라고 배우지도 못하게 했다. 아버지께서는 객지에 있는 자식들이 고향 집을 찾으면 자식들에게 당신이 지으신 한시를 나누어 주셨다. 그런데 모두 떠나고 나면 아버지의 시는 방바닥 여기저기에 버려져 있었다. 언젠가 막내딸인 나를 붙잡고 서운함을 표했다. 아버지의 한시를 자식들은 외면한 것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서운해하시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주시는 시를 받아서 어딘가에 깊이 보관해 놓았다. 아버지께서 떠나신 후 아버지가 그리워지면 아버지가 써 주신 시를 찾아보려 애썼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살아 계실 적에 한시며 시조며 붓글씨를 배워 둘걸. 하는 후회도 했다. 아버지 살아생전 하지 못했던 생각을 아버지께서 떠나고 나니, 하게 된 것이 안타까웠다. 그렇듯 마음속에 아버지에 대해 아쉬움과 그리움이 많아 아버지께서 주셨던 한시를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시를 어린이집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사진으로도 남겼다.
이 봄 삼십 년간 내 청춘과 열정을 불태웠던 어린이집을 정리했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지난 추억을 다시 한번 마음에 시기며 정리했다. 아버지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귀한 유품도 다시 찾게 되었다. 마음이 든든해진다.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하나하나 추억을 꺼내어 정리하며 그간 내가 살아온 길이 많이 행복했고 보람찼다 싶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것은 마지막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다시 꿈꾸고 있는 인생 2막의 “유아 숲 체험 지도사” 역시 앞으로 한 삼십 년 멋지게 해내자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