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찾은 수영장
38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원한 바다가 나를 부른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그래 ‘실내 수영장이다.’ 하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마지막으로 수영장에 몸을 던졌던 것이 언제였더라? 희미한 기억 속에서는 물살을 가르는 내가 마치 인어공주 같았는데… 상상만으로도 시원하고 행복하다. 코로나19로 수영장을 멀리하기 시작하면서 잊고 지냈는데, 올여름 폭염이 다시 나의 발길을 수영장으로 이끌었다.
수영장 입장은 키오스크를 통한 무인 결제 시스템이다. 입장부터 생소하다. 바짝 긴장된다. 앞사람이 하는 것을 눈여겨본 뒤 그대로 따라 더듬더듬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간신히 결제를 마쳤다. ‘엥? 2,250원이라니?’ 터무니없이 저렴한 입장료에 눈을 깜빡였다. 혹시 결제가 잘못된 건 아닌가 싶어 옆 창구 직원에게 다급히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뜻밖의 답변. "어르신 우대세요." '내가, 벌써 노인이라고?' 갑자기 "우리나라는 노인들이 살기 편한 나라야"라며 웃으시던 어르신의 말씀이 귓가를 스쳤다. 돈벌이는 시원찮아도 시간은 넘쳐나는 노년에도 이렇게 최소의 경비로 누릴 혜택이 많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벌써 '노인' 대접을 받을 나이라니, 이 나이에 이런 우대를 받아도 되는 건지… 기분이 복잡 미묘한 채로 탈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영장 탈의실 거울 속에는 머리카락은 희끗희끗 반백에 몸은 어딘가 굳어 보이는 할머니라기에도, 아줌마 마라기에도 어정쩡한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옛 기억을 더듬어 거침없이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손가락 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스며드는 차가운 물의 감촉. 이 느낌이 대체 몇 년 만이던가? 어쩐지 잊고 지냈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설렘과 함께, 낯선 어색함이 공존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수영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들 레인 끝에 서 있었다. 갑자기 예전 실력을 뽐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에 들어가자마자 수영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레인을 물개처럼 매끄럽게 헤엄쳐 나갔다. ‘보시라 왕년의 물개가 다시 돌아왔다’하는 마음이었다.
그때였다 “휘리릭~~”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나와는 무관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무시한 채 계속 앞으로 헤엄쳐 나아갔다. 거침없이 나아가 레인 끝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 호루라기 불던 안전요원이 서 있다. “ 아직 쉬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 첫 레인은 걷는 레인이에요.” 아뿔싸! 너무 민망했다. 눈앞에는 ‘걷는 레인’이란 글이 떡하니 쓰여있었다. 그저 뽐내고 싶은 마음에 살펴보지도 않고 냅다 달린 것이다. 그리고 자유 수영이 두 시부터 시작이라서 모두 쉬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있다. 그 시선들이 따갑게 느껴져 얼굴이 화끈거린다.
민망함을 뒤로하고 얼른 옆 레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순간 힘찬 호루라기 소리가 삑~~ 하고 울리며 수영 시작을 알렸다. 이미 한바탕 민망함을 겪은 터라 앞뒤를 잘 살피며 조심스럽게 많은 사람의 대열에 끼었다. 왠지 뒤에서 누군가 바짝 따라오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하는 수영은 속도감도 떨어져, 뒷사람에게 민폐가 될 것 같다. 얼른 한 단계 낮은 급의 레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부터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속도를 높이고 차차 적응하자’ 하는 마음으로 앞섰던 의욕을 다스렸다. 이제 다시 시작한 수영을 오래오래 즐기며 건강하게 생활하자 하는 마음이다. 수영장으로 귀환한 첫날은 민망함과 뻘쭘함 상황도 겪었지만 잘 극복하고 무사히 오랜만에 수영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