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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Feb 19. 2024

나는 오늘도 달린다.

피치 못 할 사고는 늘 도사리고 있다. 

   

    앗! 백이십 미터쯤 앞 횡단보도에 초록색 불이 켜졌다. 달리자! 전력 질주한다. 신호등의 초록색 사람 그림이 숫자로 바뀐다. 33, 32, 31, 30 …17이 되는 순간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다. 멈춤 없이 횡단보도로 들어서서 계속 달린다. 숫자 1일 없어지며 신호등 불도 바뀌는 순간 간신히 두 발이 인도에 닿았다. “됐다” 하는 안도의 가쁜 숨을 고르니 빙그레 웃음이 난다. 


   등에는 어린이집에서 종일 사용할 잡동사니가 가득 든 큰 배낭을 메었다. 왼쪽 어깨에는 퇴근 후 행정복지센터 기타 수업에 갈 큰 통기타를 메고 있다. 오른손에는 우중충한 날씨로 봄비를 대비한 긴 우산과 주방 선생님이 부탁한 대파 한 봉지를 투명 비닐봉지째로 든 모습이다. 출근길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을 들고, 메고, 뒤뚱이며 횡단보도를 달려 어린이집에 도착한다.     

 

   먼저 모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아직은 이른 봄이라 쌀쌀한 기운이 돈다. 보일러 온도도 적당히 올려놓는다. 컴퓨터를 열어 선생님들이 메일로 보내놓은 보육 일지를 검토한 후 출력해 각반 선생님 자리에 놓아준다. 관계 기관에서 온 전자 공문이 있는지 보육 정보시스템에 접속해서 공문 확인도 한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길 기도하며 커피 한 잔을 마시다 보면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오기 시작한다. 어린이집에서의 나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실내놀이 활동 후 실외놀이 활동을 한다. 실외놀이 활동에는 어린이집 온 인원이 총동원된다. 어린 영아들의 안전사고가 걱정되어서이다. 나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찍어 부모님과 공유할 겸 졸업할 때 만들어줄 앨범의 밑 작업으로 쓸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메고 같이 나간다. 어린이집 앞 농구장은 오전 시간에는 우리만의 전용 운동장이다. 공놀이도 하고 줄넘기 놀이도 한다. 오늘도 실외놀이 시간이 끝나고 들어오는 시간 활동적인 친구는 더 놀고 싶다고 땅에 드러누우며 떼를 쓴다. 내일 다시 나오자 간신히 달래서 데리고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히고 손을 씻기고 점심을 먹인다. 양치와 세수를 시킨 후 잠자리에 눕힌다. 


   아이들이 조금 일찍 잠이 들면 선생님들도 조금은 쉴 수 있다. 오늘은 날이 흐려 밖이 어두우니 잠이 쉽게 들었다. 평온한 시간이 잠시 이어진다. 보육 교직원의 필수 교육으로 아동학대, 성폭력 예방 교육… 등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잠시의 평화가 깨어지는 사이렌 소리는 막내 현이의 울음소리로 시작된다. 제일 먼저 잠이 들고 제일 먼저 잠에서 깨어난다. 잠자리의 정리와 아이들의 머리 손질 후 오후 간식을 먹인다. 간식 후 실내놀이 시간이다. 날씨가 흐리니 아이들도 뭔가 심심한지 교구장에도 올라가고 책상 위에도 올라가며 빙빙 돌며 춤도 춘다. 위험해 보인다. 이렇듯 분위기가 뜨는 날 사고가 잦다. 조심해야 한다. 


   오후 하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갑자기 1세 반 교실에서 울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놀란 마음으로 달려가 보니 한 아이가 선생님의 품에 안겨 울고 있다. “무슨 일이에요?”하고 물으며 상황을 살펴본다. 기저귀 갈이를 싫어하는 아이가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장난을 치며 누워서 한 바퀴 상체를 돌다가 갑자기 팔이 아프다고 한단다. 엄살이 심한 아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말없이 아이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오른팔에 힘을 주지 못하고 아파한다. “선생님 팔 빠진 것 같아요” 하자 선생님은 “아니 원장님 팔은 만지지도 않았는데 무슨 팔이 빠지겠어요” 하며 어이없어하는 표정이다. “아이들 팔이 빠지려면 지나가다 사람과 부딪쳐서도 빠지는 경우가 있대요.”하자 선생님도 놀란다. 급히 cctv를 확인해 보니 기저귀 갈며 몸을 뒤트는 과정에서 팔꿈치가 본인의 상체에 눌리며 어긋나면서 빠진 것 같다. 얼른 부모님께 연락하다. 달려오신 부모님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차 안에서도 아이는 계속 아파하며 운다. 부모님도 많이 당황하신 모습이다. 운전하는 내내 마음이 좌불안석이다. 병원에 도착 후 의사 선생님께서 “어디 보자” 하며 팔꿈치를 한번 만지더니 되었단다. 살짝 어긋나서 다시 맞추었단다. 참으로 어이없다. 그리 쉽게 팔이 빠지고 그리 쉽게 맞춰지다니 아파하며 울던 아가도 금방 울음을 그치고 언제 울었냐는 듯 같은 차를 함께 타고 있는 부모님과 선생님을 보며 행복한 듯 웃으며 잘 논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병원을 다녀오니 기타 수업 시간이 다 되었다. 서둘러 기타를 둘러메고 행정복지센터 기타 교실로 달려갔다. 오늘 하루의 지난 시간을 잊은 채 기타 연습을 즐겼다. 재미있다. 기타를 배워 전국을 여행하며 거리공연도 하고 여러 사람과 같이 어우러져 즐겁게 생활하고 싶다. 더 나아가 영어 공부를 좀 더 해서 세계 일주하며 세계를 무대로 거리공연의 꿈도 꾸어 본다. 그런 목표가 있기에 기타 수업이 더 재미있다. 목표가 있는 행동에는 더 즐겁고 열정을 바칠 수 있다. 


   기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돌아본다. 아찔하다. 팔이 그리 쉽게 빠지고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긴장의 연속이다. 어린 영아다 보니 순간에 피치 못하는 사고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아이들이 좋아 이 일을 시작했고 그 아이들을 보며 행복한 순간도 많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힘겹다. 30여 년을 한결같이 이 일에 열정을 바쳤다. 그간 잘 해왔어. 아무런 사고 없이 잘 해냈잖아. 앞으로도 잘할 거야. 이제 목표 지점이 멀지 않다. 조금만 더 힘내서 꿈꾸던 멋진 퇴임식으로 마무리하자! 퇴임 후에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고 싶다. 미력하지만 나눌 것이 있다면 나누며 살고 싶다. 노년의 꿈을 살며시 꺼내 보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달린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며, 내일도 다시 힘내서 달려보자고 속으로 파이팅을 크게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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